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천재 시인 이상은 자신을 박제에 비유했다. 재능이 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그런 현실이 못마땅하지만 벗어날 수 없었기에 그는 현실 속에 갇힌 박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사회에서 천재들은 종종 박제가 되어버린다. 이는 우리 사회의 경직된 풍토가 그들의 재능을 알아주고 충분한 후원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예술에 있어서 이런 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각 대학마다 설립되어 있는 예술대학들은 입시 때마다 매번 비리에 연루돼 언론에 오르내리고 일반인들은 여전히 예술을 '돈 많은 집에서나 시키는 것'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은 전문적, 직업적 예술가의 부족현상을 낳았고 전문예술인이 되기를 원하는 재능 있는 젊은이들은 해외유학을 떠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반성으로 1993년 설립되었다. 음악원을 시작으로 영상원, 무용원, 미술원, 전통예술원을 개원한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예술실기를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명실상부한 실기전문교육기관으로 입지를 굳혔다. 또한 정명화(음악원 기악과), 김영미(음악원 성악과), 황지우(연극원 극작과), 박광수(영상원 영화과), 홍상수(영상원 영화과), 김덕수(전통예술원 연희과장), 안숙선(전통예술원 음악과)등 각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예술인들이 교수진을 형성하고 있어 학생들에게 보다 전문적인 실기교육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의 교육 방식은 각종 콩쿠르와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기록하면서 그 효과가 입증되었다. 제1회 삼성 디지털 창작제에서 '나의 수기 정수기'로 영상부문 대상을 수상한 임찬익(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씨는 "자유로운 수업방식"에서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느낀다. "한국 예술종합학교는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4년제의 학사과정입니다. 하지만 교육부에 의해 커리큘럼 통제를 안 받기 때문에, 자유로운 커리큘럼이 가능합니다." 또한 영화감독의 꿈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특히 마음에 든 것은 매 학기마다 실습을 통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과정이 있는 것. "영화를 만들고 싶은 학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간입니다. 특히 수업시간은 자유로운 의사 토론 방식으로 진행돼서 다른 친구들이나 교수님들의 의견을 들을 수도 있지요."

이사랑(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양은 "다른 대학들이 국악과에 모든 전공을 통합시켜 놓은 데 비해 전통예술원은 전공을 나누면서도 타원의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개방을 해서 총체적 공부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저는 전통예술과로 주로 이론을 다루지만 일주일에 한번은 가야금 등의 악기실습도 있는 등 이론에만 치우치는 교육은 지양합니다." 이러한 전문가를 위한 교육방식덕분에 "다른 학교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을 함으로써 비로소 프로가 되는 데 반해 한국예술종합학교의 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면서도 프로로 대접받는다"고 이사랑양은 말한다.

수업 방식에서뿐만 아니라 학생선발에 있어서도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차별성이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는 흔히 얘기하는 현역이 아주 적다. 대부분 다른 학교를 다니다가 오는 경우가 많다. 임찬익씨도 다른 대학을 2년 다니다가 제대 후 입학한 경우다. "학교 생활 때 문학반과 사진반 등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영화에 관심이 생기게 된 것이었는데, 우연히 영화잡지에서 이런 학교가 있다는 말을 듣고 지원하게 됐습니다. 군대에 있으면서 영화 전공으로 유학 갈 생각이 있었는데, 국립 영화학교가 생긴다는 점이 참 맘에 들어 지원했습니다."

장고운(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양의 경우도 다른 학교에서 1년을 머무르다 들어온 경우다. "대학에 가면 맘껏 그림 그리고 또 다른 발전적인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대학을 갔을 때 30명중에 열심히 하는 사람은 저를 포함해 4명 정도였습니다. 더 나은 작업 환경을 위해 다른 학교를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한국예술종합학교를 택했습니다."

전통예술원의 한국예술과의 경우 40대 1명과 20대 후반 1명, 그리고 현역 두 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공부를 하다가 혹은 사회에 나갔다가 온 사람들이다. 지난해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지원했다가 불합격한 한 학생은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의 열정과 노력을 못 배워서 안타깝다"고 말한다. 늦게 시작한 만큼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에게는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노력한다. 그리고 그러한 열정이 그들의 재능만큼과 함께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이끄는 힘이 된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한계가 있다. 박소연(이화여대 작곡과)양은 "음악하는 사람들한테는 한국예술종합학교가 실기 잘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보통 사람들한테는 인식이 별로 안 좋고 잘 알지도 못한다"고 말한다. 사실상 한국예술종합학교는 교육부 산하가 아닌 문화관광부 산하에서 만들어진 학교다. 그런 만큼 예산 책정이나 기타 교과 과정 선택에 있어서 다른 예술대와는 다른 독자적인 이미지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한국예술종합학교는 국립대학임에도 불고하고 교육법으로는 '각종학교'에 머물러 장애인 학교 등 특수학교와 같은 지위에 머물러 있다. 이에 대해 문화관광부는 작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명칭을 '한국예술학교'나 '국립예술학교'로 하고 영재 교육, 학위 없는 실기교육과 더불어 외국의 예술교육기관처럼 실기 전문 석사와 박사 학위까지 줄 수 있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교육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의 '국립예술대설치법'을 제정하려고 했다.

하지만 기존 예술계 대학들은 "대학 체제를 비판하며 실기위주 컨서버터리로 개교한 학교가 대학이 되려는 것은 설립취지에 어긋난다","국립대로서 독점적 지위를 갖는 것은 특혜이자 중복투자로 기존 예술계 대학들을 고사시킬 것이다"라는 등의 이유로 이 법안을 반대하였으며 결국 해를 넘기고 아직까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이사랑양은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어려운 곳을 어떻게 들어갔냐고 얘기하지만 모르는 사람들은 명칭을 듣고 대학교냐고 되묻는다"고 말한다. 때문에 그는 "제대로 된 명칭"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예술분야의 전문인을 키워내자는 취지에서 설립된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이제까지 그 취지에 걸맞게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해 왔다. 이제 우리사회도 경직된 모습에서 벗어나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성과에 박수를 보내고 그들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는 우리나라 예술계에 색다른 바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다른 나라들이 50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만들어낸 제도들을 숙고하며 시간을 버는 것이다.

조수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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