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오브서울 기자단의 김유진 유경민 정윤경 최지은 씨가 뉴스통신진흥회 제4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수상작 <노후 아파트는 정전과의 전쟁 중>은 낡은 아파트 16곳의 주민이 정전으로 겪는 불편을 다뤘다. 심사위원회는 정전의 원인을 찾기 위해 한국전력공사, 전기안전공사, 전기 전문가를 광범위하게 취재했다고 평가했다. 진흥회 동의를 받아 수상작을 게재한다. 스토리오브서울 양식에 맞추면서 표현을 일부 고쳤다. <편집자 주>

자동차 엔진을 심장이라고 부른다. 엔진에 문제가 없어야 자동차가 안정적으로 속력을 낸다. 아파트의 엔진은 변압기다. 변압기 용량이 충분해야 정전을 막는다. 그러나 아파트는 변압기 교체에 소극적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전기안전공사의 서해원 기술진단부장은 “변압기가 너무 비싸다. 고효율 변압기인 아몰포스(Amorphous) 변압기 가격은 대당 5000만~6000만 원대”라며 “많은 곳에는 5~6대가 있어서 주민 부담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취재팀이 갔던 서울 송파구 방이동 O아파트에는 세대용 변압기와 공용 변압기가 77대 있었다. 모두 교체하려면 수십억 원이 든다.

인천 미추홀구 용현동 K아파트는 장기수선충당금이 부족해 고효율의 최신 변압기를 구매하지 못했다. 관리사무소는 “고장 난 변압기가 옛날 제품이어서 같은 중고를 찾느라 진땀을 뺏다”며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구하느라 복구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말했다.

노후 아파트는 가뜩이나 손볼 곳이 많아서 변압기 교체를 미룰 수밖에 없다. 경기 부천 중동 S아파트 관리사무소 차장은 “장기수선충당금이 없어서 할 수가 없다”며 “지금은 승강기 교체가 시급해서 (승강기 교체를 위한) 비용부터 모으는 중이다”고 말했다.

한국전력공사와 산업자원부는 노후 변압기 교체 비용의 80%를 지원한다. 영세 아파트는 나머지를 부담하기도 버겁다. 장기영 한전 영업처 대리는 “2019년에는 60개의 아파트 단지가 사업을 신청했다가 다시 취소했다”고 설명했다.

변압기를 교체하려면 주변 설비도 함께 바꿔야 한다. 한전과 산자부는 변압기 비용만 지원한다. 장 대리는 “추가 공사 비용까지 생각하면 사실상 아파트가 부담해야 하는 몫은 20%보다 클 것”이라고 말했다.

2019년에 249개 아파트 단지가 지원 사업에 선정돼 노후 변압기를 교체했다. 주변 설비까지 추가 공사비를 43억 9800만 원 부담했다. 경기 부천 중동 Y아파트의 한현규 입주민 대표단 간사는 “세대로 가는 케이블이나 차단기 용량도 늘려야 한다”며 “사용 주기에 맞춰서 시설을 교체하려면 장기충당수선금을 약 6배는 더 걷어야 한다”고 말했다.

설비교체에 막대한 비용이 필요하니 거주 형태에 따라 의견이 갈린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O아파트는 5540여 세대다. 주민 이두용 씨(50)는 “변압기 용량을 늘리면 좋지만 전 가구의 의견을 수렴하는 게 쉽지 않다”며 “100가구가 반대하면 교체하기 어렵다”고 했다.

서울 송파구 신천동 J아파트의 세입자인 송 모 씨(58)는 “어차피 3년만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 갈 건데 굳이 변압기 용량을 바꾸는 문제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 부천 중동의 S아파트 관리사무소 차장은 “정전에 대비하기 위해 노후 변압기를 사전에 교체하려고 하면 돈을 많이 쓴다고 반발하고, 사후에 하면 왜 빨리 안 했냐고 민원이 들어온다”고 어려움을 나타냈다.

공하성 우석대 교수(소방방재학과)는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입주자 대표회의가 주민을 잘 설득해 노후 변압기 교체에 예산이 분배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발간한 ‘2020 회계연도 산자부·특허청 결산 및 예비비지출 승인의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내년부터 정부기금 비중은 50%로 늘어나는데 예산은 오히려 감소하면서 사업 예산이 대폭 줄어들 전망이다.

▲ 노후 변압기 교체 지원 사업 예산 비율 조정안(자료=산업통상자원부)

정부기금을 감축한 이유에 대해 산업통상자원부의 김경모 주무관(전력계통신과)은 “(앞서 진행했던 사업의) 집행률이 낮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실제로 2019년과 2020년 예산 실집행률은 각각 36.17%(16억 6400만 원)와 15.7%(5억 8900만 원)였다.

집행률이 낮은 이유는 한전이 연초 계획한 예산에 비해 정부기금 예산이 과다하게 책정됐기 때문이다. 산자부는 한전의 자체 예산 확보 부담이 과도했다는 점을 고려해 내년부터 한전 부담을 30%로 낮추고 정부기금을 50%로 높이는 방향을 논의 중이다.

신청 수요는 내년에 늘어날 가능성이 많다. 정전을 겪은 아파트가 많기 때문이다. 경기 부천 중동의 Y아파트는 “올해는 신청 기간이 지나 신청 못했다”며 내년에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의 이동주 의원(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은 취재팀과의 인터뷰에서 예산 증액에 공감했다. “아파트 정전 사태가 많았고 노후 아파트가 늘어나기 때문에 수요에 맞는 예산 확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준희 가천대 교수(에너지IT학과)는 “통신사가 가정의 셋톱박스를 설치하듯 한전이 수전설비를 교체하고 직접 관리하는 게 나라 전체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안전을 관리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 홍준희 가천대 교수가 취재팀과 화상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동주 의원은 “아파트는 기본적으로 사유재산이기 때문에 수전설비 교체는 주민이 부담해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생각이지만 정전은 국민의 기본적인 삶의 질을 해치는 문제”라며 “정부가 책임감 있는 자세로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노후 변압기 교체 지원 사업의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지원 사업에 선정되려면 아파트의 매매 가격이 5억 7000만 원(2021년 서울과 6대 광역시 매매 중위값 평균)을 넘으면 안 된다. 한전이 2019년부터 적용하는 기준이다.

그러나 수도권 집값은 계속 오르는 중이다. 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8월, 서울 아파트 중위값은 9억 원을 넘었다. 수도권 아파트 중위값도 6억 200만 원이다. 때문에 수도권의 대다수 노후 아파트는 사업을 신청할 수 없다.

최황수 건국대 교수(부동산대학원)는 “수도권 아파트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해서 현실적으로 한전 변압기 교체 지원 사업에 신청할 수 있는 아파트가 현저하게 줄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전 영업처의 장기영 대리는 “서울과 지방 소도시의 집값 차이가 나기 때문에 선정 기준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내부적으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의 참여율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공동주택관리법은 전기시설 사용 연한이 25년을 넘으면 시설을 교체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강제성이 없어 잘 지켜지지 않는다.

이에 대해 한전 영업처의 김태균 차장은 “변압기 사용 연한을 15년 정도로 줄이고 이를 어길 경우 페널티나 벌금을 부과하면 아파트가 자발적으로 교체하려고 노력하지 않겠나”라며 “변압기 교체 지원 사업에 신청하려는 아파트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교수(소방방재학과)는 “노후 변압기 교체 지원 사업에 대한 홍보가 절실하다”며 “변압기를 교체하면 화재나 정전 등의 예방효과가 크다는 점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건물의 설계 단계부터 늘어날 전력 사용량을 고려하는 정책이다. 홍 교수는 “2050년까지 전기 사용량이 2배는 늘어날 것”이라며 “아파트 수명이 평균 30년 이상인 점을 고려해 미래지향적으로 설계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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