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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2022 (24) 예비후보 ⑨ 심상정을 말한다
김수아 기자 | 승인 2021.10.24 20:03

 

▣ 단병호(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현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이사장)

노동운동을 하다가 1987년 무렵부터 알고 지냈다. 그때 심 의원은 서노련 활동을 하다가 수배된 상태였다. 나이는 심 의원이 나보다 한참 아래다. 노동운동 경력으로 보면 내가 더 새내기였다. 처음부터 상당히 당찼다. 자기 가치를 얘기하는 데 거침이 없다. 정치인으로서 바라보지 않아도 인간적으로 배울 게 많다. 한 사람의 롤 모델이 된다고 해도 손색이 없다고 본다.

본격적으로 1989년 전국 노동조합 대표자 회의를 만들면서 같이 일을 했다. 전노협을 만들기 위한 사전 조직체였다. 같은 사무실에서 거의 10년 동안 같이 일했다. 이심전심 서로 잘 이해했다.

따뜻한 면이 많다. 노동운동을 할 시기에 냉정해 보인다는 평가도 있었다. 맺고 끊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다. 실제로는 마음이 상당히 여리고 정이 많은 성격이다. 수배 생활을 할 때 심 의원이 반찬 같은 걸 직접 해서 보내줬다. 수배 생활은 차라리 구속되는 게 마음이 편할 정도로 힘들다. 그런 시기에 많은 보탬이 됐다.

노동에 진실한 마음이 있는 사람이 국회에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노동자를 대변할 정치인이 필요했다. 심 의원이 그런 역할을 할 거라고 확신했다. 민주노동당이 2000년에 만들어지고 심 의원한테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내가 (심 의원을) 팔방미인이라고 그런다.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딱 들어오니까 모든 게 상당히 비협조적이었다. 행정 관료들은 자료도 막바지까지 안 주려고 했다. 당은 양당대로 비협조적이었다. 뭘 하려면 양당 의원들이 하는 것보다 열 배, 스무 배 노력해야 했다. 심 의원은 재경위원회로 갔다.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양당 정치인을 설득시키기 어려웠다. 지금 벌써 4선 의원이다. 그만큼 역량 있는 정치인이다.

노동자, 소외된 계층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한결같다고 본다. 이번 대선 1호 공약으로 발표한 ‘신노동법’도 생색내기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동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도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 상당히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고민을 했다고 본다. 이런 고민을 할 수 있었던 게 아직도 심 의원이 노동에 관심과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 단병호 전 민주노동당 의원

▣ 김준희(전 구로동맹파업 교육선전부장)

대우어패럴 봉제 공장에서 일할 때,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심상정 의원이 있었다. 얼굴이 유달리 하얬다. 그때 심 의원은 학출 위장 취업자였다. ‘김혜란’이란 가명을 사용했다. 심 의원은 퇴근 후 8시부터 야학에 나가 밤새 토론하고 출근했다. 그런 모습이 안타까워 보이기도 했다.

가평으로 야유회를 간 시기에 심 의원과 친분을 쌓았다. 내가 공장 운동장에 모여 관광버스에 학생들을 태웠다. 심 의원이 메가폰을 건네줬다. 그걸 들고 참가자를 빨리 차에 태웠다. 마지막에 차에 탔는데 심 의원이 비타민 음료를 건네줬다. 그 후로 친하게 지냈다. 캄캄한 레스토랑에서 몰래 만나 토론하고 공부했다. 심 의원이 추천해 준 책이 많다.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읽었다.

희생정신이 큰 사람이다. 당시 나는 방송통신고에 다녔다. 가평 야유회를 갔다가 새벽에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심 의원이 ‘지금 네가 가면 어떻게 하냐’고 말했다. 그만큼 한명 한명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밤새 펑펑 울고 그 이후부터 학교에 안 다녔다. 심 의원은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서울대를 그만뒀다. 나도 학업을 중단하는 게 힘들었는데 (서울대를) 그렇게 했다는 것은 굉장한 자기희생이다. 자기보다 다른 사람의 삶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구동파’ 사람들은 우리를 인간답게 살게 해준 사람이라고 말한다. 심 의원의 노력에 한 치의 의심도 없다. 그래서 파업 후에 심 의원을 끈끈하게 보호했다. 파업 후에 구속되어 고문을 당해도 ‘심상정 어디에 있냐’는 추궁에 절대 대답하지 않았다.

한결같이 30년 전과 같은 말을 한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걸 보면 옛날 생각이 떠오른다. 지금이나 그때나 어려운 사람이 의지할 수 있는 존재다. 나도 그랬다. 열 달 수감되고 취업이 어려웠다. 3개월 만에 두 번 해고되고 심 의원을 찾아갔다. 이런저런 말을 하면서 의지가 됐다.

▲ 김준희 전 구로동맹파업 교육선전부장

▣ 오건호(심상정 의원 전 보좌관·현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

한마디로 당당하다. 책임감도 크다. 심 의원은 25년 동안 노동운동을 하다가 정치를 했다. 당시 진보 정당은 급진적이고 주장만 한다는 이미지가 강했다. 심 의원은 진보 정당 체면을 제대로 세우겠다는 강한 책임의식을 가졌다. 노동운동이 망신당하지 않도록 역할을 톡톡히 하겠다고 했다.

도전의식이 강하다. 맞으면서 배우겠다는 자세로 재경위원회를 선택했다. 진보 정당은 복지나 농업 주제에 익숙하다. 잘 아는 상임위원회를 선택하지 않았다. 정당은 국가 권력을 다투는 것인데 경제와 제정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말을 할 수 있겠냐고 했다. 새벽 공부 모임을 만들어 금융 관련 주제를 굉장히 열심히 공부했다.

공부도 미친 듯이 했다. 어디에 가거나 사람을 만나서 문제가 발견되면 해결해보자고 말했다.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다른 상임위 일도 맡았다. 2005년 국정감사 때 20일 거의 밤을 새웠다. 두 번째 국정감사 때 너무 힘들어서 WTO 반대 집회 원정투쟁 하러 간다고 하고 홍콩으로 도망갔다. (웃음)

▲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출처=매일노동신문)

▣ 김형탁(전 정의당 부대표·현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 사무총장)

똑 부러진 사람이다. 노동운동을 잘했는데 정치까지 잘할 줄 아무도 몰랐다.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금속노조 사무처장을 할 때 똑 부러지게 일한 것은 분명했다. 정치 활동을 잘할 수 있는지는 다른 문제였다. 그런데 굉장히 빠르게 진보 정당 대표격 국회의원이 됐다. 심 의원은 조직적으로 활동하는 환경에서 지내왔는데 그런 경험을 토대로 정치에 잘 자리 잡았다.

말을 굉장히 잘한다. 심 의원이 ‘사이다 발언’을 할 때면 덩달아 기쁘고 심장이 뜨거워졌다. 별명이 ‘철의 여인’이었다. 2017년 대선 때 청년과 토론회가 있었다. 이성적으로 똑 부러진 말만 하지 말고 청년의 고통을 얘기하는 자리니 제발 좀 눈물 흘려달라고 할 정도였다. (웃음) 역시 울지 않았다.

심 의원은 뭔가를 결심하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끝까지 물고간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편이다. 그래도 최종적인 결정을 늘 노 의원과 같이했다. 민주노동당을 나올 때와 진보신당을 만들 때도 함께였다. 당내에서는 늘 진보 정당의 대표주자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관계였다. 물론 선의의 경쟁이었다. 그러면서 서로 진보 정당 성장에 큰 역할을 했다.

▲ 김형탁 평등하고 공정한나라 노회찬재단 사무총장(왼쪽)

▣ 백상진(심상정 의원실 사무국장)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나는 원래 다른 진보 정당에서 활동했다. 지난 대선 때 공무원 노총 출범 집회 영상을 보고 마음이 동했다. 발언하는 심 의원의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릴 정도로 감동했다.

가까이서 보니 체력이 정말 좋다. 국회의원실에서 가장 늦게까지 일한다. 오전 5시 40분에 출근해 자정을 넘어서 퇴근하는 경우가 많다. 국민이 보기에 큰 정치인이지만 같이 일할 수 있는 직원은 9명뿐이다. 그래서 다른 정당보다 의원이 직접 소화해야 하는 일정이 많다. 그런 걸 다 해낸다.

지역구 주민과 두루두루 편하게 지낸다. 어느 가게 첫째 딸이 대학 입학한 것까지 기억한다. 고양시 지역구에 ‘원당 시장’이라는 큰 재래시장이 있다. 명절마다 찾아간다. 다른 정당을 지지하는 주민과도 잘 지낸다. 심 의원을 만나면 주민들이 손을 꼭 잡는다.

▣ 남지은(청년정의당 서울시당 위원장)

진솔한 모습에 확신을 느껴 정의당에 입당했다. 2014년 입당 전에 처음 만났다. 숭실대 정문 앞에서 진행된 ‘노유진의 정치카페’ 팟캐스트 공개 방송에 심 의원이 출연했다. 정의당 입당을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는 손을 잡으면서 ‘고민할 정도로 걱정도 많이 되는 당일 수 있지만 믿고 해달라’고 이야기했다.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나는 2017년 대선 때 청년 선거대책본부 본부장을 맡았다. 청년이 많은 홍대입구역, 신촌역 앞에서 유세를 도왔다. 심 의원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즐기는 모습을 보고 오히려 역으로 힘을 받았다. 아무리 바빠도 유세 현장에 온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한다. 인사도 잊지 않는다. 우리 같이 잘해보자고 이야기를 많이 했다.

누구보다 따뜻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대선 때 1분 발언 모습이 기억에 남았다. 1분 발언은 자신을 위한 시간이다. 근데 그때 청소노동자에 대해 말했다. 현장에 같이 있으면서 심 의원이 자신의 발언으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는 모습을 봤다. 힘들어하는 사람을 위로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결단력과 추진력이 누구보다 뛰어난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본받고 싶은 점이다. 심 의원은 대학생 때도 서울대 사범대학 총여학생회를 만들었다. 진보 정당 역사를 써오는 과정에서 많은 질곡을 겪었다. 그런 경험에서 우러나온다고 생각한다. 어려움을 감내하는 태도와 정한 바를 이뤄내는 모습을 닮고 싶다. 

▣ 김미숙(김용균재단 이사장)

산업재해 유가족의 마음을 잘 이해한다. 산재가 발생하면 재단에서는 유족지원에 나선다. 지난 6월 경기 평택항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고 이선호 청년 노동자 장례식에 갔다. 심 의원을 만났다. 위로와 격려를 잘한다. 같이 밥을 먹으면서 굉장히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꼈다. 나는 정치를 잘 아는 건 아니다. 여러 평가가 있다고 들었지만 그는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단식 농성을 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우리와 같은 생각, 같은 목표를 가지고 함께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굉장히 힘을 많이 실어줬다. 정의당이 멍석을 깔아주지 않았으면 불가능했다.

▣ 김용우(원당 시장 상인)

옆집 이웃같이 편안한 느낌이다. 나는 고양시에서만 18년 살았다. 심 의원이 처음 출마했을 때부터 지켜봤다. 꾸준하게 시장에 오는 모습을 보고 상인을 진심으로 대한다고 느꼈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시장에 와서 인사를 건넨다. 명절에는 빠지지 않고 시장에 온다.

가게마다 찾아가 진솔하게 대화를 건넨다. 불편한 건 없는지 언제든지 이야기하라고 한다. 문제가 꼭 해결되지 않아도 그런 모습에 마음을 열었다. 높은 자리에 있는데도 굉장히 소박하다.

이야기를 잘 들어준다. 시장에서 오래 일한 사람은 대부분 심 의원을 좋아한다. 어려운 점이 있으면 아무 때나 사무실에 찾아오라고 했다. 다른 분은 만나기가 어려운데 심 의원은 언제 한번 오라고 먼저 초대했다.

부지런하게 지역구를 위해 힘쓴다. 시장을 많이 활성화했다. 시장이나 상가가 서로 불만 없이 대화할 자리를 만들었다. 약속 한번 하면 지키려고 하는 사람. 지금 이대로만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상인 김용우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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