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대학의 피터 콜먼(Peter Coleman, 교육학) 교수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실험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눠 이민자에 관해 두 개의 기사를 읽게 했다. 한 기사는 찬성과 반대의 두 가지 입장만을 제시했다. 다른 기사는 훨씬 더 많은 맥락 정보와 복잡한 사실을 제시했다.  그리고 두 그룹이 따로 이민자에 대해 토의하게 했다. 결과는 어떻게 다를까? 놀랍게도 복잡한 기사를 읽은 집단이 단순한 기사를 읽고 만난 사람들보다 더 높은 수준의 대안을 제안하고 대화에도 더 만족했다. 저널리즘의 상식에 반하는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왜 사람들은 복잡한 글을 읽고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됐을까? 콜먼 교수의 실험을 저널리즘으로 옮겨, 기사를 복잡하게, 복합적으로 써야 한다고 강조하는 인물이 등장했다. 탐사 전문 저널리스트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만다 리플리(Amanda Ripley)다.

<갈등 해소에 관심이 많은 저널리스트>

리플리는 미국 사회가 좌와 우로 나뉘어 극한의 갈등을 빚고 있는 현실을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 왔다. 그러는 과정에, 그녀는 2018년, 갈등 조정에 관한 자격증도 받았다. 이후 리플리는 솔루션 저널리즘 네트워크와 함께 기자들을 대상으로 극단화하는 갈등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솔루션 저널리즘 네트워크의 CTN(Complicating Narratives) 프로그램은 리플리의 연구와 갈등 조정 전문가의 경험을 기반으로, 기자들이 사회갈등 문제에 대해 어떻게 보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취재 보도전략을 가르친다.

▲ 아만다 리플리 (출처=아만다 리플리 홈페이지)

리플리가 처음부터 갈등 문제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녀는 워싱턴 시티 페이퍼(Washington City Paper)에서 기자 일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데이비드 카(David Carr) 편집장에게 장편 기사 쓰는 법을 배웠다. 이후 그녀는 타임지(TIME)로 직장을 옮긴다. 그 곳에서 10년간 일하며, 뉴욕, 워싱턴, 파리 등을 취재했다. 파리 지사에 있을 때는 5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죽게 만든 유럽의 전염병에 대해 보도한 적도 있다. 9·11 테러 이후로는 희생자들과 테러 이후 도시, 생존자들의 회복 과정에 대해 기사를 썼다. 그때까지 리플리는 ‘현장’에 있는 기자였다. 

리플리는 2005년 뉴올리언스에 상륙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와 리타에 대한 보도로 내셔널 매거진 어워즈를 두 차례나 수상했다. 이런 경험을 기반으로 2009년에는 <언씽커블 The Unthinkable: who survives when disaster strikes – and why>을 썼다. 허리케인과 비행기 추락 사고의 생존자 등 재난에서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그 무렵부터 리플리는 사람들의 대화와 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 아만다 리플리의 책들. (출처=아만다 리플리 홈페이지)

미국 사회의 좌우, 흑백, 빈부간 갈등이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 이후 심각하게 악화하는 상황을 접하며,  리플리는 갈등을 잘 알고 창의적인 갈등 해결법을 개발한 심리학자, 중재자, 변호사, 랍비 등을 3개월 동안 집중적으로 인터뷰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에세이 <Complicating Narratives; 내러티브를 복잡하게 쓰기>에 그 과정에서 얻은 깨우침들을 담았다.

<저널리스트는 잘못된 단순함과 일관성을 버려야 한다>

리플리는 에세이에서 기자들이 ‘가짜 단순함’을 추구한다고 지적한다. 기사를 쓰며, 기자들은 보통 자신의 주제와 맞지 않는 인용문은 잘라낸다. 깔끔하고 자연스러운 일관성만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양극단의 의견을 가진 사람이 기사의 주요 부분을 채우게 한다. 이는 경영 전략과도 연계되어 있다. FOX News나 MSNBC 등 좌파와 우파를 대표하는 매체들은 시청자들이 분노, 즉 단순함을 원한다고 가정한다. 문제는 양극화 시대에 이러한 단순함은 ‘나쁜 저널리즘’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다. 예상과는 달리, 양극화된 의견을 강요받는 기사 대신 오히려 반대 진영에 대해 흥미를 유발하는 다른 류의 기사를 접하게 될 경우,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단순 명료한 뉴스는 오히려 소비할수록 반대 진영에 대해 더 알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리플리에 따르면, 단순한 뉴스를 접할수록 미국의 공화당원들은 민주당원들이 실제보다 더 급진적이고, 무신론적이라고 믿게 된다. 민주당원들은 공화당원들이 더 부유하고, 나이가 많으며,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서로를 상상 속에 가두도록 교육받는 것이다. 

▲ 지난 1월 6일(현지 시간) 미국 의회를 습격한 트럼프 지지자들. (출처=뉴욕타임스 홈페이지)

<‘객관적인 진리 추구자’라는 착각에서 나올 때>

리플리는 스스로의 기자 생활을 뼈아프게 반성한다. 리플리는 자신이 ‘60년대 경제학자’ 같았다고 고백한다. 60년대 경제학자는 인간이란 합리적인 세계에서 활동하는 ‘합리적인 활동가’라고 믿었다. 1970년대 다니엘 카너먼(Daniel Kahneman)과 같은 심리학자들의 도전으로 인해 심리학에서는 인간에 대한 이런 가정을 버렸다. 리플리는 저널리즘은 아직도 그런 각성을 겪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그녀는 저널리스트가 스스로를 ‘객관적인 진리 추구자’라고 여기는 착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접근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많은 저널리스트가 여전히 갈등을 확대하고 대화에서 복잡성을 제거하고 있다. 세상은 단순하지 않다. 리플리는 그것을 기사에서도 드러내야 한다고 말한다.

내러티브를 복잡하게 한다는 건 무엇일까? 리플리에 따르면, 내러티브를 복잡하게 만드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핵심은 모순과 모호성을 제공하라는 것이다. 양비론이나 양시론처럼 모든 편을 드는 ‘객관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지점까지 모두 이야기하며, 분쟁을 보다 다차원적으로 보도하자는 것이다. 보도 내용에 대한 흥미는 높이고 혼란은 줄이는 방식이다.

리플리는 저널리스트에게 두 가지를 강조한다.

첫째, 복잡성이야말로 더 완전하고 정확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둘째, 특히 양극화 문제의 경우 복잡성이 더 필요하다. 사람들은 복잡성에 직면할 때 더 호기심을 갖게 되고 새로운 정보에 덜 폐쇄적이 된다.

<내러티브의 복잡성을 위한 6가지 조언>

리플리는 구체적인 6가지 실행 강령도 제시했다.

첫째, 모순을 증폭하라. 
리플리는 줄거리에 맞지 않는 세부사항을 잘라내지 말고 의도적으로 그런 세부사항을 넣으라고 조언한다. 사람들의 관점이 하나로 모일 수 없다는 걸 보여주라는 것이다. 리플리는 ‘The Narwhal’의 ‘Life after coal(석탄 이후의 삶)’ 기사를 예시로 든다. The Narwhal의 샤론 라일리(Sharon J. Riley) 기자는 광부들의 목소리를 하나로 축약하지 않는다. 이 기사는 7명이 넘는 광부의 사진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오염을 정화하려는 정부의 의도를 이해하는 광부, 노동자 권리를 더 중시하는 광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를 가진 광부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광부 중 한 명인 에린(Erin)도 처음에는 정부에 화가 났지만 이후 정부를 이해하게 됐다. 에린은 “나는 내 직업을 좋아하지만, 이것이 해롭다는 것도 알고 있다”며 “나는 매일 석탄을 발전소에 장전할 때마다 오염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광부 모 마지(Mo Marji) 역시 환경 보호에는 동의하지만, 석탄 폐쇄는 다분히 정치적이라고 지적한다. 이처럼 하나의 이슈에서 모든 의견은 단순히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다. 

▲ ‘Life after coal’ 기사에 삽입된 광부의 사진. (출처=The Narwhal 홈페이지)

둘째, 렌즈를 넓혀라.
눈앞에 있는 사소한 문제만을 바라본다면 더 큰 문제를 놓치기 쉽다. 리플리는 분쟁에 대한 시야를 넓혀야 한다고 설명한다. 리플리는 매사추세츠 글로스터(Gloucester)시의 논쟁을 예시로 든다. 시의회 관계자가 25피트 높이의 강철 조각을 마을 해안가에 설치한다고 발표하자 지역 주민들은 이를 두고 싸우기 시작했다. 분쟁 해결 전문 집단인 ’Essential Partners’는 주민들이 단순한 찬반 논쟁이 아닌 ‘큰 대화’를 하도록 도왔다. 찬성과 반대 대신에, ‘공공예술이란 무엇인가?’ ‘공공예술에는 무엇이 포함되는가?’ 등을 토의하게 한 것이다. 협소한 개인의 이야기보다는 더 넓은 관점에서 정부와 사회를 바라볼 수 있는 질문을 해야 한다. 단순한 조각상 건립 문제를 넘어 더 큰 문제와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사람들의 동기를 유발하는 질문을 하라.
리플리는 ‘갈등 조정자’라면 문제의 핵심에 도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입장만 들어볼 것이 아니라 관심과 가치, 즉 그 입장이 나오게 된 동기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바마 케어에 대한 찬반 입장은 달라도 궁극적으로는 ‘모두를 위한 의료 서비스’를 이뤄내고 싶어한다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리플리는 “대화 후 입장이 바뀌지 않더라도, 그런 대화는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넷째, 더 많이, 더 잘 들어라.
리플리는 기자가 잘 듣는 것에 대한 훈련을 거의 받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섬세한 대화를 필요로 하는 다른 많은 직업군은 질문하고 경청하는 기술을 훈련받지만, 기자는 예외다. 리플리는 이것이 마치 ‘혼자 언어를 공부하는 것’과 같다고 본다.

리플리는 작은 팁을 준다. 이정표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다. ‘항상’이나 ‘절대’와 같은 단어, 감정의 표시, 은유 사용, 반복되는 단어 등이 대화에서 귀를 기울여야 할 포인트라고 지적한다. 또한, 다시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상대방의 의미를 요약해서 상대방에 다시 확인을 받는 것이다. 

호기심은 저널리스트의 필수 요소여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워싱턴DC의 베테랑 변호사인 조 피기니(Joe Figini)는 사형 문제, 기업 실패 문제 등에 관해 전국 기자들과 인터뷰를 나눈 뒤 이렇게 말했다. “기자는 매우 좁은 범위의 질문을 한다. 기자들이 ‘우리는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걸 본 적이 없다”고 말이다.

다섯째, 상대편 사람들에게 사람들을 노출해라
리플리는 악마화를 멈추는 가장 강력한 방법은 서로를 소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호감을 가지게 되면 서로를 희화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저널리스트가 이를 시행할 방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좋은 스토리텔링 기사를 통해 대리로 전달하는 것이다. 다만, 이 방법은 구조적 문제 대신 개인에 초점을 맞춰서 렌즈를 좁힐 수도 있다는 단점이 있다. 렌즈를 확장해 구조적 문제를 보여주지 않으면 청중의 편견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방법은 실제로 커뮤니티를 한데 모아 대화하게 하는 것이다. 리플리는 이 방법을 사용할 때는 두 집단 모두에게 상황이 위협적이지 않고 공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스페이스십 미디어(Spaceship Media)는 분열된 집단을 만날 때 다음 네 가지 질문으로 시작한다. 

-다른 집단이 당신을 어떻게 생각한다고 보시나요?
-다른 집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다른 집단이 당신에 대해 무엇을 알기를 원하나요?
-다른 집단에 대해 무엇을 알고 싶나요?

이 질문은 단순한 찬성이나 반대를 묻지 않는다. 리플리는 개인적인 질문으로 시작하기를 권한다. 더 호기심을 일으키고, 부담스럽지 않은 대화로 이어지는 방법이다.

여섯째, 반대 확증 편향을 생각하라
확증 편향 문제는 양극화를 심화한다. 더 심각한 점은, 자신의 견해에 반대되는 정보에 노출이 돼도 오히려 자신의 의견에 대해 더 확신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런 반대 확증 편향은 저널리스트가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리플리는 두 가지 조언을 한다.

1) 다양한 진영의 취재원을 사용하라. 만약 자신의 진영에서 나온 의견이 자신의 의견을 반박하는 내용이라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2) 텍스트 대신 그래픽을 써라. 시각은 효과적이다.

<”강도 높은 갈등을 피하자”>

올해 4월 출간된 리플리의 가장 최근 저서 <강도 높은 갈등 High Conflict>에는 리플리가 분쟁을 보는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리플리는 이 책을 통해 현대 사회가 갈등 상황에 휘말리게 된 원인을 진단하고, 갈등을 풀어낼 대안을 제시한다. 리플리는 인간의 뇌는 생각보다 비이성적이며, 사람들은 사회 활동에서 자신에 대한 극단적인 우월감을 드러내기 마련이라고 지적한다. 높은 갈등에 빠질수록 사람들은 자신의 의로움에 확신을 갖게 된다. 사소한 이혼 과정부터 수십 년에 걸친 내전까지 갈등이 계속되는 이유다. 리플리가 말한 ‘복잡성’과 맞닿아 있는 부분이다. 

리플리의 지적은 한국 저널리즘에 많은 숙제를 던진다. 좋은저널리즘연구회가 2018년 발간한 ‘기사의 품질: 한국 일간지와 해외 유력지 비교 연구>에 따르면, 국내 일간지의 기사 유형 중 84%는 스트레이트다. 구체적으로 국내 기사는 평균 16개 문장으로 구성된다. 뉴욕타임스 기사는 평균 68개, 영국의 런던 타임스 기사는 평균 27개 문장으로 쓰였다. 짧은 기사를 고집하는 한국 저널리즘에는 복잡성이 들어설 틈이 없다. 기사에 다양한 입장이 담길 수 있는가? 국내 신문이 쓰는 기사 중 다양한 관점이 담긴 ‘복합적 관점’의 기사는 10건 중 2건을 넘지 못한다. 극단의 의견을 속 시원하게 담아준다는 ‘해장국 저널리즘’이라는 말이 나오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리플리는 단순함을 넘어 복잡함을, 일관성을 넘어 다양성을 외친다. 늦기 전에 우리 기자들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숙제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