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9월 누가 서울대의 프락치를 만들었는가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과반수 의석을 차지하며, 한나라당을 제치고 원내 제1당이 됐다. 열린우리당을 지지한 사람들은 "민주화의 승리, 이제야말로 부패정치를 청산하고 진정한 개혁과 민주화를 이루어 갈 수 있게 되었다” 고 말하며 기뻐했다. 그것은 열린우리당 내 운동권 출신 의원들에게 거는 커다란 기대의 표현이다.

그러나 지지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은 유시민, 윤호중 의원은 선거운동 기간 중 후보자 신상정보 공개 자료에 허위사실이 있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문제가 되는 것은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 사건의 피해자들은 ‘서울대 민간인 고문 폭행 사건’이라 부르는 사건이다.

프락치? 가짜학생? 민간인?

1983년 12월, 전두환 정권은 ‘학원자율화 조캄를 발표했다. 그동안 학생운동으로 수감되었던 학생들과 교수들이 학교로 돌아왔다. 전두환 정권은 학내에 상주하던 경찰들 또한 철수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경찰들의 옷만 사복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학내를 감찰하던 정부요원의 투입방식은 더욱 자연스럽고 은밀해졌다. 바로 *프락치다.

프락치들은 당시 운동권의 메카였던 서울대에서 주로 활동했다. 서울대 학생들이 프락치를 잡으려고 혈안이 된 가운데 1984년 9월 26일 프락치 사건은 발생했다. 전기동(49, 관악구청 근무)씨를 비롯한 프락치로 오인 받은 정용범, 임신현, 손형구 네 사람은 서울대 학생들에 의해 연행돼 조사를 받았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에 의해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피해자들은 정신을 잃고 병원으로 수송되었고, 9월 30일 이에 가담한 다수의 서울대 학생들은 수사기관에 체포됐다. 유시민, 윤호중, 백태웅 등 서울대 운동권 간부들은 구속 후, 징역 판결을 받았다.

나는 프락치가 아니다

당시 재판에서 공식적인 피해자로 판명된 전기동씨는 말한다."나는 방송통신대학 법학과 3학년이었다. 학교 레포트를 준비하고자 서울대 법대 교수를 만나 자료를 받고 이동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학생들에 의해 학도호국단이란 곳에 영문도 모르고 끌려갔고, 그들은 계속 나에게 프락치임을 자백하라고 했다." 그는 물고문까지 당했다. 전씨를 비롯한 피해자들은 엄청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유시민, 윤호중 의원은 이 사건을 민주화 운동으로 왜곡해서 나의 명예를 훼손시키고 또다시 상처를 주고 있다"며 전씨는 울분을 토로한다.

시대가 우리를 범죄자로 만들었다

1985년 재판결과와 피해자의 증언, 85년 옥중에서 작성된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등 여러 정황을 볼 때, 피해자들이 서울대 학생들에게 폭력을 당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유시민 의원은 "인간과 인간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행위는 본질적으로 그 사회의 현재의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 수준의 반영이다. 정권은 교정 구석구석에 감시초소를 세우고 사복형사를 상주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교직원까지 시위진압대로 동원했다. 이러한 정권의 더 큰 인권 유린과 폭행을 잊어서는 안된다"라고 말한다. 윤호중 의원은 "서울대프락치사건은 민주화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정권에 의해 조작되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폭력 범죄가 아니고 명백한 민주화 운동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래도 인권은 중요하다

그러나 인권 문제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한림대학교 정치학과 A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민주화의 이념을 생각하는 운동권들이 인권의 이념에는 소홀했던 거 같다. 시대의 논리와 상황을 떠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시대에나 보편타당한 정의나 인권이다" 유시민 의원도 "시대 상황이라는 이름 안에서 개인의 인권이 절대로 유린되어서는 안된다. 당시 사건에서의 나를 포함한 학생들의 윤리적 과실을 정당화할 마음은 없다"고 말한다.

서울대 프락치 사건 VS 서울대 외부인 감금 폭행 사건

사건의 명칭에 대한 논란은 계속 되고 있다. "서울대 외부인 폭행 감금 사건"으로 불러야 하는가 아님 “서울대 프락치 사건"으로 불러야 하는가. 전기동씨는 1994년 언론중재위원회에 경향신문, 동아일보의 '서울대 프락치 사건' 표현의 정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윤호중 의원은 2004년 4월 14일'서울대 프락치사건'의 진상 소명서에서 "독재 권력에 의해 명명되었던 '서울대외부인감금폭행사건'이라는 명칭을 쓰는 것은, 당시 권력의 의도를 인정하는 것이다"라며 반박했다. 그는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원회의 명예회복을 신청한 상태다.

시대의 상황을 간과할 수는 없다

시대상황의 논리로 인권을 무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유시민 의원의 말대로 학생운동의 과도한 열정으로 인한 인간적 미숙함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유시민 의원은 "전두환 정권은 학생들의 허위 진술을 강요하고,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은 학생회 간부들까지 모조리 잡아들였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전두환 정권의 민주화 운동 관련 학원탄압과정으로 미루어 볼 때, 타당성을 가진다. 한국 민주화 투쟁의 상징인 80년대 운동권 학생들. 그들에게서 폭력을 자행하게끔 한 것은 결국 1980년대의 비도덕적이고, 민주화를 가로막았던 정권의 야욕이다. 그것이 바로 이 불행한 사건에서 절대로 간과되어서는 안 될 궁극적 원인이 아니었을까?


 
우진영 수습기자 <taijiplus@freechal.com>

* 프락치 : 러시아 말 fraktsiya 가 그 어원으로 정당이 대중단체 내부에 조직하는 당원조직. 넓게는 밀정, 첩자와 같은 뜻으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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