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6월 15일, 평양에서는 역사적인 남북 정상 회담이 개최되었다. 함께 인사를 나누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모습에 세계의 눈이 집중되고 남북 국민들은 감격했다. 우리 언론과 시민들은 50년만의 남북 정상의 만남으로 통일이 눈앞에 온 듯 흥분하고 있었다. 

남북, 화려한 6월 

이와같은 화해무드가 한반도에 퍼지기 정확히 일년 전, 우리 서해상에서는 남북 함정 간에 총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1999년 6월, 서해 연평도에서 북한 어선의 ‘꽂게잡이’로 시작된 남북 갈등이 6월 15일 급기야 서해 교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북한이 꽃게잡이 어선을 내세워 NLL 자체를 무시하며 침범해왔기 때문이었다.  

북한은 그동안 NLL을 인정하지 않았다. NLL은 1953년 정전 직후 충돌을 막기 위해 유엔군 사령관이 북한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설정한 해양 경계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은 매년 20~30건의 선박 월선을 강행하고 NLL이 국제법상 인정받지 못함을 내세워 NLL무효화를 주장해왔다. 북한이 패배하기는 했지만 서해 교전 역시 이러한 NLL문제를 다시 수면위로 끌어들이기 위한 북한의 의도된 행동이었다.  

서해교전과 남북 정상회담으로 지난 2년 간 6월의 역사는 비교적 화려했다. 이에 뒤질세라 2001년 6월의 한반도에도 남북관계에 대한 또 다른 역사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6월 2일부터 북한의 상선들이 우리의 영해와 북방한계선을 침범하고 있는 것이다. 6.15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 관계의 많은 진전을 기대하며 꿈속을 헤매던 우리에게 북한은 현실을 직시하라는 듯 연일 이러한 사건을 일으키고 있다. 일년 전의 평화적 분위기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흔들리는 정부  

북한 상선들은 6월 한 달 동안 10여 차례에 걸쳐 우리의 영해와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했다. 첫 영해 침범 후, 정부는 6월 3일 국가안보회의(NSC)를 통해 북한이 사전 통보를 한다면 제주해협 통과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소극적 대응을 나타냈다. 이는 상호 무해 통항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 일방적으로 베푸는 혜택이었다. 이 발표 때문인지 북한은 며칠 간격으로 제주해협과 동, 서해 북방한계선을 넘나들었고 우리 해군은 이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이러한 군의 미온적 태도는 많은 비판을 받기 시작했다. 남북 화해무드가 형성되고 있다지만 아직 우리는 정전 대치중이기 때문이다. 특히 야당은 정부의 안보의식 부재에 대해 강력히 비난했고 여야 정치인들은 극명하게 대립하게 되었다.  

여론이 악화되자 정부는 7일 급기야 북한 상선에 대해 다시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동신 국방장관은 국회 국방위에서 교전규칙과 작전예규에 따른 무력사용 등 강력 대처 방안을 나타냈다. 

불과 4일 사이에 바뀐 정부의 대북 정책으로 사태는 더욱 혼란스럽게 되었다. 북한의 행동에 흔들리고 여론에 흔들리는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은 한국 내부의 갈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한국의 대북정책을 확인하고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려 한 북한의 정치*군사적 의도를 실현하도록 도와준 셈이 되었다.   

정부는 또한 15일 동,서해상 북방한계선에서의 군 작전예규 교전규칙 등 종합개선안을 준비 중이라고 발표함으로써 북한의 전략에 말려 든 듯한 인상을 남겼다. 서해 42.5마일, 동해 218마일의 넓은 북방한계선을 완전히 지키기 어려운 우리 해군을 고려하여 결정하였다지만 뒤에서 미소지을 북한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9발 총성에 정치권 하나로? 

북한 상선의 계속적인 침범으로 군과 정부에 대한 비난이 고조되고 있던 24일, 또 한척의 북한 어선이 서해 북방한계선을 침범하였다. 그동안 소극적 대응으로 비난받았던 군 당국은 9발의 경고 사격으로 대항하는 북측 어선을 내쫒았다. 군은 어선 안에 있던 사람들이 각목을 들고 횃불을 던지는 등 대항했기 때문에 사격을 했다고 밝혔으나 정치권과 몇 몇 언론에서는 앞뒤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강경 대응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하였다.  

여당은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응이었다며 기존의 입장 고수를 강조했고 야당은 모처럼 군이 본연의 자세를 되찾은 것 같다며 그들의 생각이 옳았음을 내세웠다. 정치인들은 이 사건을 서로 자신의 논리 안에서 자기 편한 식으로 해석했지만 모처럼 군의 대응이 적절했다며 한목소리를 나타내었다. 이는 전쟁놀이에서 자신의 편이 이겼다고 우기는 어린아이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북한의 최근 영해와 NLL침범은 2년 전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일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루어진 것이다. NLL문제 공론화, 신항로 개척, 남북*북미 회담에서의 유리한 고지 점령 등 여러 상황에서 북한은 그들의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침범-화해-침범-? 

북한은 6월 24일 새벽의 침범을 마지막으로 이 사태를 일단락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해상은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1999년 6월의 서해교전, 2000년 6월의 남북 정상회담, 2001년 6월 또 한번의 북한 상선의 침범. 북한은 3년 사이 매년 그 입장을 180도 바꿔가며 한국의 반응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 정치권의 내부 혼란 자초는 우리 스스로 북한이 쳐 놓은 덫에 빠져버리는 행위이다. 유연하고 이성적인 대북 정책으로 북한의 자극에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규칙대로라면 2002년 6월은 화해를 이루어야 하는 해인데, 북한이 또 어떤 카드로 게임을 걸어올지 지켜볼 일이다.

김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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