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인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우리가 평소에는 잘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 자신의 문화적 특성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예컨대 내가 전통적인 경상도 출신으로 가부장적인 부모 밑에서 성장해 왔다면 나는 분명히 이런 문화적 배경을 갖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맺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싫든 좋든 간에 자신의 문화적 배경을 토대로 인간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더 좋은 관계를 맺기 원하거나,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문화적 배경을 알아야 하고, 그의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는 일이 첩경입니다.

이런 기본적 자세로 인간관계가 이루어지면 상대방과의 대화의 효율을 높일 수가 있습니다. 문화는 인간의 살아가는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문화를 잘 이해하면 자신이 의도한 것과 상대방이 수용한 것 사이에 별다른 차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서로간의 문화적 이질감을 해소하지 않으면 많은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엉뚱한 결과를 빚기 쉽습니다. 호의를 갖고 한 말이 상대를 불쾌하게 하거나 말의 참 뜻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에 공연히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고 맙니다. 이런 일은 적어도 누구나 다 한번씩 경험해 본 바가 있을 것입니다.

세대간, 지역간, 계층간, 남녀간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문화적 특성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자세를 가지면 갈등은 자연히 해소됩니다. 사람들간의 문화가 다르다 하더라도 교류가 빈번해지면 이들간에는 '공통의 문화'가 생겨나고 이로 인해 효과적인 의사전달이 가능해집니다.

요즘 우리사회를 주도하는 대중문화는 이 시대의 지배적 문화현상입니다. 주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비취는 젊은이들의 옷맵시, 말솜씨, 율동과 노래 가락, 그 모든 것이 우리 기성세대들에게는 낯설 뿐 아니라 해괴망측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삶의 표현과 그들의 문화양식을 풀어내는 실마리를 찾아내지 못하면, 이 시대의 문화현상과는 영영 거리가 멀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젊은이 여러분도 부모들의 살아가는 방식과 그분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노력을 함께 기울여야 합니다. 기성세대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사회 구성원들간의 간극은 메워지지 않습니다. 그들과 함께 그들의 문화 속에 몰입할 수는 없더라도 그들의 문화양식을 이해하려는 작은 노력을 가져 보십시오. 가정에서 부모와 자식간의 서먹서먹한 관계를 해소하는 길도 의외로 쉽게 열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한번쯤 생각하고 넘어갈 것은 대중문화의 본질을 바로 이해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단지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수동적인 수용자에 불과할 뿐 문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참여하는 길은 막혀 있습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인들이 기술자를 고용하여 생산한 대중문화 상품을 단지 살 것인가 사지 않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구매자가 되었을 뿐입니다. 옛날의 민속문화나 민속예술처럼 민중이 문화의 생산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길이 대중문화 생산과정에는 배제되어 있습니다. 전통적인 문화양식에서 볼 수 있었던 민중의 참여 영역이 박탈당하고 오직 생산된 상품으로서 문화를 소비하는 위치로 전락한 것입니다.

소비적이고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소비문화로서 대중문화의 창출은 결과적으로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창조적 힘과 변혁의 의지를 흡수해 버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중문화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과 민중이 함께 참여하면서 만들어지는 문화정책을 수립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더욱이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대중문화의 옷을 입은 외국의 이질적인 상품문화가 유입되는 현실을 직시하여야 합니다. 이런 이질적 문화를 대치하는 문화창조운동이 일어나야 하고 문화의 자주성과 주체의식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나의 이야기를 요약해 봅니다. 문화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방식이고 삶 자체입니다. 문화를 이해하는 일은 인간관계의 요체입니다. 서로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첩경입니다. 또한 대중문화는 이 시대의 주도적 문화현상입니다. 대중문화를 이해하지 않으면 이 시대를 바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대중문화가 갖는 역기능성을 바로 인식하여야 합니다. 우리를 피동적인 수용자나 구매자의 위치로 전락시킨 대중문화의 생산과정을 바로잡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아울러 민중이 참여하는 문화양식이 이 시대 문화의 축을 이룰 수 있도록 문화정책을 펴는 일과 함께 우리의 깨어 있는 문화의식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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