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서관이 북적거렸다. 박사방 결심공판이 열린 5월 4일이다. 선고 전 마지막으로 열린 재판이었다.

취재팀은 오후 2시 30분 서관에 도착했다. 1층 입구에서 2층을 올려다봤다. 난간을 따라 줄이 이어졌다. 5번 출구 앞, 결심공판이 열리는 서울고법 417호 대법정으로 들어가는 입구다.

기다리는 사람은 대부분 젊은 여성이었다. 재판 시간이 다가오자 “이러다 못 들어가는 거 아니냐”는 목소리가 들렸다.

▲ 서울중앙지법 5번 출구 앞

법원 직원은 오후 2시 50분에 “인원이 다 차서 더 이상 못 들어간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3월부터 박사방 항소심을 방청했고 기획 기사를 준비 중”이라고 설득했다. 소용없었다. 직원은 코로나 19 때문에 법정 인원을 제한한다는 말을 반복했다.

취재팀은 허탈했다. 결심공판을 못 보다니. 일부는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다. 재판이 휴정하면 들어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법원을 처음 방문한 시민이 많았다. 김한강 씨(24)도 그중 한 명이다. 방청 온 이유를 물었다. “내 일이 아니라고 미뤄두면 관심이 점점 식어 가잖아요. 나한테 그런 일이 있을 때 누군가 외면하면 힘드니까….”

조주빈의 변호인은 교화 가능성을 이유로 감형을 주장한다. 김 씨는 “성을 짓밟은 것은 타인을 장난감으로 본 건데 이게 감방에서 시간을 보낸다고 나아질 수 있을지…. 저는 그건 믿지 않거든요”라고 말했다.

한국여성상담센터에서도 재판을 보러 왔다. 한혜정 성평등강화지원팀장은 성폭력 사건이 있을 때, 여성단체 일원으로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대를 주도한다.

“조주빈에게는 교화보다는 처벌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죄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 이후에 교화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피해자는 평생을 고통스럽게 사는데 가해자가 (형량을) 가볍게 받는 건 말이 안 되니까….”

n번방 방지법’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불법 음란 영상물을 시청만 해도 처벌하는 법안이다. 한 팀장은 법률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집행이 더 중요하다고 했다.

이날 검찰은 조주빈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조주빈이 스스로 말한 ‘성착취물 브랜드화’ 표현처럼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치밀하게 박사방을 운영했다는 이유에서다. 재범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했다.

검사는 조주빈의 태도도 문제 삼았다. “검사도 인간인지라 흉악범이 범행을 후회하고 반성하면 측은한 마음이 느껴지는데 조주빈은 범행 축소만 급급할 뿐 반성을 찾기 힘들다”고 질타했다.

검찰은 강종무에게 징역 16년을 구형했다. 천동진은 징역 15년, 임영식은 13년, 장진호는 10년이다. 이지민에게는 징역 장기 10년형을 재판부에 요청했다.

피해자의 변호인들은 “피해자는 가해자가 만든 지옥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 착취 영상을 영구적으로 삭제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변호인은 피해자가 쓴 ‘재판장에게 쓴 편지’를 대독했다. 힘들어하는 피해자를 위해 형량을 낮추지 말아 달라는 내용.

조주빈은 최후진술에서 “재판부가 저를 혼내주길 바란다”면서 악인의 전례가 아닌, 반성의 전례로 거듭나게 해달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피고인 강훈의 항소심은 5월 11일 서울고법 404호에서 시작됐다. 그는 카키색 수형복을 입고 나왔다.

중년 남성 변호인이 법정으로 들어갔다. 강철구 변호사다.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선 변호를 맡았다. 피해자 변호인으로 안지희 변호사, 박수진 변호사, 전다운 변호사가 출석했다.

강훈은 지난 기일에 조주빈과 조주빈의 전 여자친구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하지만 다시 증인 신청을 취소했다. 문광섭 부장판사는 추가로 신청할 증거가 있는지 물었다. 강 변호사는 없다고 답했다.

문 부장판사는 검찰에 항소 이유를 정리해달라고 했다. “범죄 집단의 (조직) 시기와 구성원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어떤 활동을 해야 범죄단체 활동으로 명명할 수 있는지, 개별범죄나 새로운 범죄와 관련된 전반적인 (정리가 필요합니다.)”

이후 문 부장판사는 강 변호사에게 양형 조사를 신청할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 강 변호사는 동의했다. 강 변호사는 마지막 기일인 6월 17일에 피고인 신문 시간을 요청했다.

재판은 20분도 되지 않았다. 법정 앞에 6~7명이 보였다. 누구일까 궁금해서 물었더니 서울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 동아리원이라고 했다. 정기적으로 공부와 세미나를 하면서 교수 성폭력 사건 같은 일이 생기면 대자보를 붙이고 연대한다. 재판 방청이 처음이라고 했다.

조서울 씨(33‧건국대 대학원)는 검찰의 무기징역 구형이 1심의 선고(45년)보다 높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도 있다고 대답했다. 정인이 사건처럼 사형을 구형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변호인이 주장하는 교화 가능성에 대해서도 물었다. 강나연 씨(24‧건국대)는 “불가능하다고 보진 않아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화 가능성이 있다고 형량을 줄여야 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저지른 일에 책임을 지고 무기징역으로 복역하는 게 교화의 의미에 더 가깝다고 주장했다.

▲ 법정 앞에서 서울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와 인터뷰를 했다.

6월 17일이었던 기일이 7월 6일로 변경됐다. 강훈 측은 신청했던 피고인 신문을 취소했다. 양형 조사는 진행 중이었다. 양형 조사관, 보호관찰소, 가족과의 면담은 마쳤지만 결과 보고서는 재판부에 아직 전달되지 않았다.

검사는 원심 때와 같이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또 전자 장치 부착 명령 15년, 성폭력 프로그램 이수 명령, 신상 정보 공개 및 고지 명령, 10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 및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 제한, 특정 시간대의 외출 제한, 특정 지역 장소의 출입 금지, 피해자 접근 금지, 특정 범죄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구형했다.

이어서 검사는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강훈은 조주빈을 도와 박사방을 관리했다. 또 유료 방에 가입하면 다른 성 착취물을 볼 수 있다고 홍보했다. 검찰에 따르면 강훈은 박사방의 2인자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했다. 친구들에게 비슷한 사이트를 만들자는 제안도 했다.

하지만 강훈은 주요 범행을 부인했다. 검사는 중형 구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사건이 매우 중대한 사안이고 죄질이 불량함에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려 합니다.”

문 부장판사는 강 변호사에게 공소사실에 대한 의견 정리를 부탁했다. 재판부와 검찰도 피고인 측이 어떤 점을 부인하는지를 대략 알고 있다. 하지만 공소사실은 여러 항목이어서 정리가 필요했다.

강 변호사는 서류를 꺼냈다. 문 부장판사는 아동·청소년 음란물 제작에 대한 입장을 물었다. “피해자에 따라 일부를 인정하고 일부는 부인하는 건가요?” “아뇨. 제작 자체가.” 강 변호사는 제작 자체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강 변호사에 따르면 강훈이 사건 전체 공범인지를 떠나서 강훈이 가담하지 않은 사건도 있다.

문 부장판사는 나머지 공소사실을 인정하는지 물었다. 강 변호사는 범죄수익은닉 규제법의 일부는 부인하고 일부는 인정했다. 강훈이 직접 관여한 부분만 인정했다. 마지막으로 정보통신망법 위반은 모두 인정했다.

“(문서) 좀 미리 내지 그러셨어요. 제가 문서를 가져온 줄 모르고요. 검찰에서 여기에 대해 답변할 거 없어요?” 문 부장판사는 당황한 것 같았다. 그는 한 번 더 기일을 갖는 게 어떤지 물었다.

7월 20일 서울고법 404호. 마지막 속행 날, 문 부장판사는 판결 전 조사서가 도착했다고 말했다. 그는 검사에게 변호사 의견서를 검토했는지 물었다. 검사는 추가로 의견서를 제출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난번과 같이 징역 30년을 구형했다.

강 변호사는 일어나서 변론을 시작했다. 그는 먼저 피고인과 피고인 가족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강훈이 직접 가담한 부분이 있지만 박사방 사건 전체의 공범이라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근거로 강훈은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조주빈은 피해자와 직접 접촉해서 영상물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만 피해자와 직접 접촉했다고 증언했다. 조주빈은 돈을 벌기 위해 박사방을 만들었다.

피해자와 접촉하고 협박하는 방법을 공유한다면 누구나 모방할 수 있다. “조주빈은 박사방 영업 노하우를 누구에게도 알려줄 수 없었습니다.” 강 변호사는 강훈도 박사방 관련자 대부분처럼 어렴풋이 알았다고 말했다.

다음으로 강 변호사는 강훈이 조주빈에게 협박당해서 박사방 일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강훈은 사건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강훈은 지인 능욕, 음란물을 위해 조주빈에게 연락했다.

이때 조주빈은 강훈의 인적사항과 신분증을 확보했다. 그리고 강훈에게 박사방 관리 및 홍보 등을 시켰다. “조주빈은 피고인이 당시 미성년자이고 고3 수험생임을 확인하고 일을 시키기 편하므로 피고인에게 지시한 것으로 보입니다.”

검찰은 강훈이 박사방 2인자라고 주장했다. 강 변호사는 강훈이 없으면 박사방이 와해해야 하지만 강훈이 구속되고 나서도 박사방이 3개월간 지속됐다고 말했다. 따라서 강훈을 박사방 2인자라고 볼 수 없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강훈은 조주빈과 범죄 수익금을 나눠 갖지 못했다. 강 변호사는 조주빈에게거 강훈이 받은 금액은 교통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범죄 수익금을 나누어 가진 것이 아니라 조주빈이 박사방을 통해 돈을 벌기 위해 지급한 것으로 범죄 수익금이라 할 수 없습니다.”

범죄집단 조직죄도 부인했다. 조주빈은 성 착취 영상물로 돈을 벌려 했다. 하지만 강훈과 다른 피고인은 돈과 관련 없이 박사방에 가입했다. 강 변호사는 “범죄 목적 자체가 다른데 어떻게 범죄 집단이 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갈 수 없는 부분”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조주빈이 다른 피고인과 수익금을 나눈 적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검찰 측은 박사방이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데 용이한 구조를 갖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강 변호사는 구성원이 의견을 내거나 상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조주빈은 “더 많은 이용자를 모으기 위해 (무엇인가 있어 보이는) 상위방을 만들었고 필요에 의해 만들고 폐쇄하기를 반복했다”고 증언했다. 방이 만들어질 때마다 가입하는 사람도 매번 바뀌었다.

강 변호사는 이를 지적하며 박사방은 통솔 체계도 없다고 말했다. 강훈과 피고인은 조주빈과 공통 목적을 갖고 역할을 나누지 않았다. 각자의 목표를 위해 가입하고 탈퇴를 반복했다. 따라서 강 변호사는 박사방을 범죄 집단이라 명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감형을 위해 말을 이었다. 강훈이 원래 모범적인 학생이었고 수사에 적극 협조했고 신상이 이미 공개돼 재범 위험성이 낮고 나이가 어리고 초범인 점을 언급했다.

“주범인 조주빈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마시고 인적 사항이 노출되어 조주빈의 지시에 따라야만 했던 피고인 입장에서 이 사건을 다뤄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 변호사가 변론을 마쳤다. 강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종이를 펼쳤다. 먼저 그는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에게 사과했다. “어떤 말도 용서가 되지 않겠지만 하루하루 눈물로 지난날을 뉘우치며 참회의 시간을 보낸 진심이 조금이나마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강훈은 용서를 구했다. 이미 저지른 일이기에 죄를 어떻게 씻어 나가야 할지 고민하며 성실히 교화에 임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장기기증을 서약했다. “훗날 사회에 돌아오더라도 다시는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겠다.” 강훈의 2심 선고는 8월 26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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