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보통신부는 우리나라 국민 4명 중 1명이 인터넷 이용자라는 통계를 발표했다. 이 중 20대 이하가 70%라는 것과 여성이용자가 남성이용자의 절반 가량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국민의 40%인 인터넷 사용자가 유권자의 70%를 차지하는 미국에 비해서 훨씬 적은 비율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다른 통신 수단과는 달리 대규모의 정보의 공유와 토론을 통한 여론 형성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그 파급 효과는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실제로 최근에 인터넷을 통해 시민들이 목소리를 내고 사이버 공간의 여론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2000년 1월 29일 오후 3시, 명동성당 앞에서 '2000년 시민총선연대'의 낙천낙선운동지지 집회가 진행 중일 때 근처 한빛 은행 앞 길에서는 프로야구 팬들의 모임인 '팬들의 선물'과 송진우, 양준혁 선수 등이 함께 하는 선수협의회 지지 서명운동이 한창이었다. 인접한 두 장소에서 서로 다른 구호를 외쳤던 이 단체들은 인터넷상의 여론조성에 힘입어 실제 사회를 개혁하려는 열정을 지닌 순수한 시민단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특히 4대 통신과 인터넷의 야구팬들을 중심으로 모인 '팬들의 선물'은 처음부터 선수협의회를 지지하는 사이버 공간의 서명 운동을 시작으로 자생된 단체이다. 그리고 실제로 시민들의 자발적인 관심과 참여로 선수협의회가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도움을 주어왔다.
2000년 총선시민연대 사이트(www.ngokorea.org)도 2월 30일 현재 개설된지 20일도 채 못되어 접속 건수 27만 회가 넘고 15000여 명이 사이버 서명을 할만큼 네티즌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다. 시민들의 호응은 인터넷 상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전국에서 은행 계좌 (하나162-093237-00105 예금주:국민주권)를 통해 모이는 후원금도 하루 평균 1500만원 정도라고 한다. 그 후원금으로 지난 18일에 개설된 사무실은 시민들이 기증한 책상과 컴퓨터 등 사무용 집기들로 꾸며졌고 서울거주 자원봉사도 10여명이라고 한다.
 
이런 인터넷을 통한 시민의 정치, 사회참여가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다. 소위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기존의 대의민주주의가 가지고 있는 공간적, 시간적 한계를 극복하고 국민의 의사를 직접 반영할 수 있는 '전자직접민주주의'에 대한 낙관은 오래 전부터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95~96부터 한창 인기를 끌던 PC통신상에는 97년 대선 당시 정치 토론방들이 기대 속에서 우후죽순 식으로 생겨났었다. 그러나 발전적인 토론이 이뤄져서 실제 정책에 반영되기보다는 특정 정치인의 선전용으로 이용되고 선거가

 끝난 후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았다. 인터넷상의 사이버 개혁국회 개설 당시에는 사이버 의원 총회를 개최하는 등 의욕적으로 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회의 측의 무책임한 사이트 운영은 네티즌들을 실망시켰다. 결국 사이트 내의 논의를 정책에 반영할 수 없다는 국민회의의 입장 표명 이후 의원들이 대거 사퇴함에 따라 명목상으로만 남아 있다가 최근에 폐쇄되었다.
 이처럼 전자 민주주의의 현실화에는 어려움이 많다. 그 중 기술적인 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특히 인터넷의 참여와 토론문화의 정착은 직접 전자민주주의의 관건이다.

2000년 총선 시민연대 사이트의 20대 참여광장에는 하루에 약 400여 개의 글이 올라온다. 비교적 정치에 관심 있는 네티즌들이 방문하는 사이트의 게시판임에도 불구하고 단순 비방 혹은 옹호성 글이나 욕설이 섞인 글이 차지하는 비율이 4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사이버 공간의 도덕성과 질서 문제도 심각하다. 그러나 총선시민연대의 박정태씨는 아직 그 자체를 문제삼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는 계속해서 "지금까지 우리 사회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창구조차 제대로 마련되어있지 않았었다"면서 "토론이 되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아직까지는 감정적이더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우선 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통신의 자유를 지나칠 정도로 통제 받았다. 정부에서 미국의 정보사이트인‘지오시티즈(Geocities)’에 '북한찬양  홈페이지’가 있다는 이유로 사이트에 접근 자체를 봉쇄시킨 일도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97년 대선 당시에는 통신인 4명을 선거법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수십명을 불구속 입건하는 일들이 발생해서 국내 인터넷잡지들은 인권단체들과 연대해서 시위를 하기도 했다. 통신 경력 7년째인 김동필씨(통신자유를위한모임 전대표)도 97년 통신에 올린 글을 빌미로 안기부의 내사를 받은 적이 있다. 그러나 통

신으로 500명의 서명을 받기가 어려웠던 초기에 비하면 인터넷으로 하루에 1500여 명의 서명 정도는 거뜬히 받아낼 수 있을 정도인 요즘은 토론 참여자의 수와 질, 정부 규제의 완화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1월 28일 이후 2000년 총선시민연대 사이트에는 '게시물 작성원칙'이 공고되었다. 일단 게시된 글에 대해서는 무삭제의 원칙을 고수하려던 총선연대 측도 게시판 내에서 자체적으로 게시물 규제를 요청하는 항의가 빗발치자 '게시물 작성원칙'을 적용하기로 한 것이다.  네티즌들 사이에서 토론을 방해하는 글을 퇴출하는 분위기는 인터넷상의 토론문화가 자리를 잡아가는 자정작용의 한 과정이다. 그러나 "제재한다고 금방 바뀔 일은 아닌 것 같다"는 박정태 씨의 말처럼 이 원칙의 적용이  과연 어느 정도의 효과와 역효과를 야기할 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사이버 민주주의를 앞세워 인터넷을 이용한 전략을 내걸지 않은 당이 거의 없다. 심지어 '인터넷 한국당(창당준비위원회)'과 '맑은나라당(창준)'처럼 인터넷을 통해서만 활동을 하겠다고 밝힌 신흥 당들도 있다. 그 중에서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홍사덕 의원과 장기표 신문명연구원장이 주도하던 무지개 연합의 사이버 정책들은 네티즌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었다. 지난 27일 홍사덕 의원은 한나라당으로 떠났지만 장기표원장은 다시 참신한 인물을 중심으로 2월 8일에 발기인대회를 준비하고 있다. 인터넷홈페이지를 통해서 당의 회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당의 주요 행사들을 인터넷으로 생중계 한다는 계획 등도 차질 없이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진보적인 인터넷 웹진과 PC통신 동호회들이 참여한 '총선정보통신연대'가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대자보(http://jabo.co.kr), 더럽지(www.therob,co.kr), 통신자유를위한모임(나우누리), 한글사랑(하이텔) 등 현재 13개의 단체가 가입되어있는 '총선정보통신연대'는 정부의 낙천낙선운동 불법규정에 움직임에 맞서 시민의 정치 참여를 지지하기 위해서 더 많은 단체들이 연대하는 운동을 추진중이다.
'총선정보통신연대'의 활동이 시작되면 사이버 세계에서는 여기에 호응하는 또 다른 지지 여론이 일어날 것이고 이렇게 조직화된 목소리는 실제로 공정한 선거를 통한 정치 개혁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인터넷을 이용한 시민 참여의 획기적인 증가로 정치영역의 정보화 혁명이라고 불리는 이번 총선을 계기로 시티즌들은 멀지 않은 미래에 전자민주주의를 누릴 네티즌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
                                                                                                 김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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