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형 전 감사원장이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를 정하기 위한 2차 예비 경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정치를 계속하겠다고 동아일보 취재진에게 10월 8일 밝혔다. 스토리오브서울은 정치인 최재형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국민의힘 경선 결과가 나오기 전의 취재 내용을 게재한다. <편집자 주>

▣ 강명훈(변호사·50년 친구)

나만큼 최재형을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거다. 50년을 알고 지낸 친구다. 그냥 어쩌다 50년을 안 사이도 아니고, 계속 일주일에 두어 번씩 만났다. 첫 만남은 교회에서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수술을 하느라 집에서 1년 쉬었다. 수술 이후 신촌 장로교회에서 처음으로 최재형을 만났다.

고등학교도 같았다. 동갑이었지만 내가 1년을 쉬는 바람에 재형이가 먼저 경기고에 입학했다. 이듬해 나도 경기고에 들어갔지만 가족의 걱정이 많았다. 소아마비로 중학생 때는 가족과 같이 다녔는데 몸집이 더 커진 바람에 등하교가 어려워졌다. 그때 재형이가 너무도 당연하게 같이 다니겠다고 했다. 집이 버스로 한 정거장 차이밖에 나지 않을 만큼 가깝기 때문이라고 했다. 당시 나는 서대문구 향촌동, 최재형은 마포구 동교동에 살았다. 그렇게 재형이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내내 매일 우리 집으로 와서 나를 데리고 학교에 갔다.

다재다능한 친구기도 하다. 운동을 잘했다. 축구 경기를 할 때는 골키퍼, 야구 할 때는 투수를 맡았다. 음악도 곧잘 했다. 교회 성가대에서 바이올린을 담당했다. 기타 치며 노래하는 것도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대학교 가서는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 공연도 했다.

놀기도 참 잘 놀았다. 한창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는 부모들이 공부해야 한다고 교회를 안 보내기도 했다. 재형이는 그때도 나와 함께 교회 생활을 열심히 했다. 같이 봉사도 하고, 성가대도 했다. 그러자 일부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강명훈이나 최재형을 봐라. 쟤네 저렇게 노는 데도 공부 잘 하지 않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입시가 끝나고는 서울 근교로 친구들과 1박 2일 캠핑을 하러 많이 갔다. 

▲ 경기고 재학 시절. 윗줄 왼쪽 두 번째에 강명훈 변호사가, 가운데 줄무늬 티셔츠의 최재형 전 원장이 보인다. (강명훈 변호사 제공)

▣ 오창학(신촌 장로교회 원로 목사)

벼슬은 높지만 뜻은 낮은 데 두라는 속담이 생각나는 사람이다. 최 전 원장을 교회에서 34년 동안 봐왔다. 판사, 감사원장과 같은 높은 지위의 일을 두루 맡으면서도 교회에서 티 한번 안 냈다. 한 번은 눈이 무척이나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7시 30분 주일예배가 시작되기 전에 일찍이 와서 눈을 쓸고 있었다. 쇼가 아니었다. 온유, 겸손, 배려가 몸에 밴 사람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 걸맞은 사람이다. 최 전 원장의 가족 모두 신촌 장로교회와 인연이 있다. 한마디로 신앙관과 국가관이 뚜렷한, 뼈대 있는 가문이다. 특히 지난 7월에 작고한 최 전 원장의 부친(최영섭 대령)과는 생전에 두터운 친분이 있었다. 6.25 전쟁의 전설적 영웅인 최 대령과 안보와 애국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사실 최 대령은 아들이 정치하는 것을 걱정했다. 정치판에 뛰어들지 말라고 만류했다. 그러나 임종 직전에 ‘대한민국을 빛내라’는 유지를 남겼다. 최 전 원장이 출마를 결심하는 도화선이 됐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주머니가 없다고 한다. 34년을 봐 온 최 전 원장은 다르다. 털고 또 털어도 먼지 날 것이 없다. 이렇게 올곧은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지 않는 작금의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 작년 8월 5일 식사 자리에서. 왼쪽부터 최재형 전 감사원장, 오창학 목사, 최영섭 대령(오창학 목사 제공)

▣ 곽종훈(변호사·판사 시절 직장 동료)

최 전 원장은 휴머니스트다. 1981년 9월 사법연수원 기독신우회에서 처음 만났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늘 삶 속에서 기독교 정신을 실천했다. 진보의 가치를 ‘나눔’이라고 봤을 때, 최 전 원장은 소외당하는 이웃을 가슴으로 품는 진정한 진보주의자의 삶을 살았다.

나와 함께 서울고등법원에서 부장판사로 재직하는 도중 아들을 입양했다. 최 전 원장의 나이 50세였다. 입양을 결정하는 과정을 직접 목격했다. 판사 일만으로도 바쁜 나날이었다. 그러나 복지관에서 만난 초등학교 4학년 아이가 눈에 밟혔다. 그렇게 가정이 필요했던 어린 생명에게 아버지가 되었다. 두 아들을 입양하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거나 강요한 적도 없다. 오직 말없이 삶 자체로 보여준 사람이다.

법조인 사이에선 아주 귀한 분이다. 판사들이 피하는 업무를 스스로 떠맡는 솔선수범의 자세를 가졌다. 서울가정법원장을 마치고 서울고등법원에 부장판사로 복귀한 후에 가장 어려운 사건이 몰리는 서울고등법원 제4형사부(부패부) 재판장을 맡았다. 권위적인 자세를 가지기 쉬운 법관의 직무를 수행할 때도 결코 지배적인 자세를 보인 적이 없다. 항상 말없이 법관으로서 사심 없는 공정한 판결을 하고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품격을 드높일 사람이다. 최 전 원장이 지금까지 걸어온 헌신의 발걸음과 정직한 자세가 증명한다. 전 세계가 존경하는 남아프리카의 넬슨 만델라,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같은 정치적 지도자가 되리라 확신한다.

▲ 판사 재직 시절. 맨 아랫줄 왼쪽 세 번째가 최 전 원장, 그 옆이 곽종훈 변호사(곽종훈 변호사 제공)

▣ 박춘희(전 송파구청장·최재형 지지 모임 ‘별을 품은 사람들’ 공동 대표)

별명이 ‘까미남’이다. 까도 까도 미담밖에 없는 남자다. 원자력살리기국민행동(이하 국민행동)이라는 시민단체에서 공동대표로 활동하면서 알게 됐다. 국민행동은 탈원전 정책을 반대하는 모임이다.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감사를 맡은 최 전 원장을 자연스럽게 지지했다. 이 과정에서 최 전 원장에 대해 여러 가지를 들었다. 정말 미담 사례가 많았다. 이후 개인적으로 최 전 원장을 참 존경하게 됐고, 이렇게 지지 모임 공동 대표까지 맡게 됐다.

최 전 원장은 정치적 부채 의식이 없는 사람이다. 한 마디로 빚진 게 없다. 빚진 게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미래를 마음껏 펼칠 수 있다. 많은 후보가 나왔지만, 최 전 원장만큼 과거에 대한 빚이 없는 사람은 드물다. 보수의 최대 가치는 자유다. 최 후보는 자기 스스로도 자유스럽고, 빚진 게 없기 때문에 자유를 마음껏 실현할 수 있다.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지도자다. 이제는 국가의 품격을 높일,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이제 우리 국민도 미래에 우리나라 위상을 높일 수 있는 후보 최재형을 알아봐 줬으면 좋겠다.

▲ 8월 25일 ‘별을 품은 사람들’과의 면담 자리. 왼쪽에서 두 번째가 박춘희 전 송파구청장, 가운데가 최 전 원장(박춘희 전 송파구청장 제공)

▣ 채정석(캠프 특보단장·46년 친구)

재형이와 인연이 참 깊다. 같은 동네 살며 대학을 같이 다녔다. 대학생 시절의 재형이는 가정에서 가장 딸 같은 아들이었다. 재형이와 세 번 합숙하며 사법시험을 준비했다. 제일 처음에는 재형이네 집에서 재형이 어머니의 밥을 먹으며 4개월 남짓 지냈다. 남자만 5명인 집안이었는데도 재형이 어머니는 참 온화한 분이었다. 우리에게 정말 잘해주셨다. 재형이는 줄곧 어머니의 가려운 데를 긁어드리는 자상한 아들이었다.

그렇게 46년을 봐온 인간 최재형은 진정한 휴머니스트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귀하게 여긴다. 봉사도 당연시한다. 계산적이지 않다. 대개 내가 잘해주는 만큼 상대방도 나에게 잘해주리라 기대한다. 재형이는 그런 게 없다. 그냥 본인이 하고 싶은 일, 당연한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명훈이를 업고 다닐 때도 그랬다. 그래서인지 옆에서 보기에 힘들어 보인 적이 한 번도 없다.

원칙주의자기도 하다. 나도 친구지만 최재형한텐 부탁 안 한다. 이 친구 성격상 내가 부탁한다고 해서 들어줄 사람이 아닌 걸 알기 때문이다. 판사와 감사원장 시절 누구한테 신세 한 번 지지 않은 사람이다. 지위가 높을수록 여러 유혹이 많지만, 최재형은 원칙을 지켰다.

지금 한국 정치에서 중요한 건 보수·진보가 아니다. 중요한 건 인간의 ‘자유’다.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재형이와 나는 결만 다를 뿐이지 그런 면에서 생각이 똑같다.

6월에 재형이가 대선 출마 결심을 하며 와인을 같이 마셨다. 나는 원래 정치에 뜻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보겠다고 가시밭길을 자처한 재형이를 보고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친구가 나보다 더 고생하니까 반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캠프 특보단장도 맡으며 도와주고 있다.

▲ 채정석 특보단장(채정석 특보단장 제공)

▣ 백지원(캠프 대변인)

큰아버지 같은 분이다. 지금껏 많은 정치인을 봤지만 이렇게 편하게 느껴진 분이 없었다. 위압감이나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다. 사람 자체가 너무 인간적이고 소탈해서 그런 것 같다. 거한 식사를 즐기지도 않는다. 어제도 치킨마요 도시락을 같이 먹었다. 워낙 판사 생활을 오래 하고 감사원장직을 맡았던 터라 사람들이 어려워하는데 그냥 동네 아버지 같다.

처음 청년 대변인으로 캠프에 영입되며 청년 세대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이분은 진심으로 청년 문제에 공감하고 고민한다는 점을 느꼈다. 저출산 해결 정책이 그렇다. 우선 난임 부부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돈만 주면 된다는 기존 정책과는 정반대다. 아이를 낳을 의지가 있는 청년을 먼저 돕자는 최 전 원장의 소신이 담겨있다.

청년 유권자로서 최 전 원장을 지지해야 한다고 정말 강하게 말하고 싶다. 공정 사다리를 바로 세울 수 있다. 후보 본인부터 공정한 삶을 살아왔다.

▲ 백지원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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