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술을 전공했다. 3학년 이후로는 언론을 공부했다. 미술엔 사실이 없다고 생각해서다. 기사 내용은 사실이었다.

모든 문장에 근거가 있었다. 증가나 감소 추세를 보여줄 때는 정확한 수치로 뒷받침했다. 인용의 출처도 분명했다. 가장 핵심적인 취재원의 말을 다뤘다. 사고 현장은 사진으로 증명했다. 기사가 사실에 근거해 세상을 이해하는 걸 도와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믿음은 언제부터인가 흔들렸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됐다. 선거 보도가 대표적이다.

언론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내용이 결정된다. 뉴스에 보도되는 내용으로만 세상을 이해하면 오해가 생긴다. 사건과 사고 뉴스도 그렇다. 기사를 통해 어떻게 세상을 이해하면 될지 궁금해졌다. 답을 알려준 책이 있다. <팩트풀니스>다.

▲ 팩트풀니스(출처=인터넷 교보문고)

저자는 한스 로슬링. 통계학 박사이자 의사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구를 하고 ‘갭마인더 재단(GAPMINDER)’을 설립했다.

그는 본론에 앞서 문제 13개를 제시한다. 세상을 얼마나 오해하는지 알려주기 위해서다. 일반 대중을 포함해 정치권 인사, 저명한 과학자, 언론인에게 같은 질문을 던진다. 결과가 흥미롭다. 정답을 고른 확률이 침팬지(33%)보다 낮았다.

▲ 사실에 근거한 경험 법칙(출처=팩트풀니스)

그는 이런 결과가 세상에 대한 오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극적인 세계관으로 견고한 오해가 생긴다는 얘기다. 오해를 만드는 데는 10가지 극적인 본능이 있다. 간극, 부정, 직선, 공포, 크기, 일반화, 운명, 단일 관점, 비난, 다급함 본능이다.

저자는 이런 본능이 비판적인 사고를 어렵게 한다고 설명한다. 기사에는 이런 관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언론도 예외는 아니었다. 오히려 세상을 사실대로 보는데 방해가 됐다.

오해를 바로잡는 첫 단추는 간극 본능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이분법적 사고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란 용어다. 저자는 이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세계를 소득에 따라 4단계로 나눈다. 부국과 빈국 사이에 간극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1단계에서 사람들은 하루 1달러를 번다. 다음 단계로 나아지기 위해선 4배의 소득이 생겨야 한다. 세계 인구의 대부분은 몇 단계에 있을까. 답은 중간층인 2단계와 3단계이다.

오늘날 세계 인구의 75%가 중간소득 국가에서 산다. 고소득 국가까지 합치면 인류의 91%에 해당한다. 세계 인구 대부분이 중간 단계의 삶은 산다는 뜻이다. 그러나 저소득 국가에 사는 인구 비율을 묻자 다수가 50% 이상이라고 답했다.

집단을 양극으로 분류하는 모습은 언론에 자주 나타난다. 이 외에도 언론은 극적인 본능을 일으키는 주된 원인이었다. 특히 부정 본능과 공포 본능에서 그렇다. 언론이 다루는 사안이 세상을 오해하게 만든다. 부정적인 사고와 달리 세상은 더 좋아지는 중이다.

오늘날 극빈층 비율은 20년 전보다 절반으로 줄었다. 저자는 세계 발전을 보여주는 데이터 32개를 보여준다. 줄어든 16개와 늘어난 16개. 아동 사망률은 4%로 줄었고 영양부족을 겪는 인구 비율은 1970년대보다 50% 이상 줄었다.

늘어난 점도 많다. 전 세계 전기 보급 비율은 85%로 높아졌고 초등학생 연령 여자아이의 90% 이상이 학교에 다닌다.

그런데도 세계가 어떻게 변하는지 물으면 많은 사람이 부정적으로 대답한다. 조사 대상 모든 국가의 50% 이상이 세계가 점점 나빠진다고 했다. 이 설문에서 한국이 4위를 했다.

언론의 선별적 보도가 이런 결과를 부른 원인 중 하나다. 저자는 부정 본능에 맞선 사실 충실성은 ‘뉴스가 부정적 면을 보도하는 걸 알아보는 것’이라고 한다. 좋은 소식이 전달된 확률이 낮다는 걸 인지한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세상의 심각한 일을 외면하자는 게 아니라고 한다. 상황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저자가 제시한 부정 본능을 해소하는 방법이다.

“상황이 나쁜 것과 나아지는 것 중 선택을 해야만 할까? 둘 다 옳다. 상황은 나쁘면서 동시에 나아지고 있기도 하고, 나아지고 있지만 동시에 나쁘기도 하다.” (103쪽) 나쁜 현재의 수준과 나아지는 방향을 구별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포 본능도 이와 비슷하다.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는 소식을 더 잘 기억한다. ‘주목 필터’가 있기 때문이다. 정보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말한다. 저자는 언론이 이를 잘 이용한다고 지적한다.

그의 데이터에 따르면 자연재해 사망자는 100년 전의 25%로 줄었다. 같은 시기 인구는 50억 증가했으므로 실제 사망자는 6%다. 하지만 언론은 재해가 날 때마다 가장 심각한 듯이 보도한다.

공포를 부각하는 반면 좋은 상황은 보도되지 않는다. 부정 본능과 겹쳐 세상을 잘못 인지하게 한다. 2016년에 사고를 당한 상업 항공기는 4000만 대 중 10대다. 언론이 보도하는 건 전체의 0.000025%인 사고 비행기다. 2016년이 항공 역사상 두 번째로 안전한 해였다는 건 뉴스거리가 되지 못했다. 일상적 사건보다 드문 사고가 뉴스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내용은 크기 본능이다. 국내 언론도 화제가 되는 사안에 집중해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저자는 이 점을 지적한다.

그는 2009년에 2주 동안 신종플루로 사망한 사람의 수와 뉴스 보도의 비율을 구했다. 신종플루가 발병 당시보다 위험하지 않은데도 언론은 계속 위협적으로 보도했다. 조사 기간 신종플루로 사망한 사람은 31명이다. 구글에서 검색된 기사는 25만 3442건이다. 사망자 1명당 기사 8176건이 보도됐다.

지나치게 많은 보도는 비율을 왜곡한다. 사실을 알아보기 힘들게 한다. 언론 보도는 의제를 설정한다. 사람들은 반복적인 보도를 중요하다고 인지한다. 언론이 크기 본능을 주의해야 하는 이유다.

또 저자는 수를 비교하는 일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진짜 맥락을 알기 위해서다. 2016년에 1년도 살지 못한 아기는 420만 명이다. ‘올해 영아 사망 420만’이라는 뉴스가 나오면 문제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는 같은 사안을 측정한 이래 가장 적은 수치였다. 전해에는 20만 명이 많았다. 1950년에는 1440만 명이었다. 비교해서 적다고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저자는 수치를 비교해야 사실에 더 가깝게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본능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사실을 오해하기 쉽다. 일반화 본능이다. 저자는 범주화 자체를 문제 삼지 않는다. 사고하기 위해선 범주화가 꼭 필요하다. 문제는 잘못된 범주화다.

저자는 아프리카 국가를 예로 든다. 아프리카에는 54개국이 있다. 10억 인구가 산다. 소말리아와 튀니지의 차이는 크다. 소말리아는 1단계, 튀니지는 3단계 국가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프리카란 대륙을 하나의 국가처럼 부른다.

라이베리아에서 발생한 에볼라가 케냐의 관광산업에 영향을 미칠까. 라이베리아에서 케냐까지는 8000㎞다. 자동차로 100시간 이상을 가야 한다. “간극 본능은 세상을 우리와 저들로 나누고, 일반화 본능은 우리가 저들을 다 똑같은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 (209쪽)

일상에서도 세상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미세먼지가 그렇다. 코로나 19 이전에 사람들은 미세먼지를 피하고자 마스크를 썼다. 전보다 대기질이 나빠졌다고 생각했다.

서울의 초미세먼지 농도는 2018년에 23㎍/㎥였다. 1980년대에는 109㎍/㎥였다. 전에는 4배나 나빴지만 사람들은 공기가 좋았다고 회상했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고해야 하는 이유다.

▲ 갭마인더 테스트의 일부(출처=팩트풀니스)

저자가 갭마인더 테스트를 만든 지 4년이 지났다. 그 후로 신종플루보다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 19가 생겼다. 책에선 자연재해가 줄었다고 했다. 그러나 당시에 없던 산불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다. 저자는 집단의 특징을 설명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들이 거짓말을 하며 우리를 의도적으로 호도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대부분의 언론인과 다큐멘터리 제작자도 사실은 세계를 오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보도가 그 자체로는 전적으로 사실이라도 기자가 세상에 알리기로 선택한 진실 이야기를 여럿 모으면 오해할 만한 그림이 나올 수 있다.” (301쪽)

저자는 1989년 콩고민주공화국의 마캉가(Makanga)라는 마을에 갔다. 마비를 일으키는 유행병 콘조(konzo)를 조사하기 위해서다. 이유를 오해한 주민들이 칼을 들고 위협했다. 어느 여성이 사실에 근거에 그를 변호했다. 저자는 사실충실성대로 사고하는 데는 정식 교육과 아무 상관도 없다고 한다. 일상에서 누구나 실천할 수 있다는 얘기다.

건설적인 사고를 위해서 사실충실성을 인지하는 게 꼭 필요하다. 뉴스를 소비할 때도 그렇다. 기사 제목이 어떤 관점에서 쓰였는지, 기사 내용이 편파적이지 않은지 검토해야 한다. 저자 또한 뉴스와 사실 간의 관계에서 소비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양질의 뉴스 매체조차도 통계 기관처럼 세계를 중립적으로, 극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묘사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 언론에 그 수준까지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 그보다는 소비자인 우리가 뉴스를 좀 더 사실에 근거해 소비하고, 뉴스가 세계를 이해하는 매우 유용한 도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362쪽)

뉴스 소비자로서 동의했다. 그러나 언론의 역할에 대한 생각은 달랐다. 극적 본능에 언론이 미친 영향이 많다면 사실에 충실한 사고를 하는데도 언론이 도움을 주지 않을까. 데이터나 파편적인 정보를 해석하는데 서투른 소비자에게 방향을 가르쳐 주는 게 언론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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