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소은주 씨(26)는 인스타그램 계정이 두 개다. 처음 만든 계정이 20대 소 씨의 모습 위주라면 나중에 만든 계정에는 곰돌이 캐릭터와 각종 굿즈가 가득하다.

그는 “그림 그리는 게 즐겁고, 직접 만든 캐릭터가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일이 가장 기쁘다”며 “작가로서의 내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캐릭터가 알려지면 그걸로 족하다”고 말했다.

소 씨가 나중에 만든 계정은 부캐용이다. 부캐는 부(副)캐릭터의 줄임말이다. 게임에서 주로 사용하던 용어. 원래의 자신을 보여주는 캐릭터, 즉 ‘본(本)캐’와 별도로 나중에 새로 만든 캐릭터가 부캐다. 평소 모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정체성인 셈이다.

대구한의대의 강민희 이승우 교수는 논문 ‘멀티 페르소나의 사례와 의미’에서 부캐를 “‘본캐’와 다른 것이자 고정된 기존의 자기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새로운 삶을 사는 출구”로 봤다.

▲ 소은주 씨의 부캐 인스타그램

부캐 열풍은 예능프로그램에서 시작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MBC ‘놀면 뭐하니’다. MC이자 개그맨인 유재석은 이 프로그램에서 ▲ 트로트 가수 ‘유산슬’ ▲ 걸그룹 프로듀서 ‘지미유’ ▲ 신인 드러머 ‘유고스타’ 등 다양한 부캐로 활약했다.

일반인 사이에서도 부캐에 대한 관심과 활용이 늘어나는 중이다. 취업 전문 사이트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성인남녀 1795명을 조사한 결과, 부캐 문화가 더 확산한다고 본다는 응답이 64.9%였다. 한동안 유행하다가 잠잠해질 것이라는 의견(35.1%)보다 훨씬 높았다.

부캐는 단순 오락이나 취미 활동의 범위를 넘어선다. 강민희 이승우 교수는 위의 논문에서 “별도의 정체성을 만들고 있다는 지적과 ‘멀티 페르소나’의 확산을 고려하면 ‘부캐’의 의미는 결코 재미에 머물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부캐는 부업과도 결이 다르다. 돈벌이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소 씨는 직접 만든 캐릭터 굿즈를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하기 시작했지만 아직 적자다. 그는 “이익을 내고 있지는 않지만 부캐 없이는 할 수 없던 일을 할 때 부캐를 잘 만들었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부업은 어디까지나 일의 관점에서 파생된 개념이지만, 부캐는 경제적 이득을 담보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다만 부캐의 역량이 강화돼 본캐를 압도하면 부캐가 본캐로 자리 잡을 가능성은 있다는 얘기다.

단국대 임명호 교수(심리학과)는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또 다른 면모나 특성을 보여 주고 싶어 하는 MZ세대의 특성이 부캐 열풍에 나타났다”며 “코로나 19가 장기화하면서 오프라인 활동이 제한돼 온라인에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을 찾게 됐다”고 설명했다.

부캐로 삶의 원동력을 얻는 사람이 적지 않다. 직장인 신지원 씨(25)는 온라인에서만 부캐로 활동한다. 그의 카카오톡 프로필은 2개.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주는 멀티 프로필 기능을 활용한다.

▲ 신지원 씨의 카톡 프로필. 왼쪽이 본캐용, 오른쪽이 부캐용이다.

신 씨의 전화번호를 저장하거나 카카오톡 아이디로 그를 친구로 추가하면 본캐용 프로필이 공유된다. 신 씨가 가족이나 친구로 지정한 이들만 신 씨의 부캐용 프로필을 볼 수 있다.

하나의 정체성만으로 살면서 느끼는 답답함을 해소하려고 부캐를 만들었다. 부캐로 쓰는 프로필은 잘 나온 셀카는 물론이고 강아지와 찍은 사진, 첫 월급을 타고 보러 간 바다처럼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올린다. 본캐인 직장용 프로필에는 사진이 따로 없다.

부캐를 만드는 이유를 신 씨는 “나대로 더 사랑받고, 존중받고 싶기 때문”이라며 “누군가 내 행동의 의도를 다르게 받아들여 불편한 상황이 생지지 않았으면 해서 부캐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장점만 있지는 않다. 다양한 모습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지내는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쌓이기 쉽다. 여러 일을 동시에 하면 능률이 떨어질 가능성도 크다. 임 교수는 “여러 정체성을 내세워 다양한 활동을 하면 에너지 소비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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