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
책을 나누다 (5) 밑바닥 사람들
박유빈 기자 | 승인 2021.09.26 23:34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다가 <밑바닥 사람들>이라는 책을 우연히 알았다. 저자는 미국 소설가인 잭 런던. 영국 런던의 빈곤 지역을 체험해서 르포형식으로 담았다.

그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불우하게 보냈다. 가난을 벗어나고자 온갖 궂은 일을 했다. 먹고 살기 위해 15세에 해적이 됐다. 17세에 바다표범잡이 배의 선원이 됐고 태평양을 돌아다니며 관찰한 내용으로 소설을 썼다.

고향으로 돌아와 학업에 집중했다. 그러나 형편이 어려워 버클리대를 그만뒀다. 병든 양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주 80시간을 일했다. 그는 영국 런던 이스트엔드의 슬럼가로 가서 7주간 하층민의 삶을 체험한다.

이스트엔드를 찾겠다고 하자 그는 안 된다는 말을 들었다. 친구들은 “사람 목숨값이 2펜스도 안 되는 곳”이라며 반대했다. 말끔한 차림으로 이스트엔드로 가자니까 마부가 화들짝 놀랐다.

저자가 갔던 1902년의 이스트엔드는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었다. 런던에서 웨스트엔드와 대조를 이루는 빈곤 지역.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다른 지역에 살 수 없는 이들이 몰린 곳이다. 이민자, 불법체류자, 하급 노동자. 저자는 허름한 옷을 입고 그런 곳에 뛰어들었다.

거리에는 언제나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이런 빈민을 런던의 ‘찌꺼기’라고 표현한다. 런던시가 그들을 취급하는 방식을 비꼬는 말투다. 낮에는 거리 어디나 사람이 잠잔다. 풀숲이든 벤치든 상관없이. 노숙자가 밤에 잠을 자면 안 된다고 법이 정해서다.

법은 비참하게 죽은 노파의 사망원인을 ‘자기방임’으로 판결했다. 저자는 말한다. “그녀의 죽음은 자신의 잘못이기 때문에 사회는 그 책임을 그녀에게 전가해버리고 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대로 굴러가면 된다.” (49쪽)

▲ 책표지(출처=교보문고)

이스트엔드의 빈민은 좁은 방에서 침대 하나를 여럿이 나눠 쓴다. 항상 굶주리고 노동에 시달린다.

“집이라고 불리는 이 혐오스러운 곳에는 방이 일곱 개 있었다. 그 중 여섯 개 방에서 20여명이 성별과 나이를 불문하고 요리하고 먹고 자고 일했다. 방의 크기는 보통 폭과 길이가 2.4, 2.7미터 정도였다. 우리가 들어간 곳은 일곱 번째 방이었다. 그곳은 다섯 사람이 착취당하는 우리였다. 폭 2.1미터, 길이 2.4미터이고 가운데 있는 작업용 탁자가 방 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63쪽)

천진하게 뛰노는 아이나 행복한 신혼부부를 보면서도 그들의 앞날이 불행해지리라 예견한다. 구빈원에서 만난 빅토리아 훈장 수여자의 얘기만 봐도 그렇다. 한때는 건강한 몸으로 전쟁에 나가 국가의 영웅이 됐다. 그조차도 구빈원 앞에서 하룻밤이라도 잠자길 바라며 서성인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댄 컬런은 하층 노동자 계급으로 태어났지만 명석한 두뇌를 가졌다. 변호사처럼 글을 쓸 수 있었다. 런던 노동조합회의에서 부두 노동자를 대표했고 10여 년을 훌륭하게 싸웠다. 많은 이들이 따랐다.

파업 주동자로 검거되고 내쫓기진 않았지만 굶주리다 병을 얻었다. 누구도 그를 찾지 않았고 극빈자용 침대에서 죽음을 기다렸다. 저자는 이런 죽음을 해방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구빈원에 들어가 스킬리 3부(오트밀 3쿼트와 온수 3과 2분의 1 양동이를 섞은 것)를 먹고 중노동을 했다. 잠잘 곳과 먹을 것을 얻어놓고 노동을 하지 않는다면 감옥에 가야 한다. 이마저도 새벽 4시부터 줄을 서야만 얻을 수 있다.

저자가 묵묵하게 할 일을 하고 견디기만 했다면 중간에 책을 덮었을지 모른다. 그는 구빈원의 구석 문이 열리자 재빨리 도망쳐 나왔다.

“황급히 내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다. 탈출한 지 한 시간이 채 안됐는데 이미 나는 욕조에서 내 표피를 뚫고 들어온 온갖 병균을 땀으로 배출시키고 있었다.” (113쪽)

체험하겠다고 나선 용기와 열정이 좋지만 이런 솔직함이 공감을 자아낸다. 그는 옆 사람이 천연두에 걸렸다는 얘기를 듣고 도망쳐 나와 병균이 없어지기를 빌었다. 빈곤을 체험하겠다고 했지만 어느 순간 뛰쳐나와 비싼 밥을 먹고 깨끗한 침대에서 편안히 잠에 빠졌다.

저자는 밑바닥 사람이 더 가난해지고 비참해지는 이유를 분석한다. 그들의 임금과 생계비를 계산했다. 계산대로라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5인 가족이 주당 벌 수 있는 임금은 평균 5.25달러. 생계비로 쓰면 포식과 사치는 꿈도 꿀 수 없다. 아이가 학교에 다니거나 가장이 병을 얻으면 당장 굶어야 한다.

“유약하고 예민한 훌륭한 주부들이여, 당신이 그렇게 장을 보고 살림을 하고 다섯 사람의 식사를 차리고 (중략) 블라우스의 솔기를 악몽처럼 꿰매고 또 꿰매는데, 그 솔기는 암흑으로 연결되어 마지막에는 당신을 향해 입을 쩍 벌린 더러운 관까지 이어져 있다고 생각해보시라.” (207쪽)

저자는 어떻게 하층민이 죽어가는지 관찰과 통계수치를 통해 보여준다.

“웨스트엔드에서 어린이의 18퍼센트가 다섯 살 이전에 죽는다. 이스트엔드에서는 어린이의 55퍼센트가 다섯 살 이전에 죽는다. 그리고 런던에서는 어린이 100명당 50명이 출생 다음 해에 죽는 동네들이 있다. 그리고 남은 50명 중 25명이 다섯 살이 되기 전에 죽는다. 학살이다! 헤롯왕도 이렇게 심하지는 않았다. 그는 겨우 50퍼센트밖에 안 죽였다.” (255쪽)

동등한 신분으로 하층민을 만나 인생사를 들었다. 책에 나온 사람은 20명이 넘는다. 저마다 열심히 살았지만 가난을 피하지 못했다.

직접 들은 얘기만이 아니다. 시체 검시관과 구빈원의 목사를 통해 전해 들은 사연을 담았다. 런던 즉결심판소의 재판 사례는 하층민의 비참한 삶을 잘 보여준다. 가난을 견디다 못해 자살을 시도했거나 절도를 저질러 구금됐다.

건강한 노동자는 고된 노동을 하다 병을 얻었다. 심지어는 죽었다. 굶주림과 노동의 반복은 사람을 쇠약하게 만들었다. 빈곤은 숙명이었다.

“샬럿 래퍼티는 멋진 몸매의 건강하고 발육이 좋은, 평생 아파본 적이 없는 젊은 여성인데 백연 노동자가 되었다. 작업 중에 사다리 아래에서 경련을 일으켰다. 올리버 박사가 진찰했는데 잇몸의 푸른 선을 발견했다. 그 선은 온몸이 납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증거다. 그는 경련이 곧 다시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로 일어났고 그녀는 죽었다.” (258쪽)

그는 문명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스트엔드 빈민의 삶보다 북극 이누이트의 삶이 풍족하다고 얘기한다. 굶주린 밑바닥 사람의 삶에 사회 경영인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밑바닥 사람들>은 조지 오웰의 자전적 소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 영향을 끼쳤다. 오웰은 사회 최하층으로 5년간 살아보고 이들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우리 주변에도 삶에 짓눌린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자가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잭 런던처럼 용기를 갖고 현장에 뛰어들 수 있을까. 그리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11-1 이화여자대학교  |  대표전화 : 02-3277-2267  |  팩스 : 02-3277-2908
발행인·편집인 : 이재경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경
Copyright © 2013~2021 스토리오브서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