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늦은 저녁, 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의 대신야학을 찾았다. 어두운 골목길을 지나 도착한 작은 건물. 문 앞에 ‘대신야학 청년교육봉사단’이라는 안내판이 보였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발걸음을 내딛자 알파벳을 따라 읽는 목소리가 들렸다. 교실 문 안쪽에는 열댓 개의 책걸상이 보였다. 잠시 쉬려고 나온 학생들이 기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대신야학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은 50~70대의 여성 주부다. 교사는 대부분 20대 청년 봉사단이다. 봉사단체에서 주관하는 수업이라 학생은 수업료를 내지 않고 교사도 급여를 받지 않는다.

야학은 단순한 봉사단체가 아니다. 말 그대로 ‘야간학교’이기 때문에 학생과 교사는 나이와 관계없이 서로를 존중한다.

▲ 대신야학이 있는 건물

중등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안선재 씨(79)씨는 야학이 없었다면 이렇게 배울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 그는 경기 고양시에 산다. 수업을 들으려고 매주 두 번, 1시간이 넘는 거리를 버스로 오간다. 수업을 듣고 집에 도착하면 밤 11시가 된다.

안 씨는 “옛날부터 공부하고 싶었는데 그럴 여건이 안 됐고 이런 길을 몰라서 하고 싶어도 찾지를 못했다”면서 “전철의 광고를 보고 ‘어머, 이게 웬일이야’라는 생각에 야학에 전화를 걸어 이틀 만에 입학했다”고 말했다.

저학력 성인의 학습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다양한 온라인 평생교육 시스템이 있지만 디지털 약자가 접근하기에는 까다롭다. 안 씨 역시 스마트폰으로 문자 정도는 할 수 있어도 유튜브 이용까지는 어렵다고 대답했다.

“인터넷으로 듣는 교육 같은 건 할 줄 전혀 모르니까 듣고 싶어도 못한다. 예전에 복지관에서도 컴퓨터를 배우다가 알파벳을 못 따라가서 중지했다. 유튜브로 강의를 듣는 것도 하고 싶지만 우선 기초적인 것을 알아야 온라인 수업도 들어보고 하는 것 아니겠냐.”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 때는 대면 수업이 중단되고 유튜브로 강의를 하면서 학습에 어려움을 겪었다. 고등검정고시를 공부하는 2학년 박모 씨(67)는 “코로나 때문에 1주일간 학교를 한 번도 못 나왔다. 공부를 못 해서 고등검정고시 두 과목을 떨어졌다”고 했다.

유튜브로 강의를 편하게 보도록 교사들이 가르쳤지만 박 씨는 모르는 걸 바로 질문할 수 없었다. 만나서 5분 물어보면 되는데 혼자서 30분은 풀어야 한다며 온라인 수업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야간에 수업하는 점 역시 편리하다. 대부분은 주간에 생계 활동을 하니까 주경야독(晝耕夜讀)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박 씨는 야학에 오기 전에는 요양보호사로 일한다. “원래 두 군데를 일해야 하는데 공부를 하기 위해 한 군데를 포기하고 오전 근무만 하고 온다. 집이 멀다 보니까 오후 근무까지 하고 저녁에는 학교를 오지 못하겠더라.”

박 씨는 경기 파주에서 매주 세 차례, 서울로 온다. 야학에 입학하고 중등검정고시 공부와 생계 활동을 병행하느라 두 달 반 동안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1시간 자고 일어나서 2시간 공부하고 다시 잠들었다. 습관이 돼서 박 씨는 그 시간만 되면 저절로 눈을 뜬다.

“늘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는데 일을 하다 보니까 바빠서 하지 못했다. 일을 하는 요양 사무소에서도 제가 공부한다는 사실을 알고 근무시간을 맞춰주며 도움을 줬기 때문에 공부를 할 수 있다.”

▲ 대신야학에서 수업하는 모습

야학은 저학력 성인에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검정고시와 같은 구체적 학업 성취를 이루도록 도움을 준다. 대신야학은 한글을 모르는 학생을 위한 ‘한글반’과 중등검정고시 대비 ‘중등반’, 고등검정고시 대비 ‘고등반’으로 나눠 수업을 한다.

성과는 뛰어난 편이다. 대신야학 관계자에 따르면 2021년 상반기에는 검정고시를 준비한 14명 중 10명이 합격했다. 야학에는 매년 평균 50명이 입학하는데 중등검정고시 합격률은 70%, 고등검정고시 합격률은 30%다.

안선재 씨는 “야학에서 공부하면서 얼마나 흐뭇한지 모른다. 중등검정고시를 2번 떨어졌지만 그래도 수학은 70점이 넘게 나왔다”며 “선생님 만나서 한 글자, 한 글자 배워간다는 것이 좋다 못해 정말 행복하다”며 미소 지었다.

중등검정고시를 합격한 박 씨 역시 “두 달 반 동안 잠도 안 자고 공부를 했었는데 눈이 나도 모르게 공부했던 곳으로만 갔다. 버스에 써진 영어 광고만 봐도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열심히 쳐다보게 됐다”고 말했다.

과거 야학 교사는 민중을 계몽하자는 성격이 강했지만 오늘날의 야학 교사는 그렇지 않다. 자기주도 학습이 어려운 저학력 성인에게 학습 기회를 주고자 하는 뜻있는 사람들이 모였다. 이들은 검정고시 과정이나 한글을 무보수로 가르친다.

대신야학 도덕 교사로 1년째 봉사하는 김동은 씨(24)는 2020년에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에는 아이들이 있는 보육원에서 하려고 했지만 코로나 19 여파로 보육원이 폐쇄됐다. 여전히 봉사를 하고 싶었기에 대신야학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

내성적인 성격과 학생들의 높은 나이대에 망설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이겨내고 싶다는 생각에 도전했다. 김동은 씨는 학생이 깨달았다는 표정을 짓거나 이해됐다고 말할 때를 볼 때가 가장 뿌듯하다고 했다.

국어교사로 4년째 활동 중인 안가영 씨(24)는 대학교 2학년 때 봉사를 시작했다. 오랜 기간 할 수 있는 원동력은 학생들의 열정이다. “나이가 최소 40대이지만 열정은 절대 어린 학생에게 밀리지 않는다. 그 열정의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을 정도다.”

야학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의미 있는 경험을 안겨주고 검정고시 합격이라는 학업 성취도 낸다. 그러나 제도권 밖의 비영리 교육 기관이라서 재정적으로 항상 어려움을 겪는다.

전북 전주의 샛별야학은 무상으로 공간을 대여하던 새마을금고 금암지점이 리모델링으로 인해 퇴거를 요청하며 폐교 위기에 처했지만, 인근 전라중학교 도움으로 계속 운영할 수 있게 됐다.

광주의 들불야학 역시 교실이 있던 광천 시민아파트가 재개발로 철거되려다가 건물 보존이 추진되면서 위기를 넘겼다.

대신야학은 교육부와 시청, 그리고 구청으로부터 성인문해교육 지원사업 보조금과 검정고시 프로그램 운영지원 보조금을 받는다. 보조금은 규모와 프로그램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1년에 300만~1500만 원이다. 대신야학은 연간 1000만 원 가량의 보조금을 받는다.

대신야학 관계자는 “월세와 보증금을 내야 하는데 보조금으로 보증금을 해결하니 더 좋은 공간을 활용할 수 없다”고 했다. 1주일에 주 5일 수업을 하려면 적어도 교실 2개와 교무실 1개가 필요하다. 지금은 교실 1개만 있어서 검정고시반을 5일 동안 하기 벅차다.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야학과 관련된 법률이나 조례가 있으면 사업의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자발적 시민 봉사 차원에서 존재하는 야학을 국가가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어떻게 갖추고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안선재 씨는 25년이 넘도록 식당을 운영했다. 그는 열심히 배운 뒤 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유튜브에 자신만의 음식 레시피를 올리고 다른 사람에게 전수한다는 꿈을 갖고 있다.

그는 야학이 없었다면 배움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라며 야학을 만나기 전까지의 삶을 그늘이라고 표현했다. 저학력 성인에게 학창 시절의 학습 기회를 제공하는 야학은 어려움 속에서도 학생의 그늘을 거두는 중이다.

“인생을 살면서 저는 항상 그늘에 살았다, 햇빛을 못 봤다고 생각해요. 배움의 길을 찾아서 해를 보고 살고 싶다는 느낌이에요. 진짜 그런 마음이에요. 그런 꿈을 갖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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