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앞서간 여자들의 거짓과 비극의 역사

요즘 인기를 끄는 책은 지하철에서 읽기 편한 옴니버스 구성인 경우가 많다. 짧으면 10분, 길면30분인 지하철 여행에서 부담없이 펼쳐 읽고, 끝까지 읽지 못해도 리듬이 끊어지지 않는 짤막한 장으로 엮인 책들이 대부분이다. 흔들리는 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동안, 흘러간 시대의 여자들을 만나보는 것도 매력적인 일이 아닐까. 비록 그들의 이야기가 아름답지만은 않은 '거짓과 비극의 역사'라도.

1월 초 출간된 <시대를 앞서간 여자들의 거짓과 비극의 역사>는 스페인의 언론인이자 소설가 로사 몬떼로가 몇 년 전 일간지 『엘 빠이스』에 연재한 칼럼을 모은 책이다. 각각 열 다섯 장을 차지한 여자들 중에는 조르주 상드나 애거서 크리스티처럼 이름만 익숙한 여자도 있고, 일데가르뜨 로드리게스나 이사벨 에버하트처럼 이름조차 생소한 여자도 있다. 아니, 어쩌면 우리가 제대로 알고 있는 한 여자의 역사란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본다

한 사람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지은이가 강조하는 것은 "학문적이고 수평적인 시각"보다는 "무질서하고 나름대로 독단적인 수직적 시각"이며 "형언하기 힘든 미묘한 느낌"이다. 그렇게 잊혀진 여자들의 역사를 되짚어본 지은이는 너무 먼 과거로 떠나지는 않았다. '정상적인 역사'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한 여자들의 사례는 바로 눈앞에도 "너무나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은이가 선택한 인물은 멀리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조르주 상드부터 가까이는 애거서 크리스티와 마거릿 미드까지, 18∼20세기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이들은 "육체의 죽음과 망각의 죽음이라는 이중적 그물에 덧씌워진 채" 성차별적 건망증으로 인해 지금까지 잊혀져 왔다. 건망증을 치료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려는 노력이다.

유명한 극작가 남편 뒤에 숨어 있던 침묵의 대필 작가 마리아 레하가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이 "로댕의 모델이자 연인"이라고만 기록한, 지나치게 시대를 앞서갔던 천재 조각가 까미유 끌로델. <여성 권리에 대한 주장>으로 유명해졌으나 자살 소동과 원죄적인 이성관계 때문에 "미치고 불쾌하고 비도덕적인" 여성주의자로 낙인 찍힌 작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당시 사회의 편견과 고정관념에는 패배했지만, 이들의 작품과 업적은 올바른 평가를 기다리며 지금까지 남아 있다.

내일보다 열악한 오늘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비롯한 모든 것이 어제보다 나아졌으며, 지금이야말로 완전한 단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지은이는 오늘은 "내일보다 열악"하다며 일침을 놓는다. 중세 시대의 마녀 사냥에서는 벗어났지만 현대에 와서도 또다른 오해와 왜곡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지은이는 새로운 편견에 맞서,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여자들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존재만으로도 힘겨운 삶을 살았던 이사벨 에버하트, 최악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당당한 모습을 잃지 않은 프리다 칼로와 오톨린 모렐, 일생을 거짓말로 덧칠한 매력적인 거짓말쟁이 애거서 크리스티, 그리고 결국 지은이도 납득하지 못한, 자신의 문학과 이상을 위해 타인의 삶을 난도질한 시몬 드 보봐르….

이 책의 원제는 <Historias de Mujeres>. '여자들의 역사'라는 뜻이다. 16회 연재된 이 칼럼은 "의외로 많은" 독자들의 관심과 깊이 있는 반응을 얻었다. 독자들이 지은이에게 보내온 생생한 자료,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인물보다 훨씬 많은 이름은 글 곳곳에 나타나 있다. 사람들의 관심과 로사 몬떼로의 열정은 뒤이어 터져나올 그의 목소리를 기대하게 한다. 기다리다 지쳐 도서관으로 달려가 스스로 자료를 뒤져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조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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