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상혁(막냇동생·성균관대 영상학과 교수)

충청 태안 앞바다에서 태어났는데 공부를 남다르게 잘했다. 이모가 그때 인천으로 시집을 가서 살았다. “상수는 공부를 잘하니까. 도시에서 키우자”고 해서 초등학교 5학년 때 큰형(안상수 전 인천시장)이 혼자 인천으로 가서 이모 댁에서 공부했다.

어머니가 절에 갔다 오는데 스님이 “첫째가 아주 특별한 인물이 된다”고 했다. 작은형이 지켜봤는데, 어머니가 기분이 좋으셔서 코가 벌렁벌렁했다. 500원짜리가 들어갈 정도로 그렇게 흥분하셨다고 한다. (웃음) 둘째 형이 그걸 기억하면서 증언했다. 첫째 형이 특별하게 태어난 것 같다. 시골에서 딱히 과외를 시키거나 그런 것도 아닌데 그냥 공부를 잘했다. 범상치 않았다.

어렸을 때 체격이 컸다. 지금도 보면 키가 177~178 이렇게 된다. 지금도 작은 키가 아닌데 옛날에는 큰 키에 속했다. 또 초등학교 때는 차가 없으니까 무조건 걸어 다녔다. 보통 30분에서 1시간 정도. 시골에서 열심히 걸어서 지금 본인이 그 나이에 건강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동네에서 맞을 일은 없었다. 카리스마가 있으니까. 그리고 공부를 특출나게 잘해서 동네에서 주목했다.

아버지가 시골 사람이라 경기고가 얼마나 좋은 학교인지 몰랐다. 동네 사람에게 그냥 말을 했는데, 그 뒤로 “우와 저렇게 훌륭한 아들이…”라면서 대우가 달라졌다. 지극히 평범한 시골 사람의 아들로 태어나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첫째 형이 정치를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계속하고자 하는 이유 중 하나도 개천에서 언제든지 용이 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신세를 많이 졌다. 초등학생이 인천에 와서 이모한테도 그렇고. 신세를 지고 살았으니까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있다. 기부를 많이 한다. 아마 정치인 중에서 금액, 횟수로 보면 가장 많을 거다. 베풀 수 있을 때 베풀자는 마음.

내가 유학 갈 때 유학 비용의 대부분을 대줬다. 그런 형이 사실 없다. 누가 동생한테 그렇게 하나. 지원을 많이 해줬다. 어머니가 83년에 돌아가셨다. 그때 집 하나를 다 쪼개서 본인은 안 갖고 동생들에게 다 나눠줬다. 헌신, 희생적인 부분이 있다.

▣ 김형철(인천중 동문)

안 전 시장은 중학교 때 조용한 성격이었는데 친구가 많았다. 친구한테 잘 맞춰 지내서 상당히 호감형이었다. 공부도 중상위권으로 항상 잘했다.

정치한다고 했을 때 사실 뜻밖이었다. 중학교 때는 온화하고 친화적이었다. 나는 정치는 심하게 말하면 “권모술수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안 전 시장 성향과 다른 결정이라서) 충격이었다. 성격은 자라면서 성격이 진취적이고 더 마음이 넓은 사람으로 변했다.

나는 인천에서 일하고 있고, 자주 통화한다. 만나서 동심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시장이 됐을 때 자랑스러웠다. 사업 기질이 있다. 송도, 청라, 영종도 사업을 보고 깜짝 놀랐다. 밑 사람이 뭘 해야 할지 모르면 딱 정해서 (정확하게) 지시를 내리는 스타일이었다.

이게 우리 시민에게 꼭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과감하게 했다. 재임 동안 인천을 상당히 업그레이드했다. 세계 몇 국가의 롤 모델이다. 역사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치하는 사람은 카멜레온이라고 하지 않나. 그런데 안 전 시장은 한결같고 꾸준하다. 

▣ 성기훈(전 한국초등체육학회 회장·서울교대 교수)

서울대 사범대 체육교육과 동창이다. 안 전 시장은 1971년에 늦게 입학했다. 당시 학과 입학 정원이 40명이었다. 주변에 안 전 시장이 40명 중 2등으로 입학했다고 소문이 돌았다. 태권도도 잘하는 편이라고 했다. 나이 차이가 있어서 많이 가깝게 지내지는 못했다.

4학년 때 같은 학교로 교육 실습을 하러 갔다. 서울대는 부설 학교로 실습을 가는데, 같은 곳을 가서 그때가 기억에 남는다. 실습하고 같이 생활했다.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나오면 보통 80%는 교사가 됐다. 그러다가 교수가 되기도 했다. 당시에 임용고시가 없었고 국립대 사범대를 나오면 바로 교사가 될 수 있었다. 안 전 시장은 경영학을 더 공부해서 회사로 진출했다.

내가 한국체육학회 총무이사를 할 때, 우연히 대한체육회에서 만났다. 여전히 체육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인천아시안게임도 유치했다고 생각한다. 당시 내가 “우리 71년 입학한 동창들 한번 만나자”라고 했다. (웃음) 사실 인천시장실을 가보고 싶었는데, 못 가봤다. 동창회 때 참석해서 음식점에서 다시 만났다.

나는 2015년부터 4년 동안 서울대 체육교육과 동창회장을 했다. 졸업생이 3000여 명 된다. 그래서 모교 방문회, 송년 모임 등 행사가 많다. 안 전 시장이 국회의원을 할 때인데, 내가 항상 참석해 달라고 연락을 했다. 선뜻 응해서 자주 참석했다. 굉장히 고마웠다.

안 전 시장을 보면서 ‘경제 전문가’라는 생각을 했다. 회사에서도 높은 직위에 오르고, 인천시장 시절에도 경제 쪽으로 성과를 많이 냈으니까.

▣ 이상우(전 제세산업 회장)

경기고 선후배 사이고, 70년대에 제세산업에서 같이 근무했다. 그때로 얘기하면 사나이였다. 회사에서 조정하고 기획하는 일을 했다. 능력이 있고 뚝심도 있었다. 당시에는 남자로서 가장 바람직한 표상이었다.

그때 저 친구는 정치하면 잘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본인도 그런 희망이 있었다. 희망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상당히 놀랬다. 역시 안상수답다고 생각했다. 안 전 시장을 신뢰했다. 웬만하면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선후배 사이에서도 인망이 있었다.

▣ 정창영(전 연세대 총장·현 연세대 명예교수)

안 전 시장과 나는 21세기 한국이 동아시아의 중심국가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의 정 중앙에 위치한 인천 송도가 핵심 역할을 수행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인천 송도를 넘어서 21세기 대한민국의 약진을 향한 담대한 구상이다.

일부 반대는 연세의 구성원 중에서 장기적인 이익보다 단기적인 어려움을 생각한 데서 연유했다. 우리는 정치인이 번드레하게 말만 잘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본 시장님은 언행이 완전히 일치하는 분으로서 믿을 수 있는 훌륭한 정치인이다.

그가 전념하는 것은 국민을 섬기는 일이며 국가발전을 성취하는 것으로서 보기를 들면 일자리, 주거 등 기본적인 민생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행 가능한 방책을 가지고 있다. 특히 기업에서의 실제 경험은 주요한 강점이다. 세계적인 송도국제도시의 건설은 일반 사람들은 생각도 못 할 정도로 대역사라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 강범석(전 인천 서구청장)

박찬종 전 의원이 1995년에 무소속으로 서울시장에 나왔다. 결국은 조순 시장이 당선됐다. 그때 처음 만났다. 안 전 시장이 박찬종 전 의원의 고등학교 후배라 인연이 있었다. 그때 안 전 시장이 선거 캠프에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 안 전 시장이 동양그룹 종합조정실장이었다. 딱 봐도 외향적이기보다는 꼼꼼하고 일을 잘할 것 같았다. 정치 쪽 기질도 있었다. 그러다가 나중에 본인이 출마했다. 나와 다른 선배 한 명에게 선거를 도와달라고 해서 인천까지 왔다. 선거에 떨어졌다가 다시 당선되고 그랬다. 그러다가 인천시장이 돼서 내가 다른 회사 다니다가 그만두고 비서실장이 됐다.

당시 인천에 도시 인프라가 없었다. 그걸 깨버린 것이 송도신도시다. 더 나아가서 송도, 청라, 영종도 경제자유구역을 만들면서 인천시에 큰 그림이 그려졌다.

송도 매립은 최기선 전 시장이 시작했다. 이것을 어떻게 할 거냐가 문제였다. 인천이 한국 최초로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됐다. 당시 다른 지역에서 인천만 한다고 반대가 많았다. 지금은 여러 곳이 지정됐다. 현재까지 실적으로 보면 상대적으로 성공한 사례다.

(안 전 시장 재임 시절) 송도를 개발할 때 인천 동춘동 쪽에 미사일 포대가 있었다. 그런데 거기 있으면 낙하지점이 송도 신도시 한복판이 된다. 군사 기지를 이전하는 문제니까 쉽지 않았다. 국방부와 협의도 어려웠는데 주민도 반대했다. 결국에는 영종도 쪽으로 옮겼다. 반대가 있었던 것 치고는 잘 마무리됐다.

실제 성격이 꼼꼼하다. 그러다 보니 (일을) 본인이 가장 잘 안다. 단점은 주변 참모들이 (구체적인 사항을) 알기 어렵다. 혼자 계획을 해서 쭉 풀어나가는 스타일이다. 인천시 행정이나 개발에 기존 정치인이 아닌 기업인 마인드로 접근했다.

송도의 분기점이 된 것이 연세대 이전이었다. 어느 단계까지는 기밀이었다. 그게 발표되면서 송도가 떴다. 대학교가 들어서니까 아파트값이 확 올랐다. 정보 노출되면 안 되니까 안 전 시장이 진행하면서 만들어낸 거다.

또 원래 골프장을 먼저 만들고 인천대가 나중에 이전되는 거였다. 그런데 계속 요청이 들어오니까 반대를 다 물리치고 골프장 규모를 반으로 줄였다. 그 자리에 인천대를 미리 옮겨줬다. 본인이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밀어붙이는 능력이 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파괴적으로 뛰어넘는 도전을 많이 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사고의 스케일이 크고 혁신적이다. 말을 던져놓고 뒷수습을 못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안 전 시장은 수습까지 다 한다. 주변 사람이 “당신 혼자 다 해라”고 비판하는 약간의 부작용은 있지만.

▣ 황광희(특별보좌관)

안상수 전 시장은 외유내강이다.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누가 뭐라고 해도 목표가 세워졌으면 간다. 그 대신 요즘 말하는 사이다 발언이나 이런 거는 체질에 안 맞는다.

인천대교나 그런 사업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상대방의 협치를 구해서 갯벌 (개발) 그리고 인천대교를 만드신 분이다. 누가 뭐라도 목표가 설정되면 성과물을 지금도 보여준다. 그래서 이번에 논을 개발해서 5대 광역시에 인프라를 구축해서 젊은이들이 살 수 있게끔 평당 500만 원, 30평이면 1억 5000만 원 아파트를 만들겠다는 계획이 있는 사람이다.

20~30년 정도 알고 지냈다. 자기 싫은 거를 한 번도 내색을 안 한다. 그리고 주특기가 품는 거다. (사람들을) 다 품는다. 또 시장님이 잘난 얼굴이다.

▣ 소희섭(특별보좌관·제이앤씨푸드 본부장)

만난 지 40년 정도 됐다. 안 전 시장이 제세산업에서 일할 때다. 당시 나는 이 회사가 삼성보다 더 커지겠다고 생각했다. 안 전 시장을 보면 일은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저게 될까 생각했는데 그게 된다.

인천 송도신도시에 센트럴 파크가 있다. 가장 가운데 있는 거다. 당시에 그거를 팔아서 상업 지역을 만들면 돈이 어마어마한 건데, 안 전 시장이 공원을 해야 한다고 했다. 옆에 있던 사람이 다 반대했다. “이게 돈이 얼마인데….” 지금 와서 보니까 혜안안이 있는 거였다. 앞을 보는 혜안안이 있는 거다.

그 공원이 뉴욕 센트럴파크 같은 개념이다. 가운데 공원이 있고 물길도 있고 배도 뛰어다니고 그러는데 송도 주민한테는 거기가 최고다. 한번 와 봐야 한다. 그거를 만들 때 지도를 다 만들어서 가운데 땅을 본인이 직접 그리셨다. “이거는 공원이야”라고 하니까 사람들이 다 미쳤다고 그랬다.

지금 와서 보니까, 나도 송도에 사는데 “이 양반이 진짜 혜안안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혜안이 있다는 것도 나중에 느끼게 된 거다. 당시에는 몰랐다. 우리 같은 사람은 그걸 모르는 거다.

습관 같은 게 있다.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더라. “손톱은 깎는 게 아니라 달게 하는 거다. 그리고 밥은 말로 하는 건 아니다.”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실천해야 한다면서. 그다음에 “밀착은 하되 유착은 하지 말라”고. 신념 같은 거다.

정치하다 보면 미운 사람, 예쁜 사람도 있고 할 텐데, 아마 미운 사람이 더 많을 거다. 근데 (그 사람들에게) 싫다는 말을 안 한다.

▣ 최용묵(수행비서)

원래 인터넷상으로 송도랑 인천대교를 건설한 정도만 알고 있었다. 대화해보니 어르신이라는 편견이 깨졌다. 좀 다른 분이라는 걸 알게 됐다. 지지하고 도움을 주고 싶어서 봉사 활동 요청을 했다.

CEO도 해서 수직적 관계일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직접 배우려고 하고, 나이와 직급과 관계없이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한다. 좋은 의견이 있으면 같이 얘기해서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애쓴다.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이해하고 포용한다.

자기관리도 잘한다. 목표를 설정해서 항상 열정적으로 도전한다. 결단력 있게 추진, 이행해서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다. 의견이 있으면 우선 해보는 거라고, 도전해보는 거라는 말을 자주 한다.

몇몇 다른 후보는 말도 안 되는 포퓰리즘을 위한 공약을 얘기한다. 안 전 시장은 이행 가능한 공약을 얘기한다. 리더십, 추진력, 열정이 있어서 함께 하면서 많이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할 때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약점으로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안 전 시장은 성격상 묵묵해서 (남을) 깎아내리기보다 직접 해서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한다.

인천시장을 할 때는 좀 수수하게 입었지만 이번에는 색깔 있는 옷을 입는다. 변화하려는 의지가 보이는 것 같다. 전에는 좀 푸근한, 조용한 이미지였다면은 인터뷰나 이럴 때는 항상 파란색 정장과 분홍색 넥타이를 하고 간다. 양말과 신발도 (색을) 맞춰 신는다. 이쁘게, 깔끔하게 입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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