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사람들로 분주한 신촌역, 늦은 밤 귀가를 위해 전철을 기다리고 있을 때 우리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그의 소리를 경험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바로 이 소리  CLICK!

70년대 DJ같은 정겨운 목소리로 멋진 멘트와 음악으로 지나던 사람들을 미소짓게 하고 걸음을 멈추게 한다. 올해로 지하철 공사에 몸담은 지 25년을 맞이한다는 지하철 공사 김만오 부장의 지하철 방송이다. 

올해로 54세인 김만오씨는 아내와 아들, 딸을 둔 평범한 가정의 평범한 가장이다. 중학교 역사 선생님을 그만두고 철도청에 입사한 후, 다시 지하철 공사로 근무지를 옮겨 25년간 일해 오면서 7시 출근 시간을 어겨 본 적이 없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알 정도로 유머와 끼가 많다며, 그는 자신을 '만돌씨'라 소개한다.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가슴과 생각이 화들짝 열려있는 개성꾼! 이 문구로 그를 설명하려한다면 턱없이 부족한 걸까? 그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그의 방송사(史)는 그가 신도림 역장으로 있었던 95년 1월 중순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신도림 역은 '환승 지옥역'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을 정도로 여러 가지 공사와 보수로 승객 안전에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다. 그는 역장으로서 승객들의 안전과 질서를 염려하여 초기에는 순수하게 안전 질서 개도(開導)를 위해 "뛰지 맙시다, 좌측 통행을 합시다"로 방송을 시작 했다고 한다.

지금은 안전 질서 개도에서 한층 단계를 뛰어 넘어 사회 풍자까지 그 주제의 폭을 넓히고 있다. 예를 들면 얼마전 사회를 시끄럽게 했던 옷로비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그는 이것을 강력히 비판하는 내용을 꽁트화하여 방송을 내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 개도(開導)이지 메시지 전달에 있어서 그는 그 나름대로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지시 일변도의 방식에 젖어 있지 않았습니까? 전 관공서의 딱딱한 분위기, 그게 참 싫었습니다. 그러한 방식에서 탈피해 좀 더 친숙하고 코믹하게 시민들에게 다가가고 싶어서 이런 방송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남들과 같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는 하지만 조금은 다른 전달 방식, 그것이 바로 이 우리에게 색다른 것으로 다가오는 만돌씨 방송의 매력이다.

무엇이든 처음 시작이 어려운 법! 그에게도 이 방송의 시작이 순조로웠던 것만은 아니다. 처음 이러한 형식의 방송 운영을 제안했을 때 긍적적 반응보다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그의 집에서조차 환영받지 못하는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넉넉지도 못한 월급에 자비를 들이고 근무 시간을 쪼개어 누가 시키지도 않은 방송일을 하려는 그의 행동을 선뜻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지금은 매스컴에도 알려지고 시민들을 위한 의미 있는 일이라는 것을 이해한 가족들이 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원고 쓰기부터 테입 제작까지... 혼자 만드는 방송

그의 방송은 현재 테입으로 제작되어 11개 지하철 역에서 방송되고 있다. 테입 제작을 전문 제작업자에게 맞기면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그가 집에서 직접 테입을 제작한다. "처음에는 기술도 없고 장비도 없어서 녹음기에다가 음악 녹음하고 목소리 녹음하고 그랬어요. 목소리 녹음할 때는 잡음이 들어가면 안되니까 애들을 조용히 시켜놓고 녹음을 했죠. 그러니까 아무래도 상태가 좋질 못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MD라는 것에 녹음을 해서 예전보다는 음질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7월부터는 그가 직접 녹음하는 일도 없어지게 되고, 그의 방송을 114개 역에서 들을 수 있게 된다. 방송 테입 제작을 이제부터 외부의 지원을 받아 전문 테입 제작사에 맏기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11개 역에서만 방송했던 것과 비교하면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앞으로 더 많은 시민에게 다가가기 위한 첫 걸음이죠. 물론 상업적으로 이용될 것을 걱정했지요. 그래서 지원 회사에 대해서는 광고를 삽입하는 게 아니라 멘트로만 광고를 해주기로 했습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시민들을 위한 것이니까요."


특별히 원고를 써주는 사람도 없고 음악을 선곡해 주는 사람도 없이 혼자서 방송을 만들어 가는 일은 적지 않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재미 있는 멘트가 필요할 때를 골라서 생각나는 게 아니기에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해 두었다가 음악과 접목시켜 본다.

"껌을 뱉지 말자"라고 한마디 말보다 "청바지에 배꼽티를 받쳐입은 인어같은 몸매의 저 아가씨가 껌을 씹고 그냥 뱉고 갈 줄이야? 진정 난 몰랐네..."하며 「진정 난 몰랐네」가요를 틀어주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임을 아는 그이기에 작은 생각이나 유머 하나도 놓치지 않고 메모를 해둔다.  재미 있는 멘트는 떠올랐는데 적당히 어울리는 음악이 없으면 며칠씩 청계천을 뒤지기도한다.

또 아이디어 샘이 마르지 않도록 끊임 없이 신세대 음악을 접한다고 한다. TV의 인기 가요 프로그램과 외국 뮤직 비디오 소개 프로그램은 그가 빠짐 없이 챙겨보는 프로그램들이다. 또, 매주 빌보트 차트까지 참고한다니 그의 노력이 정말 대단하다.

방송하는 모습이 20년 베테랑 DJ만큼 자연스러운 그는 임근택 아나운서의 성대모사 또한 수준급이다. 젊은 시절 잠시 아나운서의 꿈을 꾸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저 '수준 미달의 오디오 매니아'라며 소탈하게 웃는다. 그의 얼굴에 사는 방법을 아는 사람의 속 깊은 웃음이 묻어난다.
 
이런 그에게 잔잔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시민 팬들이 없을리 없다. 하루에 20여통이나 되는 팬레터를 받는 그는 시민들의 관심과 호응이 항상 힘이 된다면서, 편지 한통 한통 소중히 보관한다고 했다. 그의 방송에 대한 시민들의 호응은 그를 연고제의 스타로 만들어주기도 했다. 축제에 초대되어 학생들 앞에서 인터뷰를 한 것을 그는 굉장히 자랑스러워 했다. 그러나 그런 유명세는 그에겐 부차적인 일일 뿐이다. "시민들이 좋아해야 저도 신나고 기분 좋죠"라며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의 본 뜻을 잊지 않는다. 

청소년 복지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의 노력은 이달부터 결실을 맞이하게 되었다. 놀 곳 없고 쉴 곳 없는 우리의 청소년들을 위해서 인터넷 업체와 제휴하여 청소년 인터넷 플라자를 구축하려는 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2000년 7월부터 4호선 환승 사당역에 40평 정도의 부지를 마련하여 7대 정도의 PC와 e-projection TV를 설치하고, 청소년들이 인터넷과 DDR 등을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청소년 쉼터를 마련될 예정이다. 우선은 시범 운영 후에 호응도에 따라 이것 또한 전역으로 확대할 예정이라고 하니, 잘만 실행 되면 정말 색다르고 시민과 가까이 있는 지하철역이 될 것 같다.

평범한 가장으로, 억지 권위를 거부하는 직장 상사로, 시민을 생각하는 달리는 DJ로, 오늘도 서민들의 가려운 곳을 용케 알아 긁어주는 역할을 다하며 1인 다역을 마다하지 않는 김만오씨. 이기주의가 팽배한다는 요즘, 그의 청소년을 걱정하는 마음과 시민을 위하는 봉사 정신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나보다는 다른 이를 걱정하는 그를 만나고 나자 이런 마음이 하나, 둘 마음의 파동을 일으켜 우리에게 전달된다면 훨씬 더 살맛 나는 세상이 되겠지...

김혜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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