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12월 문화관광부와 전자신문사가 주최한 「'99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어뮤즈월드가 개발한 EZ2DJ가 대상으로 선정됐다. 직접 건반을 연주하고 페달을 밟고 스크래치를 해 악보를 연주하는 음악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EZ2DJ는 작년 8월, 게임에 나오는 48곡의 음악을 모아 O.S.T를 냈다. 93년 서울음반에서 출시된 소프트 액션사의 게임 음악 모음 <NF 43> 이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제작된 게임 O.S.T다. 업소용 게임으로는 단연 국내 최초. 발매 기념 티셔츠와 함께 판매된 <EZ2DJ The First Track>은 15,000여 장이 팔렸다.

'잘 나가는' 게임 음반 EZ2DJ O.S.T는 국내 시장에서는 드문 예지만 일본에 비하면 꽤 늦은 출발이다.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게임·애니메이션 O.S.T 천국.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을 하나 제작하면 그와 관련된 온갖 종류의 팬시와 음반을 내놓는다. 두터운 팬층에 힘입어 돈벌이도 하고 팬서비스도 하는 차원이다. <마크로스(79)>를 시발점으로 게임·애니메이션 O.S.T는 80년대 초부터 꾸준히 음반 시장을 잠식해왔다. 98년에는 유명한 오락 게임 DDR의 O.S.T <Dance Dance Revolution 1st>가 '일본의 빌보드'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현실 속의 fantasy, O.S.T

일본의 게임·애니메이션 O.S.T 리스트를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해적판, 소매상을 통한 정품 시디 또는 MP3 파일로 국내에도 널리 유포된 <란마 ½>, <슬레이어즈Slayers>, <에스카 플로네ESCAFLOWNE>, <에반게리온Evangelion>의 노래들은 '이미 잘 알려진'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일례로 <오 나의 여신님Ah! My Godess>은 하나의 애니메이션에서 얼마나 많은 싱글 앨범과 O.S.T가 나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성우들이 직접 작사를 하기도 하고, 보통 댄스 그룹은 시도조차 어려울 드라마 형식의 싱글 앨범을 내놓기도 한다. 일본 현지에서도 O.S.T를 구하기 힘들다는 <그 남자와 그 여자의 사정>의 인기는 가히 열광적이다. 주인공과 그의 동생들로 구성된 세 자매 프로젝트 그룹 <세츠 게츠 카>가 생길 정도.

게임과 애니메이션과 현실의 캐릭터들이 한데 섞여 돌아가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의 음반 산업은 아직은 소박한 모습이다. 93년 소프트 액션의 사운드팀 S.A.S.T에서 만든 <NF 43> 이후 정식으로 발매된 게임 O.S.T로는 EZ2DJ가 유일하다. 그 외에는 <슈퍼 샘통>, <왕도의 비밀>, <서풍의 광시곡> 등이 O.S.T를 제작해 게임 시디에 덤으로 얹어주기도 했다.

국내 애니메이션 O.S.T도 게임과 마찬가지로 척박한 시장에서 자라왔다. <로보트 태권 V 2>,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의 O.S.T나 90년대 중반 발매된 <돌아온 영웅 홍길동>, <헝그리 베스트 5> 등은 빛을 보지 못하고 묻혀버린 예다. 90년대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국내 애니메이션의 성장과 더불어 O.S.T 시장도 함께 커졌다. <녹색전차 해모수(97·대원)>는 애니메이션이 일본으로 수출되면서 싱글 앨범이 판매되기도 했다. 그룹 넥스트의 고별 앨범으로도 알려진 <영혼기병 라젠카>의 O.S.T <Lazenca/a Space Rock Opera(97·대영기획)>는 20만 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최근 출시된 <특수 구조대 레스톨(99·KM뮤직)>은 애니메이션의 질과 O.S.T의 수준이 결코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는 중평이다.

넓어지는 시장, 불가능은 없다

일본 시장 통로가 법적으로 막혀 있었던 과거에도 라이센스 생산판매는 종종 있었다. 국내에서 방영돼 인기를 끈 <달의 요정 세일러문>과 <마법기사 레이아스>, <슬램덩크>는 각각 우리나라 말로 번안한 주제가 싱글 앨범을 내놨다. 미국에서 개봉된 <모노노케 히메(원령공주)>의 영어버전 O.S.T <PRINCESS MONONOKE>가 수입되기도 했다.

게임 O.S.T의 경우로는 90년대 초 서울음반이 일본 팔콤사의 <Ys>, 아이렘사의 <R-Type> 등의 O.S.T를 라이센스 생산판매했다. 99년 말 EMI가 <Dance Dance Revolution 2nd O.S.T>를 라이센스판으로 들여왔고, 마찬가지로 라이센스인 세 번째 앨범은 현재 작업 중이다. 올해 초 CNL뮤직에서 수입한 <Cowboy Bebop O.S.T 1>은 98년 제 13회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을 차지해 애니메이션 O.S.T의 저력을 보여준 경우.

1월초부터 계속해서 재수입되고 있는 <Cowboy Bebop O.S.T 1>는 국내 게임·애니메이션 O.S.T 시장에 작은 파문을 일으켰다. 이제까지 일본 게임·애니메이션 팬은 SM 시디(해적판)가 아니면 일본 가는 친구나 불법 수입상을 통해, 또는 통신 동호회의 공동 구매로 힘들게 음반을 구해야 했다. 이제는 '수입판'이 들어와 음반 가게에서 편리하게 구입할 수 있게 됐다. 영상물등급위원회 공연음악부 이종화씨는 "라이센스는 우리 나라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국내에서 편집 가능한 것이고, "수입은 외국에서 음반 자체를 들여오는 것"이라며 차이점을 분명히 했다.

국내 게임 O.S.T 시장에 새로운 지평을 연 EZ2DJ는 동남아시아와 중남미 등에 수출됐고, 현재는 미국과 유럽 등지와 협상 중이다. 일본·홍콩·대만에서는 O.S.T에도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처음엔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통신을 통해서 직접 판매하기도 했고.... 오락 업소에서 판매하기도 하고, 간혹 레코드샵에서 구매해서 팔기도 했죠." 어뮤즈월드 이상철 사장은 이전과 달리 게임 O.S.T에 대한 인식이 좋아져, 곧 출시될 스페셜 에디션 O.S.T에 음반 기획사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의식 있는 제작자와 소비자가 공존하는 이 새로운 영역에는 앞으로 늘어날 공간이 훨씬 더 많다.

 조혜원 기자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