김경배 청소년 웹진 'CH.10' 편집장

저는 오늘도 책상 앞에 앉아서 수학 문제를 풀었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방학이 학교를 조금이나마 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출구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풀어도 끝이 없는, 그리고 이제는 풀 의욕조차 생기지 않는 문제집들과 씨름하면서 방학이 시작될 적 가졌던 해방감마저도 이제는 모두 물거품이 되어 버린 느낌입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그런 기억을 되살릴 수는 있을 겁니다. 몇 권의 교과서와 문제집에 의지하여 학교에서 정한 지식들을 머리 속에 억지로 집어넣고, 친구들과 나의 '우열'을 단지 두 세 자리의 숫자로 한 줄 세워 버리는 성적표를 보면서 여러분들은 어떤 느낌이 일었는지요.


별로 필요할 것 같지도 않은 지식들을 토대로 친구들의 머리를 밟아가면서 오직 1등을 향해 달려가라는 교육 제도에 조그마한 불만마저 품지 않았던 사람은 없었을 겁니다. 맨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교사들에게 조그마한 반항마저 품지 않았던 사람도 없었을 겁니다. 그리고 단지 어른들이 정한 '우열'로써 사람을 평가하려는 어른들에게 조그마한 분노마저 품지 않았던 사람은 정말 없었을 겁니다. 개 중에는 커서 이와 같은 사회를 모두 바꿔 버리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도 있었겠지요. 기억하자면 끝이 없지요.


근데 "그때 좀 더 열심히 할 걸…." 이란 생각을 하면서 저에게 "공부 열심히 해라"라는 말로 끝인사를 대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조소로 답하지요. 과거에 존재했던 수많은 기억들과, 역시 수없이 다짐했던 고침에 대한 바람도 이제 그 사람에게는 도로아미타불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까지 하면 그 사람의 말은 더 이상 믿기가 싫어지더라고요.


그런 사람들, 아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어른들에게는 수직적인 관계를 중요시하는 유교적 관념이 깊게 박혀 있습니다. 사람들은 차근차근히 발전해 나가고, 갑작스런 지식의 얻음이나 깨달음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생각에서 수직적인 관념이 생겨난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것까지는 좋다 이겁니다. 통계학적으로 보면 윗사람들은 아랫사람들보다 우세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수직적인 관념은 수많은 병폐를 낳았습니다. 아랫사람들의 비판을 별 까닭 없이 묵살하는 것도 이러한 관념의 산물이요, 윗사람이 아랫사람으로 하여금 무조건적인 복종을 하게 만들려는 것도 이러한 병폐 중 하나입니다. 이제 윗사람들은 자신의 과거마저도 나쁘다 여깁니다. 현재의 생각이 과거보다 나을 것이라는 것도 결과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러한 '잘못 전도된 유교적 관념'에서 출발하는 것이겠지요.


이런 '잘못 전도된 유교적 관념'은 사회에 타협한 자신에 학벌에 대한 열등감이 덧붙여져 "그때 좀 더 열심히 할 걸…."이라는 자책을 하게 만드나 봅니다. 근데 이 이야기 한번 들어보시지요. 춘추 전국시대에 오자서가 한 말이 있습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들지만, 때로는 영웅이 시대를 만들어 나갈 수도 있다고요. 자신의 소신을 세상과의 타협이라는 이유로 꺾는 것은 어리석은 사람들의 선택입니다. 세상은 만만하지 않습니다만, 여러분들은 더 만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무조건 일류대에 가야 성공합니까? 일류대는 성공하는 수많은 방법 중 하나이지, 결코 성공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방법은 아닙니다. 중요한 문제는 일류대에 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정신 상태에 있는 것이지, 일류대에 가지 못했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발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가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반드시 좋은 대학에 가야 성공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면서도 "너는 세상을 잘 몰라…" 하면서 제 생각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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