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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2022 (23) 예비후보 ⑨ 심상정을 만나다
김수아 기자 | 승인 2021.10.24 19:59

 

심상정 정의당 의원과 9월 10일 인터뷰를 했다. 그 전에 기자는 정의당 당원, 그의 지역구가 있는 고양시 주민, 노동운동계 동료를 만났다. 정의당 서울시당과 심 의원 사무실이 위치한 지역도 찾았다.

공통으로 들은 말이 많았다. 마음이 따뜻하다, 결단력이 강하다, 능력이 많다…. 다른 설명도 많았다. 희생정신이 크다, 도전 의식이 있다, 똑 부러진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에 8월 12일 갔다. 심 의원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심 의원과 가깝게 지내는 주민 5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상구 씨(80)는 88올림픽 때부터 화정동에 살았다. 선거가 있으면 무조건 심 의원에게 투표한다고 했다. 일을 잘한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경기 고양시갑 3선 의원이다. 지지율이 높은 이유가 궁금했다.

어느 날, 심 의원 사무실을 찾았다. 불이 꺼졌고 아무도 없었다. 출입문 앞에 편지를 남겼다. 그동안 주변 인물 몇 명을 만났는지를 적었다. 화정동 주민에게 들은 이야기도 전하면서 직접 질문하고 싶은 게 많다고 했다.

그사이 심 의원은 8월 29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인터뷰는 오후 2시였다. 예정된 시간보다 미리 가서 사무실을 둘러봤다.

심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10대 공약을 발표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일정을 마치고 기자와 만났다. 심 의원은 기자가 남긴 편지를 기억했다.

▲ 심상정 의원(왼쪽)이 기자와 이야기하는 모습

- 바쁜 시기인데도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하다.
“편지 잘 받았습니다. (웃음).”

- 대학에 입학했을 때는 운동권 학생이 아니었다가 이후에 노동운동을 하게 됐다고 들었다.
“아들이 지금 스물아홉이다. 아들 세대 젊은 친구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 뭘 하고 살고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 이런 것에 큰 판단을 안 하는 모습을 봤다. 굉장히 낯설었다. 나는 대학 들어가기 전에 ‘교육자가 되고 싶어.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어’, 이런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서울대 사범대학에 진학했다. 내가 78학번이다. 그때는 대학 전체가 운동권이었다. 대학 진학률은 20%대였다. 여성 진학률은 낮았다. 대학만 나오면 미래가 보장되는 때였다. 그만큼 지식인 사명이 많이 강조됐던 시기다. 모든 대학생이 민주주의를 끌어내는데 강력한 소명 의식을 가졌다.”

- 언제부터 그런 소명 의식을 가졌는지 알고 싶다.
“재수하고 나니 참고서가 지긋지긋했다. 그래서 보통 청년이 가지는 평범한 꿈을 꿨다. 연애와 독서를 많이 하고 여행도 자주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육자가 되겠다는 목표도 뚜렷해서 데모에 잘 어울리지 않았다. 근데 결국은 시대의 한복판에서 시대와 정면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전환시대의 논리>처럼 읽고 싶은 책이 다 금서였다. 금지곡도 많았다. 사귀고 싶은 남자 학생도 만나보면 다 운동권이었다. (웃음) 강의실 곳곳에 정보 형사들이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그만큼 통제된 사회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도 독재라는 장벽을 뚫고 갔어야 했다. 결국은 이런 실존적인 요구가 부딪히면서 운동권이 됐다.”

▲ 심상정 의원(왼쪽)이 이야기하는 모습

- 25년 세월의 노동운동이 구로동맹파업에서 시작한다.
“사범대 출신이라서 학생 운동을 하기보단 야학을 했다. 당시에는 초등학교 졸업한 친구들이 공부하고 돈을 벌었다. 시골에서 와서 공장도 다니고 야간 학교에 다니는 거다. 야학은 그런 친구들에게 비공식적인 수업을 하는 봉사 활동이었다. 친구들이 너무 힘겹게 일을 하며 지낸다는 걸 알게 됐다. 직접 들어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사는지 궁금했다. 1980년 겨울 방학에 공활을 가고 거기서부터 노동운동을 했다. 공장에서 나오지 않고 학교도 중단했다.”

- 그 시기에 <전태일 평전>을 읽으면서 큰 다짐을 했다고 들었다.
“청년 시기는 나의 존재가 무엇인지를 사색하는 시기다. 요즘은 대학이 취업 학원 비슷하게 되어서 그런 여유가 없다. 전태일 평전도 금서였다. 복사본을 경찰 눈을 피해서 골방에서 읽었다.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지키라면서 온몸에 불을 살랐다. 굉장히 충격받았다. 전태일 열사가 했던 얘기 중에 ‘나에게 대학생 친구 한 사람만 있었다면’ 이런 말이 있다. 그 말이 굉장히 가슴을 때렸다. 지식인, 대학생으로서의 소명이 솟구쳤다. 그렇게 야학을 하고 여성 노동자를 만났다.”

- 직접 가서 보니 무엇을 느꼈는지 궁금하다.
“공장 안에 들어가니까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본 적 없던 세상이 있었다. 그곳 사람들은 굉장히 정직하고 순수했다. 고된 일을 하면서도 누구 하나 원망할 줄 몰랐다. 쥐꼬리만 한 월급 받아서도 동생 학비, 아버지 약값을 보내드리는 노동자의 모습을 봤다. 저렇게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을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월급으로 장시간 노동을 했다. 나는 굉장히 이기적이고 너무나 많은 것을 누린다고 생각했다. 저들보다 내가 인간적으로 잘살고 있나, 이런 고민을 많이 했다. 그래서 그들에게 노동법을 가르치고 노동법조차 지키지 않는 기업을 변화시키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곳 친구들은 노동법의 존재도 몰랐다. 교육자로서 가장 먼저 있어야 할 곳이 여기라고 생각했다. 노동법이 있다는 것,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가 있다는 걸 알려 줘야겠다고 느꼈다. 그렇게 근면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노동자들이 정당한 대접을 받고 행복한 삶을 사는 세상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는 반독재 투쟁을 많이 했지만 나는 시민의 삶에 관심이 많았던 거다.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알려주고 기본권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 긴 세월 노동운동을 하다가 정치인이 됐다. 어떤 생각의 변화가 있었나.
“2004년에 처음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의원이 됐다. 그때 인터뷰가 많았다. 제일 많은 질문이 ‘얼마나 투철한 이념이 있었으면 20년 동안 그렇게 노동운동을 할 수 있었냐’는 말이었다. 나에게 그 질문은 너무나 어색했다. 긴 시간 동안 육체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노동운동을 할 수 있었던 건 (노동자의 삶에 관한) 생각이 충만했기 때문이다. 노동자가 시민으로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걸 자각하고, 노동조합을 만들고, 기본권을 위해서 격렬하게 투쟁하는 과정을 함께 겪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가 도달한다는 희열을 느꼈다. 자존감도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이념하고는 전혀 상관없었다. 교육자로서의 꿈도 이렇게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또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을 비춰내고 바꿔내는 공적 사명 같은 게 나에게 있다는 걸 자각했다. 이런 사명을 가지고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지금 정치를 하면서도 여전히 같은 생각이다.”

▲ 심상정 의원실의 상패

- 고은영 녹색당 의원과 9월 8일 인터뷰를 했다. 그는 청년세대를 ‘시대를 잃은 세대’라고 했다. 이 말에 공감하는 듯 보였다.
“기존 세력이 불평등 사회를 만들어서 청년의 미래를 빼앗아 만들어진 게 청년 문제라고 본다. 그래서 요즘 더더욱 청년이 정치적으로 크게 반응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에서도 20대가 나름대로 판단하리라 생각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20대의 마이크가 커지면 시대적 공통의 인식이 만들어질 수 있다.”

-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나.
“결론적으로 정치의 문제라고 본다. 20대와 30대가 유권자로 치면 33%다. 20대 국회에는 1%밖에 없었다. 21대 국회는 3%다. 청년의 미래를 기획하는 건 중장년층이 할 수 없다. 청년세대의 감수성과 책임으로 직접 기획하고 준비해야 한다. 그렇기에 청년의 정치 참여 기회를 함부로 빼앗으면 안 된다. 그래서 정의당이 의석수는 적지만 정당 중에 최초로 청년 비례 할당제를 두고 청년 정치인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 청년 정의당을 만들어서 청년이 자신의 감수성과 또 자신의 시대에 대한 소통과 책임으로 정치를 구성하도록 하고 있다.”

- 어떻게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대한민국 정치는 너무 낡았다. 시대 교체도 지체됐다. 젠더 갈등이라고 불리는 청년 갈등이 있다. 정치권 책임을 시민에게 전가한 것이나 다름없다. 선진국은 자신의 존엄과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다. 그런데 지금 586세대가 대한민국 사회의 권력을 주도하면서 개인의 존엄, 우리 개성과 잠재력을 존중하는 다문화 사회로 나가는 길을 막고 있다. 민주주의로 이야기한다면 제도적 민주화 수준에 머물렀다는 거다. 이런 민주주의가 일상의 민주주의와 시민 상호 간의 정의로 나아가야 한다. 청년 문제가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시대 변화를 가로막는 낡은 정치를 해결하면 된다. 민주주의가 일상의 민주주의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 대통령이 되어서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우리 시민들이 ‘내가 살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 거다. 개개인이 살고 싶어 하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 나의 청년 시절에 선진국은 이민 가고 싶은 나라였다.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자살률 1위다. 많은 이들이 탈출하고 싶어 한다. 지금 경제가 선진국 수준이라고 시민의 삶도 선진국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개인이 존중되고 자기만의 삶이 존중받는 사회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다원성과 공존의 사회라고 말하고 싶다. 이번 대선은 (국민이)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 자문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렇게 국민의 삶도 선진국 수준인 나라를 만들겠다는 게 대선에 출마한 핵심 이유다.”

- 다양성이 존중받는 공존 사회란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를 의미하나.
“공존은 이제 ‘너와 나가 공존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동체가 공존하고 비인간 생물까지도 공존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다원화도 결국은 모든 생물을 포함하는 거다. 인간의 존엄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다. 그렇게 개개인이 삶이 피어나는 삶을 만들고 싶다.”

- 공약 1호가 신노동법이다. 특별한 이유는….
“사람은 누구나 일을 하고 먹고 살면서 보람을 느껴야 한다. 또 내가 한 일이 제대로 평가받아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자아실현은 그런 것이다. 이런 이유로 노동의 가치가 신성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이 이윤 추구 수단으로만 취급받는다. 기존 노동법 체계로는 다양화된 형태로 일하는 모든 시민을 존중하고 보호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 등 아직도 많은 시민이 노동법 밖에 있다. 모든 일하는 시민이 일을 통해서 제대로 소득을 얻고 존중받는 노동법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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