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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방의 세계 (6) 피해자 이름 공개
이정민 기자 | 승인 2021.08.01 20:23

 

판사는 법정에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차분한 목소리로 재판을 진행한다. 텔레그램 ‘박사방’ 네 번째 항소심 재판은 달랐다. 문광섭 부장판사는 곤란해하고 호통을 치고 화를 억누르는 듯했다.

4월 20일 오전 10시, 서울고법 417호 대법정. 재판의 핵심은 증인신문이었다. 지난 기일에 피고인 천동진의 변호인(박중광 변호사)은 증거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추가 영장 없이 별건 수사를 했다는 이유였다.

이시철 경장과 배성범 경감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 경장은 천동진의 초기 수사를 맡았다. 배 경감은 당시 수사팀장이었다.

문 부장판사는 “거짓말을 하면 위증죄로 처벌받을 수 있고, 아는 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른다고 답하라”고 증인에게 말했다. 문 부장판사는 배 경감에게 법정 밖으로 잠시 나가달라고 요청했다. 이 경장의 증언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다.

▲ 서울고등법원 417호 대법정 앞

증인신문 전에 검사는 우려를 나타냈다. 신문사항에 피해자 이름이 적혀있다는 이유였다. 문 부장판사는 “아, 그러면 곤란하죠”라며 검토했다. 검사는 “실명이 공개되지 않게 주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변호인은 알겠다고 답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변호인이 화상기에 자료를 비출 때였다. 법정의 모니터에 피해자의 실명이 드러났다. 검사는 바로 문제를 제기했다. 변호인은 서둘러 화면 밖으로 자료를 치웠다. 그리고 사과했다. 문 부장판사는 포스트잇으로 이름을 가리라고 주의를 줬다.

성폭력 피해자는 수사와 재판의 과정에서 가명을 사용할 수 있다. 가명 조사를 신청하면 신원관리카드에만 인적 사항이 기록된다. 이름, 주소 등 피해자의 개인 정보는 수사 기록에 올라가지 않는다.

그러나 수사 초기에만 신청할 수 있다. 피해자가 수사나 재판 도중에 가명을 사용하겠다고 하면 기존 조서를 파기하거나 재조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사방 피해자를 맡은 조은호 변호사는 “이미 만든 조서를 파기하거나 재조사 하는 것은 실무적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박사방 사건에서 처음부터 가명을 사용한 피해자도 있지만 실명으로 조사를 받은 피해자도 있다. 수사 초기에 변호인 없이 혼자 조사를 받거나 수사기관이 가명 조사 여부를 피해자에게 묻지 않은 경우다. 재판에서 기록 공개에 주의해야 하는 이유다.

재판에서 이 경장은 대부분의 질문에 “모르겠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천동진의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확인했냐는 간단한 질문에도 “시간이 많이 지나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경찰은 2019년 11월 7일 압수수색 과정에서 천동진의 외장하드와 휴대폰을 확인했다. 수사 중이던 피해 여성이 아니라 다른 여성의 나체 사진을 발견했다.

변호인은 피의자 신문 조서를 보여줬다. 이 경장이 작성한 조서였다. “영장에 나와 있는 사람과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여성들이라고 말씀하신 것 아닙니까?” 추가 영장 없이 별건 수사를 했다는 취지였다. 이 경장의 답변은 같았다. “모르겠습니다.”

문 부장판사가 호통을 쳤다. “모르긴 뭘 몰라요! 자기가 질문 해놓고. 대한민국 경찰관이 자기가 수사한 것에 대해 책임지고 그 정도 대답도 못합니까?” 법정에 긴장감이 흘렀다. 문 부장판사는 성의 있게 답변하라고 요청했다.

이 경장은 “제가 이렇게 꾸지람 맞을 정도로 잘못을 해서 증인신문에 나온 건 아닌 것 같습니다”라고 대꾸했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문 부장판사는 “꾸지람이 아니고,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서 확인하는 것”이라며 답답해했다.

이 경장이 법정을 나갔다. 배 경감이 들어왔다. 그의 답변 태도는 적극적이었다. “다른 여성의 나체 사진이 있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은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변호인은 추가 영장을 신청했는지 물었다. 수사 절차의 적법성을 따지기 위함이었다. 추가 영장은 없었다. 배 경감은 “포렌식을 맡겨 사진을 정식으로 확인하고 나서 추가 영장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대답했다.

검사의 반대신문은 수사 절차에 관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절차적으로 위법하게 진행된 부분이 있습니까?” 이 경장과 배 경감은 수사 절차를 모두 준수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천동진의 휴대폰을 열람할 때 동의를 받았다.

검사는 다른 여성의 나체 사진에 초점을 맞췄다. 애초에 천동진의 영장이 나체 사진을 보내라고 협박한 혐의로 발부됐다는 얘기다. 다른 여성의 나체사진에 대한 질문이 문제없다는 주장. 검사의 말에 이 경장과 배 경감도 동의했다.

다른 여성을 문제 삼은 변호인과 대조적이었다. 검사는 다른 여성의 사진에 관한 질문에 ‘모르겠다’, ‘아니다’라던 천동진의 답변도 근거로 들었다. 자백을 받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는 얘기다.

황성미 판사는 스마트폰 증거 제출 확인서를 문제 삼았다. 천동진의 서명 날인이 없다는 이유였다. 배 경감은 “포렌식을 맡기고 나서 정식으로 영장을 받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서명을 누락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문 부장판사는 여죄 수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영장 없는 수사가 별건인지, 여죄 수사인지 판단하기 위함이었다. 배 경감은 “여죄 정황이 나오면 이게 뭔지 정도는 물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그럼 이 사건은 어때요?” 문 부장판사가 물었다.

배 경감은 초기 수사 상황을 간단히 설명했다. 당시 배 경감은 천동진을 박사(조주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라서 당황했다. 그러던 중 천동진의 전자기기에서 다른 여성의 나체 사진을 추가로 발견했다.

배 경감은 “이 사건에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추가 영장을 신청할지, 석방할지 고민했다. 시간에 쫓겨 우선 포렌식을 돌려봤다. 배 경감은 “(천 씨에게) 관련 정황을 물어보라고 제가 지시를 했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문 부장판사는 수사 과정에서 전자정보가 조작될 수 있는지 물었다. 박중광 변호사가 지난 기일에 여러 번 문제 삼았다. 수사기관이 임의로 사진 파일을 조작했다는 주장. 배 경감은 조작되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과거 보이스피싱과 지능팀 업무를 담당한 경력을 들었다.

1시간에 걸친 증인신문이 끝났다. 문 부장판사는 5월 말에 선고하겠다고 말했다. 구속 만기일을 고려한 결정이었다. 다음 기일은 5월 4일 오후 3시로 정했다. 문 부장판사는 다음 기일에 변론을 종결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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