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말 '맥랑 시대(KBS)' 이후 92년도의 '공룡 선생(SBS)' 그리고 '나(MBC 97년)', '내일(EBS 98∼99년)' '네 꿈을 펼쳐라(EBS 99년)' , '학교 시리즈(KBS 99년부터)' 등으로 이어지는 청소년 드라마에는 재미있게도 "공식"이 있다.  "삼각형의 밑변 곱하기 높이는 넓이"라는 수학 공식처럼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등장 인물의 성격과 그들 사이의 대립 구도, 문제 해결 방식은 적어도 일정한 공식에 따라 전개된다.

대게 주인공은 활발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여학생이다. 공부를 잘 하진 않지만 똑똑하고 야무지다. 하지만  마음속 어딘가에 작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런 그 아이 앞에 감싸주고 싶고 이해할 수 있는 상처를 가진 왕자 같은 남자아이가 다가온다. 그 외에 무지 장난을 좋아하는 남학생 패거리 몇몇과(주로 드라마에서 감초 노릇) 수다스럽고 소문을 만드는 여학생 패거리가 있다. 그리고  우수에 가득 찬 미지의 날라리 여학생은 맨 뒷자리에 앉아 아웃사이더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번엔 드라마의 배경을 보자. 입시 위주의 학교 교육은 아이들의  개성을 짓밟고 무조건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강요한다. 그러다 경쟁에서 뒤쳐진 아이들은 잘 하는 몇몇 아이들의 들러리밖에 되지 않는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삭막한 학교가 싫어 방황하거나 가까스로 적응을 해도 결국 상처받기 마련이다.


첫 번째 공식: 자신의 세계를 고수하는 직선적 터프가이

어린 시절 부모님의 이혼으로 상처받은 어린 소년은 갑자기 어른이 되어버린 것일까? 이런 캐릭터를 보면 순정 만화 <캔디 캔디>의 테리우스가 생각난다. 고귀한 귀족 가문 출신이지만 아버지는 여배우인 어머니를 버리고 자기 신분과 맞는 여자를 택한다. 그 때문에 소년은 어머니를 버린  아버지와 자기 환경을 저주하며(버림받는 어머니마저) 학교에서 불량 학생으로 찍힌다. 담배를 펴 대며 학교의 권위를 거부하고 모든 것을 우습게 보는 우수에 찬 소년! 그의 멋있는 외모와 카리스마는 외로움을 사랑하는 여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다. 하지만 예상대로 그런 여학생들을 차갑게 무시한다. 그래도 좋아! 왜? 멋있으니까. 

우리 청소년 드라마를 한번 보자. <학교1>에서 강우혁 으로 분한 장혁은 확실히 이 드라마를  통해 떴다. 신기할 정도로 영화배우 정우성을 닮은 외모에 HOT의 장우혁을 연상시키는 이름...우혁은 큰 술집을 경영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어린 시절부터 혼자 지내는 것에 익숙했고 그래서인지 자기만의 세계가 강해 반 친구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무조건 대학에 가야 한다는 입시위주 학교 공부에 흥미를 잃은지 오래이지만 나름대로 인문학적 성향이 풍부하다. 문학 작품을 아끼고 여선생님을 흠모하지만…. 하지만 일진회 멤버들은 그가 화려하게 부활하기를 꿈꾼다. 그들의 짱으로. 그의 고독한 외모와 성격에 공감대를 느끼는 여학생도 많다. 여성의 본질적인 모성애를 자극하기 때문이 아닐까?

<학교 3>에서 "김석주"라는 캐릭터는 제 2의 강우혁, 아니 테리우스이다. 남자다운 생김새에 훤칠한 키, 강한 눈망울에 여학생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지만 그의 살벌한 태도로 곧 돌아서게 된다. 김석주의 어머니는 굉장한 재력가인 아버지의 후처! 즉 그는 "첩의 자식"인 셈이다. 그것이 어두운 과거로 자리잡아 그를 더욱 고독하게 만든다. 그 역시 자기만의 세계 즉 해드폰 안에 흐르는 음악을 들으며 타인과의 접촉 자체를 혐오한다. 덧붙여서 그에게 허락된 몇 안되는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비버리"라고 불리는 귀족서클이다. 그래봤자 합쳐서 3명밖에 안되지만. 이렇게 청소년 드라마에는 매번 고뇌에 찬 테리우스가 등장해서 여학생들의 가슴을 아프게 한다. 결국 우리의 불량 소년은 청소년 드라마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매력 덩어리이다.


두 번째 공식: 순수 그리고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자유. 중성적인 매력

 어린 시절 순정 만화를 보면서 항상 어려움을 겪는 여주인공의 삶에 공감하며 안타까워 한 적이 있다. 그래서 불쌍한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동갑내기 부유한 소녀를 미워하고 그녀의 아픔을 함께 나누려는 멋진 왕자님을 동경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주인공과 멋진 왕자님 사이가 잘 될 수 있도록 조마조마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난다. 즉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밝게 사는 여주인공과 어두운 과거를 가진 멋진 남학생간의 만남이다. 첫 번째 공식에서 테리우스가 나왔으니 이제 캔디가 나올 차례다. 예쁘지는 않지만 귀여운 소녀 캔디! 알다시피 캔디는 절대 내숭떨지 않고 활발하며 솔직한데다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용기와 순수함을 지녔다. 생긴 건 여자인데 남자 같다는 말이 가장 적당할 것 같다. 캔디 역시 우리 청소년 드라마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학교 1>에서 이민재 역할의 최강희는 특유의 중성적 고음과 짧은 커트 머리로 그녀의 성격을 충분히 암시한다. 거침없는 말투, 솔직함. 소위 말하는 여자다움은 존재하지 않나보다. 하지만 그녀 역시 좋아하는 강우혁을 위해 어색해하며 치마를 입기도 한다. 불의를 참지 못해 일을 해결하려다 오히려 문제를 더 확대시키는 다혈질!

 이번엔 <학교2> 이다. 우리의 2학년 5반 반장은 성적순이 아닌 인기투표로 반장이 되었다. 너무나 밝고 명랑하고 쾌활하다. 반에 문제가 생기면 앞장서서 해결하려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멋진 소녀! 하지만 건망증에 덜렁대는 성격은 어쩔 수 없다

다음은 <학교 3>의 주인공 다인! 우리의 여주인공 다인은 등장부터 심상치 않다. 시골 대안학교에 다니다 서울로 전학 온 다인에겐 서울 학교의 이상할 정도로 경직되고 천편일률적인 수업이 이해 안 된다. 왜 학교에 운동화를 신고 다니면 안 된다는 거지? 인터넷 소설 공모전에 낼 소설을 준비하느라 수업에도 안 들어간다. 왜? 수업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까. 다인에게는 규제라는 사고가 존재하지 않나보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창의적이다. 귀엽고 당연히 밝은 성격!

세 번째 공식: 세상에 대한 끈을 놓으려 하는 차가움

세 번째 공식에는 날라리 여학생이 등장한다. 그녀는 수업 시간 언제나 창가 또는 뒷문 맨 뒷자리에서 엎드려서 잔다. 얼굴은 반쯤 머리로 덮어있고 약간 풀린 듯한 눈매에서 쓸쓸함이 느껴진다. 왠지 이 소녀는 이유 없이 단순하게 노는 애가 아니라 나름대로 사정이 있고 아니면 철학 비슷한 게 있는 것 같다.


최고의 상종가를 누리는 n세대 스타 김민희. 그녀는 <학교 2>에서 가녀리다 못해 불쌍하게도 마른 몸매와 흐트러진 머리, 흐리지만 빛날 것 같은 매혹적인 눈매의 소유자이다. 그리고 그녀의 역할은 여학생 일진의 2학년 짱인 신혜원. 나이트에서 음악에 의지해서 세상을 잊어버리는 그녀에게 학교란 아에 가치없는 통과의례가 아니었을까? 그녀가 세상을 버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혜원의 분위기 하나만으로 그녀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단지 분위기 하나만으로.


<학교 3>에서 김민희를 잇는 차가운 날라리 준희 또한 냉소적이다. 역시 뒷자리에 앉아서 수업시간 내내 잠만 잔다. 한때 멋진 바이올리니스트를 꿈꾸는 평범한 소녀였지만 이젠 가계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주점에서 술을 팔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을 변하게 한 세상을 원망하며 타협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녀를 잡고 놓지 않으려는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담임 선생님이었다. 그대로 학교에 남아서 끝까지 해보라는 격려하고 다그치는 선생님의 역할이 빛나는 순간이다.


네 번째 공식: 수다 그리고 소문공장

언제나 우리 학교에서는 소위 소문공장들이 있다. 주로 여자 주인공 주변 여자 친구들인 경우가 많다. 여자 주인공 근처에 앉아서 그녀와 주변의 사건을 연결시키기도 혹은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녀들의 입에서 나온 수다가 반 전체의 여론을 형성하고 이야기를 전개시킨다. 이 공장은 하루종일 거울만 들여다보는 공주, 키 크고 운동 잘하는 오락부장,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얌전한 소녀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다섯 번째 공식: 약삭빠른 촉새 귀여운 푼수

'일명 분위기 메이커'라고도 한다. 이들은 주로 남자아이들인데  소문 공장인 여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 전개에 활력소가 된다. 그들의 짓궂은 장난이란 예를 들어 도시락 반찬 뺏어먹기, 돌아다니면서  우유팩 차기, "야!!선생님 오신다" 혹은 선생님이 들어온 줄 도 모르고 신나게 선생님 욕하다 걸려서 맞기 등으로 자칫 주제 위주로 무겁게 흘러가는 이야기 전개를 유연하게 한다. 그들의 이름도 약간 코믹하다. 카리스마 있는 남자 주인공의 이름이 석주라면 원석, 재민, 달식 같이 평범하지만 상대적으론 코믹스런 이름이다. 위급한 순간에  도망가기도 하는 둥 뒷수습 못하는 게 다반사이다.


여섯 번째 공식: 이상적인 선생님. 공포+@=학주

청소년 드라마에 나오는 선생님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생님 다른 하나는 아이들이 싫어하는 선생님! 아이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젊고 의욕에 가득 차 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을 그래도 가장 잘 이해하고 그렇기 때문에 편들어 준다. 수업 방식도 새롭다. 선생님이 교탁에서 그저 줄줄 책을 읽는 것이 아닌 발표 위주 수업이다. 학생들이 싫어하는 선생님은 아침 등교시간에 교문 앞에서 "야 너 이리와!" "복장이 뭐냐!" "벌점 3점, 내일부터 화장실 청소 일주일이다." 라고 잔소리하는 선생님이다. 게다가 수업 시간은 얼마나 졸린지 만약 영어 선생님이라면 발음이 어설프고 사회 선생님이라면 무조건 교과서만 외우라고 한다. 각 학교마다 학주는 공포의 대상이자 뒤에서 몰래 욕하기에 가장 만만한 대상이 되었다. 스승이라기 보단 단속 주임 같다.


일곱 번째 공식:  학교에는 방송반 밖에 없나봐

 특별 활동 시간이다. 자 우리 주인공들은 어떤 써클에 가입했을까? 재미있게도 청소년 드라마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친구들은 언제나 방송반(혹은 연극반)이다. 물론 청소년들이 책보다는 tv, internet에 익숙하기도 하겠지만 방송이라는 매체는 어딘지 매력적이다. 그래서 방송제를 둘러싸고 작품을 준비하면서 학교측과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왜? 영상 매체는 우리가 공부 스트레스에 얼마나 많이 시달리는지 잘 표현해 줄 수 있으니까!
 

이처럼 우리의 중·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는 항상 뻔한 공식으로 전개된다. 배경 인물이 이렇다면 이야기 내용은 어떨까? 거의 이성, 성적, 왕따, 성문제 이야기이다. 즉 타이틀과 출연자 얼굴만 바뀌었지 내용은 여전히 재탕 삼탕 되고 있다. 과연 우리 청소년들이 이  네 가지  화두 외엔 화제 거리가 없는 것일까? 인물 설정이 이런 식으로 뻔하니까 이야기 전개도 뻔할 수밖에 없다 즉 공식화된 인물이 정해진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것이 우리 청소년 드라마의 모습이다. 물론 드라마의 포맷으로 구성되다 보니 좀더 극적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위의 네 가지 문제로 청소년을 해석하기엔 부족하다.


 드라마 <네 꿈을 펼쳐라>의 홈페이지에는 "청소년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과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정신적, 육체적인 고민과 갈등의 해소과정을 드라마 형식으로 보여줌으로써 청소년들이 건전한 가치관과 인성을 함양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라는 기획의도를 소개한다.  우리 시대 청소년을 대변하고 그들의 정서 함양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 정형화된 인물보단 다양한 모습을 연출할 수 있는 캐릭터를 설정해야 한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같이 예측 불가능하고 다양한 세대가 바로 청소년이다.  드라마를 통해 청소년을 제대로 대변하고 싶으면 뻔한 공식으로 접근하지 말라!

서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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