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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19 특집 (96) 투병기 ③ 청구서
장호림 기자 | 승인 2021.12.12 19:44

 

서울 은평구 서북병원에서 16일을 지냈다. 길면 길었지, 결코 짧았다고 할 수 없다. 먹고 자고 치료받은 모든 비용을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일까. 너무 궁금했다.

정확히 알 길이 없었다. 병원비 청구서를 보면 1만 8540원이라는데 국가 공제를 받아 차감된 비용이다. 실제 나에게 들어간 비용은 아니라서 추정할 수밖에 없었다.

병실 사용료부터 보자. 보건복지부가 밝힌 음압병실 하루 사용료는 대략 65만 원이다. 나는 15박 16일을 입원했다. 975만 원이란 계산이 나온다. 병실 사용료는 국가가 전액 지원한다.

식사는 밥과 국, 그리고 기본 반찬이 5가지다. 가끔 우유나 채소나 추가된다. 시중 도시락과 비교하면 한 끼에 7000원 정도다. 15일 동안 45끼를 먹었으니 32만 원이다.

치료비는 어떨까. 1통에 300만 원 가까운 렘데시비르를 9일 가까이 링거로 꼽았으니 2700만 원이다. 여기에 다른 약값과 CT 촬영비를 합치면 3000만~4000만 원이 된다. 의사는 “지금 받고 계시는 코로나 치료비 직접 감당하시려면 아마 집 파셔야 할거에요”라며 웃었다.

나는 2만 원이 안 되는 돈을 내면 된다. 환자 1명을 일상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 정도를 쓰는 셈이다. 미국에서는 코로나 19 치료비를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한국 건강보험에 고마움을 느꼈다.

▲ 진료비 내역서

코로나 19가 지나간 자리에 더없이 소중한 인연이 생겼다. 누구보다 재미있는 입담을 가졌던 50대 아저씨. 병실에서 나를 많이 챙긴 31살 형. 투병 생활을 즐겁게 만든 병실 동기다.

처음에는 다들 어색했다. 서로 눈치를 보며 조심조심했다. 폐렴 때문에 기침이 나오면 휴지나 손수건으로 최대한 막았다. 주사를 놓으러 오는 간호사가 말했다 “이 방은 정말 조용하네요? 서로 막 떠들고 그래요. 병실 생활도 재밌게 보내야 빨리 낫지.”

50대 아저씨가 적막을 깼다. 우리에게 말을 걸기가 쑥스러웠는지 자기 집에서 택배로 보낸 과일즙을 꺼내 우리 쪽 침상으로 왔다. “이거 드시면서 힘내세요! 아 그리고 제 이름은 000입니다.”

말투와 목소리가 너무 상냥했다. 그제야 나와 30대 환자가 통성명했다. 이름과 직업을 알면서 우리는 매일 대화했다. 무슨 일을 했는지, 여자친구는 있는지, 결혼은 했는지, 자식은 몇 명인지.

말문을 트고 5일 정도 지나자 서로에 대해 모르는 점이 없었다. 형, 동생이라 불렀다. 배달 앱을 이용해서 먹고 싶은 음식을 시켰다. 20평 병실이 사랑방처럼 느껴졌다. 매일매일 즐겁게 대화하니 코로나 19와 싸운다는 사실마저 잊을 때가 있었다.

함께 있는 동안에는 혼자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의지하며 생활했고 퇴원하는 날까지 서로의 버팀목이자 인간 치료제가 됐다. 의사는 “처음과 달리 이 병실이 제일 분위기가 좋은 것 같아요. 역시 빨리 회복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니까”라고 했다.

누구나 그렇듯 확진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아, 큰일났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19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 낙인이 찍힐 것 같아서다. 그러니까 조심 좀 하지, 다 너 때문이야, 너 때문에 괜히 귀찮아졌잖아…. 수군거림이 들리는 듯했다.

국회 의원실 인턴으로 일하던 때라서 걱정이 더 컸다. 보좌관 2명과 비서를 포함해 모두 9명이 잠재적 감염자였다. 의원님까지 포함하면 10명이다. 가장 바쁜 10월 국정감사 시즌에 나 때문에 의원실 누구라도 확진되면 큰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검사를 피하고 숨기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냥 몸살감기이기를 바랬다. 하지만 몸이 아파서 못 버티겠다고 아우성을 치는데 어쩌겠는가. 검사를 받았고 확진 판정을 받았다.

역학조사가 끝나자 국회 직원분에게 일일이 전화를 돌렸다. 새벽 3시에 확진 판정을 받은 지 6시간 만이었다. 통화 연결음이 울리면 그냥 끊고 싶을 정도로 미안했다. 그들의 원망을 어떻게 감당할지 무서웠다.

가장 큰 위로가 됐던 존재는 가족이었다. 지인에게서 쓴소리를 들어도, 가족은 변함없이 나를 지지하고 응원했다.

가장 큰 불편은 격리 생활이었다. 아프면 어린이가 된다고 했던가. 코로나 19와 싸우는 동안 부모 생각이 많이 났다. 하지만 생각나도 만날 수 없었다. 이산가족 신세였다. 부모님 모두 확진 판정을 받았기에 더욱 걱정스럽고 불안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원해서 치료받는 나를 걱정했다. 기상과 취침 전마다 전화했다. “오늘 몸은 어때? 우리는 미열만 조금 있다.” 몸 상태를 묻고 필요한 옷가지와 생필품을 계속 보냈다.

덕분에 편하게 생활했지만 간호사들은 괴로워했다. 어느 간호사가 “장호림 환자분! 그만 좀 택배 보내세요”라며 농담 섞인 핀잔을 했다.

혼자서 싸운다고 생각했지만 주위에는 많은 사람이 함께하고 있음을 느꼈다. 평소에는 고마움을 몰랐는데 가족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절실히 깨달았다.

‘불행을 불행으로 끝내는 사람은 지혜가 없는 사람이다. 불행 앞에 우는 사람이 되지 말고, 불행을 하나의 출발점으로 삼는 사람이 되라. 불행은 예고 없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불행을 딛고 그 속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할 힘이 있다.’ (발자크)

병실 생활을 하면서 가치관에 변화가 생겼다. 작은 것 하나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가짐. 치료를 받는 동안에도 큰 도움이 됐다. 치료 기간에 마냥 마음이 편했다면 거짓말이다. 운 나쁘게 확진됐다는 분노, 내 삶의 모든 것이 멈췄다는 불안감이 짓눌렀다.

매일매일 SNS에서 친구들 소식을 보는 일은 고역이었다. 오늘 무엇을 했고, 누구랑 밥을 먹고…. 일상이 너무 부러웠다. 나는 여기에 갇혀 있는데 재밌게들 사는구나….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때마다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가짐이 나를 달랬다. 오늘도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감사함. 증상이 치료되고 있다는 감사함. 의료진에 대한 감사함. 모든 점에 감사하려 노력했다.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억지로라도 감사하려 했다.

확진자로서의 16일은 분명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다. 폐렴 때문에 매일 피를 토했다. 기침이 며칠 동안 그치지 않았다. 여기에 주변 사람에 대한 미안함과 두려움이 뒤섞인 시간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코로나 19는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르쳤다. 평소였다면 친구로 지낼 수 없었던 30대, 50대 환자와 둘도 없는 인연을 맺었다. 가족이란 존재의 따스함과 중요함을 느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는 불행과 원망의 대상이었지만 더 성숙하는 시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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