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전 의원의 ‘희망22’ 캠프를 8월 7일 찾았다. 카페 같은 분위기였다. ‘희망은 찬란하게 쏟아지는 태양이 아니라 시린 겨울날 문틈 사이로 스며드는 한줄기 햇살입니다’라는 문구가 벽에 보였다. 유 전 의원은 “캘리그라피를 하는 지지자 중 한 명이 써줬다”며 웃었다.

캠프 이름이 ‘희망22’인 이유를 묻자 그는 “미래니까요”라고 말했다. 희망이라는 단어를 보면 미래가 연상된다고 했다. 옆에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을’이라는 문구와 함께 대선까지 남은 날을 표시하는 전자시계가 있었다.

▲ 유승민 전 의원(왼쪽)이 기자와 이야기하는 모습

- 회의를 하던데 공약을 구상했나.

“그렇다. 주로 세금과 관련해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눴다. 세무법인에서 실무를 담당하는 분이다. 세금에 관해 물어볼 게 있어서 왔다 갔다.”

- 정책을 무엇보다 중요시한다고 들었다.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페이스북에도 다른 후보보다 정책 이야기를 많이 쓴다. 정책에 대해 잘 모르면서 정치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정치인이 있는데 틀린 생각이다. 국가 지도자가 될 사람이라면 큰 그림이 있어야 하지만 그걸 실현할 수단, 즉 정책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노동 정책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 좋은 노동부 장관을 어떻게 임명하겠나. 그런 점에서 정책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이 대통령 선거의 후보로 출마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 정책을 어떻게 준비했나.

“나는 평생 정책을 연구한 사람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원으로 일했다. 2000년에 정치를 시작하기 전까지 13년 동안 경제정책을 만들었다. 공정거래위원회 자문관도 했었다. 국회에서는 국방위원회에 오래 있었다. 국가안보와 경제가 나라를 지탱하는 두 기둥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분야의 현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해왔다. 그런 점에서 종합적인 정책 능력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다.”

- 시민 의견을 들을 기회도 많았나.

“16년 동안 국회의원이었지 않나. 지역구 의원일 때, 주말마다 시장에 가서 이야기를 들었다. 사무실에 찾아오시는 분도 많았다. 아이 교육, 일자리, 주택, 복지 문제 등 별별 이야기를 한다. 시민 이야기를 직접 듣다 보면 전문가의 말이 탁상공론인지 시민의 고통이나 바람을 알고 하는 이야기인지 구분할 수 있다. 정책은 민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시민 이야기를 듣는 건 필수다. 정치인에겐 기본이다. 검사나 판사를 오래 하다 정치를 시작한 사람은 사건 관련인은 많이 만났겠지만, 일반 시민을 언제 만나서 민원을 들어봤겠나.”

- 정치를 시작하면서 복지 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들었다.

“맞다. 경제학자 시절엔 시장경제론자였다. 공부한 대로 말하는 습관이 있었다. 외환위기를 겪고 정치인이 돼서 사람들을 직접 만나면서 바뀌었다. 내 지역구는 대구에서도 살기 어려운 분이 많이 있는 지역이었다. 군 공항 때문에 시끄러워서 임대료가 낮았다. 시내에 살다가 사업에 실패하고 오는 분이 많았다.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집을 못 사고, 일자리가 생기지 않고, 저임금 비정규직의 위험한 일자리에 시달리는 분들을 봤다. 악수하러 다니면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서 일하다가 손가락을 잃어버린 분도 많았다. 자유시장경제나 노동시장의 유연성만 이야기할 게 아니라 국가의 역할, 노동자 권리와 사회 안전망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 보수가 주장한 가치와는 거리가 있다.

“옛날엔 생명, 안전, 환경, 인권은 진보의 가치라고 했다. 그렇다고 보수 정치인이 노동자의 안전이나 생명을 모른척하면 되겠나. 그게 왜 진보의 가치인가. 이런 근본적인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개혁보수를 주장한 이유다. 헌법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나는 민주주의에 더해 공화주의를 주장한다. 그런 생각이 2011년 전당대회 출마할 때 연설과 2015년 교섭단체 대표연설문에 반영됐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늘 이런 이야기를 했다.”

- 외부 압박이 있을 때 소신을 어떻게 지키는지 궁금하다.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성격인 것 같다. 어릴 때부터 힘센 선배한테는 말 안 듣는 후배였고, 후배에겐 따뜻하게 해주고 싶은 선배였다. 판사였던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버지께서 약자의 대한 관용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1972년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셨는데 유신헌법 반대 시위를 하던 학생에게 우호적인 판결을 했다. 그 후 미움을 사서 법복을 벗었다. 그런 피를 이어가는 것 같다.”

- 4선 국회의원을 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은….

“군 공항을 이전한 일이다. 공항 주변에 가면 전투기가 뜨고 내릴 때 바로 옆에 있는 사람하고 대화가 안됐다. 전화가 안 들리고 집에서 TV를 볼 수가 없고 애들이 학교 수업을 할 수도 없었다. 그게 인권 문제라고 생각했다. ‘군 공항 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을 2005년에 지역구를 처음 갔을 때부터 시작해 8년 만에 만들었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광주 공항, 수원 공항 등 공항 이전은 전부 내가 만든 법에 따라 이뤄지는 거다. 중앙 언론은 지역 이기주의라거나 돈이 많이 든다고 비판하는데 서울 사람은 군 공항이 얼마나 시끄러운지 모른다. 또 시내 한복판에 있던 공항을 외곽에 저렴한 땅으로 이전하면서 더 넓고 좋은 공항을 마련할 수 있었다. 소음으로 생기는 피해를 배상해주면서 드는 세금도 아낄 수 있다.”

▲ ‘희망22 캠프’의 선거용 문구와 전자시계

- 대선 출마를 결심한 계기가 있나.

“정치인이 대통령이라는 꿈을 갖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국회의원까지만 하겠다고 한계를 설정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정치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가장 큰 힘을 가진 건 대통령이다. 자기 정치하지 말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나를 그렇게 비난했는데, 그 말을 굉장히 싫어한다. 국회의원이 자신의 철학을 갖고 정치를 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정치가 아니라 나라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열심히 고민해서 옳다고 믿는 정치를 해야 한다.”

- 대통령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은가.

“경제를 일으킬 거다. 경제는 나라 전체의 인프라다. 그런데 우리나라 경제는 외환위기 전부터 약 30년 동안 추락하고 있다. 동시에 저출생, 양극화 문제가 심해졌다. 이대로라면 미래 후손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될 수 없다. 다음 대통령은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가장 급한 건 일자리, 부동산 문제다. 5년이라는 임기 동안 정치보복만 하면서 보내면 결국 주저앉을 거다. 경제를 일으켜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기 시작할 것이다.”

- 정치를 시작한 이유와도 연결되는 것 같다.

“맞다. 외환위기를 겪고 정치에 뛰어들었다. 당시 30대 재벌 중 절반 가까이가 부실화했다. 대량 실업과 파산이 발생하고 거리에 노숙자가 넘쳤다. 경제가 무너지는 걸 보고 경제학자로서 자괴감을 느꼈다. 위기를 극복할 방안에 대해 보고서를 열심히 썼다. 하지만 법이나 정책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건 정치권이었다. 정치가 잘못되면 경제도 잘못될 수밖에 없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KDI)을 때려치고 한나라당 여의도 연구소장이 됐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정치에서 나온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고 정치를 시작했다.”

- 후보님이 생각하는 공정은 무엇인가

“책 <공정하다는 착각>의 저자 마이클 샌델은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평등에 ‘조건의 평등’이라는 개념을 추가했다. 기회의 평등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시험을 치게 하는 일이고, 결과의 평등은 결과를 똑같이 해주는 일이다. 조건의 평등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고 출발선을 갖게 만드는 일이다. 부모가 저소득·저학력이라도 좋은 교육을 받고 대학을 갈 기회를 주는 사회가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사교육을 안 받아도 꿈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공정은 경제 문제와 직결된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정규직화 논란도 결국 경제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공정한 성장을 주장한다. 경제를 일으키되 성장의 과실이 공정하게 분배되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들려고 한다. 법률가가 이야기하는 절차적 공정과는 다른 의미의 공정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아내가 이화여대 출신이고 캠프에도 이대 출신 분이 많아서 반가웠다. 이번 기회로 학생들과 더 소통하고 싶다. 양성평등에 진짜 관심이 많다. 요즘 젊은 세대의 젠더 갈등을 극복하려면 어느 성별이든 부당하게 차별받으면 안 된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대학 입시나 직장에서 부당하게 차별받지 않으면 양성 간 갈등이 없을 거다. 남성은 군대에 다녀와서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면 억울한 게 없다. 여성도 출산이나 육아를 할 때 국가가 도와주고 직장과 사회가 공정하면 불만이 없다. 이런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런 점에 대해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으면 좋겠다.”

- 한국형 제대군인원호법(G.I.Bill) 공약에 이런 생각을 반영했는지….

“의무 복무한 군인을 위해 국가가 그 정도는 해야 된다는 거다. 국방의 의무를 다한 보상을 국가가 하자는 차원이다. 이에 대해선 여성도 크게 반대하진 않을 거라고 본다.”

- 최근 발표한 보육 정책은 여성 정책으로 보면 되나

“아니다. 여성 관련 공약은 앞으로 더 발표할 거다. 보육 정책은 원칙적으로 남녀 모두에게 해당한다. 육아휴직도 아빠, 엄마 모두에게 보장한다. 출산을 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산모의 건강이나 경력단절 문제의 해결은 여성에게 더 와 닿을 순 있다. 그러나 이게 여성 정책의 전부는 아니다. 더 고민해서 이야기하겠다.”

 

 

 

 

저작권자 © 스토리오브서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