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저 아가씨 못 보던 얼굴인데 왜 저렇게 어려 보이지?"  미아리 텍사스촌의 업소를 돌아보던 김강자(55) 신임 종암 경찰서장은 못내 의심스러운 듯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간다. 주위에 있던 '이모'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아예 다 굶어 죽이려고 하나"라고 강하게 불만을 표시한다. 김 서장과 다른 경찰들이 10여분 동안 여자의 지문 대조 등을 통해 미성년자가 아님을 확인하고서야 가게를 나온다. 다시 김 서장 일행의 새벽 순찰은 계속된다.

새벽 2시를 넘어가는 시각. 여느 때 같으면 호객 행위와 취객들로 한창 때일 시간이지만 매일 불시에 들이닥치는 김 서장 덕분에 미아리 텍사스촌 일대는 개점휴업 상태다. 길가에 늘어선 포장마차 구석의 담요 밑에서 전화로 김 서장이 순찰을 나왔다고 알리는 낮은 목소리가 새어나온다. 김 서장은 이미 영업 중지 처분을 받고 문을 닫은 업소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영업 중인 곳은 아예 가게 안으로 들어가 아가씨들 사이에 앉아 이야기를 한다. 내부 사정을 알아야만 단속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총경은 이렇게 250여 개 업소를 일일이 둘러보고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경찰서로 돌아간다. 아예 숙소를 경찰서로 옮겨버린 그의 퇴근이자 출근이다.

지난 1월 6일 종암 경찰서로 부임하자마자 '미성년자 매매춘과의 전쟁'을 선포한 김강자 종암 경찰서장은 충북 옥천서장 재임 당시에도 티켓 다방 미성년 매매춘을 근절시켰던 풍기 단속 전문 '여자 홍길동'이다. "과거의 지엽적이고 일발적인 단속을 답습할 생각이었다면 시작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먼저 철저히 실태 파악을 하고 미성년자 윤락 행위를 조장하는 공급과 수요 양쪽을 동시에 공략하여 발본색원하겠습니다." 그의 미성년자 매매춘 근절에 대한 굳은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그가 단속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단속한 미성년자에 대한 후속조치가 필수적입니다." 그는 수많은 10대들이 부모에게 인도되는 순간 다시 달아나는 것을 보면서 단속이 갖는 한계를 절감해왔다. "미성년자들을 윤락가에서 밀어내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의 건강한 시민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단속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그래서 미성년자 매매춘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경찰의 강력한 단속과 함께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여러 사회 단체의 참여 그리고 국민 여러분의 의식 전환이 함께 해야 합니다".

김 서장은 윤락 여성들을 가치 체계가 흔들린 우리 사회와 파렴치한 업주들의 피해자라고 본다. 그 스스로도 편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윤락가에서 많은 여성들을 만나보면서 이들에 대한 시각이 바뀌었다. "단지 판단력이 약간 모자랄 뿐 우리 아들딸과 똑같은 아이들입니다." 새벽 순찰을 나가 얘기할 때면 자신이 베어먹던 사과를 김 총경 입에 물려주는 아이도 있다. 예전 같으면 윤락녀가 먹던 것을 더러워서 어떻게 먹을까 싶었겠지만, 지금은 딸 같은 아이가 짙은 화장과 가슴이 다 드러나는 드레스를 입고 건네주는 사과에 눈물이 울컥 솟는다.

일부에서는 미성년자만 단속하는 방법이 오히려 성인 윤락을 방조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텍사스촌에는 단속 경찰에게 "미성년자 없으니 떳떳하다"고 말하는 업주들도 있다. 김 서장은 이 부분에 대해 단호한 입장이다.
"현재 미성년자만 단속하는 것은 하나의 전략입니다. 너무나 크게 성장해 있는 윤락가를 한 번에 모두 단속할 수는 없습니다. 우선 윤락 여성의 50%에 육박한다고 추정되는 미성년자만이라도 윤락가에서 사라지면 절반의 성공입니다.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요."
윤락가에 대해서도 이상주의적인 생각은 갖고 있지 않다. 대대적인 단속으로 윤락가를 일소해 버린다 하더라도, 그 이후에는 성범죄의 폭발적 증가와 함께 인터넷 원조 교제와 같이 음성적인 경로를 통한 윤락 행위가 더 번성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옥천 경찰서장 당시 티켓 다방을 단속했을 때도 그랬듯이, 여기서도 본격적인 단속이 시작되자 텍사스촌 업주들로부터 항의 전화가 잇따랐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두렵기는 커녕 협박을 받으면 오히려 더 오기가 나고 힘이 솟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순경에서 시작하여 여성으로서 총경까지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그가 경찰의 길에 들어서면서 남녀차별의 벽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군인을 지망하던 그가 진로 변경을 한 것은 경찰 조직이 좀더 융통성이 있어 보였고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여경을 과소평가하고 무시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과잉 보호하는 것은 더 심각했다.

그가 경위로 있을 때 경찰서 소속의 여경 30명 전원은 민원실에 배치 받아 한 달에 하루, 이틀 정도 고위 공무원을 경호하는 것이 전부였다. 경찰서 내에서는 교통 단속할 경찰이 모자라는 상황이었지만 여경들은 민원실에 모여 앉아 하는 일 없이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김 총경은 여성 교통 순찰대 조직을 강력히 건의, 우리 나라 최초의 여경 교통 순찰대를 만들었다. 당시 서에서는 이들을 일컬어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라고 할 정도로 높은 실적을 올렸다.

그러나 여전히 눈비 오는 날, 날씨가 아주 춥거나 더운 날에는 여경들을 내보내지 말라는 상관의 지시가 내려왔다. 젊은 여자들을 궂은 날씨에 내보낼 수 없다는 때아닌 기사도 정신이었다.  그러면서도 경관 단축 지시가 있을 때면 어김없이 여경이 일순위였다. 근무 효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다. 김 서장은 오기 반, 욕심 반으로 여성들이 접근할 수 없었던 곳, 더 힘든 곳만을 자청하며 연이어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았다.

여성 최초 서울시경 민원봉사실장으로 있을 당시에는 미해결 상태의 민원을 찾아내 해결사로 나섰다. 민원 중에는 윤락가로 흘러 들어간 가출 소녀 문제가 많았다. 김 서장이 미성년자 매매춘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이 때부터다. 인신매매범에게 잡혀간 딸을 찾아 달라며 우는 부모들과 함께 윤락가를 헤매고 다니기도 했다. 여학생을 찾으려고 미아리 텍사스촌의 업소에 들어갔다가 업주가 도망가면서 밖에서 문을 잠궈 몇 시간 동안 감금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그때 윤락가에서 비참하게 생활하고 있는 미성년자들과 괴로워하는 가족들을 보며, 그는 경찰의 힘으로 이들을 반드시 도와야겠다고 결심했다. 딸을 찾은 가족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며 맛보았던 성취감이 그를 더 거리로 내몰았다. 낮에는 민원실에서 퇴근 후에는 사복 차림으로 잠복하며 미성년 매매춘 여성들을 가족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계속했다.

그의 이런 행동은 조직 내에서 문제가 되었다. "엄연한 월권 행위였음을 인정하고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관심조차 갖지 않고, 나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모른 체 할 수는 없었지요. 쫓겨날 각오를 하고, 다른 부서로 가더라도 이 일은 계속할 것을 결심하고 마지막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이미 그 일에 매료되어 있었죠". 결국 서울 시경에서는 새 훈령까지 만들어 그녀를 막았다.

그러나 좌절할 그가 아니었다. 95년 노원 경찰서로 자리를 옮길 때는 힘든 업무 때문에 남자들도 꺼리는 방범과장을 자청하여 다시 한 번 경찰서 상사들을 회의실에 모이게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여성 방범과장은 있을 수도 없는 일로 여겨졌다. 그녀는 언론과 당시 장영달 국회의원의 도움으로 최초의 여성 방범과장이 되었다.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최일선에서 그녀는 청렴하고 친절한 자세와 고집스런 단속력, 모성애에 바탕을 둔 통솔력을 인정받았고, 여경 전체의 이미지 쇄신에 큰 역할을 하였다.

지난 98년 충북 옥천 경찰서에 최초의 여성 경찰서장으로 재임할 때는 옥천경찰서가 충북도내 단속 실적은 물론 친절 대민 서비스 부문에서도 1등을 했다. 김 서장은 "여성 최초의 자리에 서서 여경 전체의 책임감을 느껴, 항상 남자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며 "내가 증명해 보였듯 이젠 여경을 사무실의 꽃처럼 대하는 일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가 막 순경으로 경찰 조직에 들어왔을 때에 비해 신세대 여경들은 용감해지고 적극적으로 변했다. 더이상 민원실 책상에만 앉아있는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아니라 남자들과 똑같이 단속을 나가고 동등한 자리에서 경찰의 본분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그 동안 자신이 걸어온 길이 헛되지 않았구나 보람도 느끼고 힘도 난다. 그렇다고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경 인사 심사에서 늘 문제가 되는 근무 시간 문제. 그는 이젠 여경도 남자와 똑같이 야간 근무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등한 기회를 얻기 위해서는 동등한 의무를 해야 한다는 지론이다.

그래서 김 서장은 2월 중에 종암서 내 여경을 모두 모아 특별 교육을 시키고, 전국 최초로 여경이 남자와 똑같은 시간동안 야간 근무를 하도록 할 계획이다. 미성년 매매춘 전쟁도 그랬듯이 여경 야간근무도 이 곳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확산되어, 모든 여경의 권리가 신장되는 것이 김 서장의 바람이다. 또한 이 것은 엄마의 뒤를 이어 훌륭한 경찰이 되기를 꿈꾸는 둘째 딸에게 훗날 마음껏 능력을 발휘하여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고 싶은 엄마의 바람이기도 하다.

김 서장은 고등학생인 딸에게 저녁 간식 거리도 챙겨주지 못하는 자신을 낙점 어머니라고 말한다. 그런 엄마를 자랑스럽게 여겨주는 두 딸과 자신의 생활을 이해해주고 가사 일을 도와주는 남편, 김환국씨(55·공무원)에게 고마울 뿐이다. 종암경찰서의 심미정 경장은 "미성년 매매춘과의 전쟁터에서는 전투를 선두 지휘하는 태권도 3단의 김강자 서장님이시지만, 우리 경관들에게는 가슴 따뜻한 어머니"라고 그를 소개한다. 야참 시간 취재기자의 남자 친구를 궁금해하고, 대학에 합격한 첫째 딸을 자랑하는 그는 시원시원한 성격의 친근한 '옆집 아주머니'였다.

그래서 김 서장이 좋아하는 노래는 카리스마 넘치는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하바네라'고, 이웃집 아주머니인 그가 좋아하는 노래는 '남촌'이다. 김 서장이 존경하는 사람은 대처이고, 김강자씨가 존경하는 사람은 소설가 박경리다. 언젠가는 꼭 책을 한 권 내보고 싶다는 그는 박경리씨의 깊고 넓은 사고력과 필력이 마냥 부럽다. 고향에서 어머님과 나물 캐는 것이 좋다며 문득 전라도 고향 생각이 났는지 '산 너머 남촌에는'을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금세 김 서장은 "내가 서울청장만 되면 한 번 싹…"하면 호탕한 웃음을 터뜨린다. 한 번 싹 무엇을 하실지는 몇 년 후 알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임정진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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