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후보께서는 지금 대학생 처지를 알고나 하시는 말씀입니까?” 2010년 방영된 드라마 <프레지던트>에서 20대 청년이 대통령 후보 장일준(최수종 역)에게 묻는다.

장일준도 묻는다. “다들(정치인) 말은 번지르르하게 해댑니다. 여러분들도 귀가 닳도록 들었죠. 청년실업 해소, 청년 일자리 몇십만 개 창출, 그러나 실제로는 어떻습니까?”

지금의 청년과 정치인은 어떤 답변을 내놓을까. 오세훈 후보는 2030 청년이 ‘유쾌한 반란’을 시작했다고 했다. ‘2030 시민유세단’을 조직, SNS로 유세 현장에 참여할 청년을 모집했는데 반응이 뜨겁다.

이유가 궁금해서 4월 2일, 오 후보의 유세 현장을 취재하며 유권자 이야기를 들었다. 오전 10시 30분, 서울 종로구 동묘벼룩시장. 입구가 꽉 찰 정도로 인파가 몰렸다. 청년 연설자 3명을 제외하고 유세 현장을 지켜보는 20~30대 청년은 5명이었다.

첫 연설은 박정원 씨(20·경기 고양시)가 했다. “스무 살 대학생으로서 희망이 있는 미래를 살아가고 싶다. 지금 이 정부가 청년에게 희망이 있는 정치를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 말을 하고 싶어서 나왔다.”

다음은 오동석 씨(26·서울 마포구). “취업준비생이라서 대본을 차마 외울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핸드폰을 보고 말하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고 했다. “괜찮아 괜찮아”하는 응원이 쏟아졌다.

그는 연설 후 인터뷰에서 “보수당은 연령대가 높은 분이 지지한다는 통념이 있다. 이런 시각이 있었기에 (유세 현장에) 나와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김기현 씨(26·서울 마포구)가 청년의 상대적 박탈감을 높인 사례를 조목조목 언급했다. “조국 사태, LH 사태, 인국공 사태 등이 있었다. 저를 비롯한 청년에게 희망은 없다고 느꼈다. 청년은 꿈을 꾸지 않는다. 우리의 노력은 누군가에게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김 씨는 인터뷰에서 유세 현장이 처음이라고 했다. “낯선 경험인데도 연설을 결심한 이유는 지금의 불공정한 정책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원래 시끄러워서 (유세 현장에는) 안 나갔다. 오늘 와서 분위기를 처음 알았다. 생각보다 사람도 많고 열기가 뜨거워서 놀랐다.”

오 씨와 김 씨는 연설까지 할 줄은 몰랐다고 했다. 김 씨는 “전날 페이스북에 뜬 모집 글을 보고 오 씨와 함께 신청했다. 춤추고 노래 부를 줄 알았다”며 “오 후보가 시장이 된 다음 분열의 정치를 반복한다면 오 후보를 비판하기 위해서 또 유세 현장에 나오겠다”고 했다.

▲ 오세훈 후보가 동묘벼룩시장(왼쪽)과 디지털미디어시티에서 유세하는 모습

낮 12시, 서울 마포구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유세차량 2대가 횡단보도 앞에 정차했다. 빠른 박자의 선거 로고송이 울렸다. 점심시간이라 유동 인구가 많았다. 2030 청년이 많이 보였다. 오 후보는 청년을 겨냥한 발언의 비중을 높였다.

“지금 상암동 광장 한가운데서 점심시간을 이용해 식사하고 커피 한잔 들고 걷는 행복한 젊은이들은 선택받았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젊은이는 목에 사원증 걸고 근처 식당에 가서 식사하고 커피 한잔 들고 산책하는 여러분을 너무너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20~30대 젊은이들이 (현 정권으로부터) 돌아선 이유는, 공정과 상생, 어려운 분을 위하는 정치가 전매특허인 것처럼 말하던 현 정권의 본질을, 실체를, 위선을 피부로 느꼈기 때문이다.”

오 후보는 연설 중간마다 ”그렇죠?” “맞죠?”와 같은 말을 하며 반응을 유도했다. 그럴 때마다 선거운동원이나 지지자가 박수와 맞장구로 호응했다.

민주당 당원인 김창범 씨(25·경기 의왕시)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선거 유세를 비교해보고 싶었다. 모두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하는 게 아쉬웠다. 특히 공정, 정의 같은 추상적인 개념만 언급하고 청년 정책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아 아쉬웠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박용균 씨(24·경기 의왕시)는 국민의힘 유세 전략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성향은 보수인데도 보수당을 지지할 수가 없었던 이유는 지난 총선까지만 해도 국민의힘이 60~70대 이상 중장년층을 대상으로 투표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청년을 공략하는 점이 마음에 든다.”

오후 5시 30분, 양천구 목동의 깨비시장 후문이 북적였다. 지나던 몇몇 시민은 많은 인파에 놀란 듯 어리둥절했다. 상인들은 거리에 내놓은 식재료가 짓밟힐까 안으로 들여놓으면서도 밖을 내다봤다.

오 후보는 계획보다 25분 늦은 오후 5시 55분경 도착했다. 야권 단일화 경쟁 상대였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함께였다. 두 사람이 보이자 분위기가 고조됐다. 지지자들은 박수치며 ‘오세훈, 안철수’를 연호했다.

유세 차량이 있는 시장 사거리까지 두 사람은 주먹 악수를 하며 이동했다. 시민들은 “힘내세요” “파이팅입니다”라고 응원했다. 몇몇이 기념촬영을 요청했다. 안전 요원이 제지하자 오 후보는 “막지 마세요”라고 두 번 말하며 촬영에 응했다.

▲ 오세훈 후보가 사진을 찍는 모습

후문에서 유세 차량까지는 약 300m. 인파가 몰려 20분 넘게 걸렸다. 어머니와 현장을 찾은 서혜지 씨(25·서울 양천구)는 “오 후보가 집 근처로 온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며 “원래도 응원했지만 실제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까 더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야권 단일후보 확정 이후, 리얼미터의 첫 여론조사에서 20대 응답자의 약 60%가 오 후보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서 씨는 공약의 실효성과 현 정부에 대한 실망을 이유로 꼽았다.

“일자리와 집값 문제에 있어서 오 후보의 공약이 더 세세하고 현실적이라 지지를 얻은 것 같다. 현 정부는 공정을 말했지만 하나도 지켜진 게 없지 않나. 그런 점에서 청년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일 거라 본다.”

유세 차량 앞에 200명이 몰렸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마이크를 처음 잡았다. 그는 보궐선거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건 때문에 실시하는 선거라는 점을 환기하며 정권 심판을 강조했다.

다음은 오 후보와 안 대표의 차례. 두 사람은 맞잡은 손을 높이 들어 올려 환호에 호응했다. 안 대표는 “누가 당선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야권이 승리하는 게 중요하다던 약속을 지키러 왔다”고 입을 열었다.

▲ 오세훈 후보와 안철수 대표가 유세차량에서 손을 맞잡았다.

그는 “이번 선거를 한 단어로 말하면 심판”이라며 정권 심판을 재차 강조했다. 안 대표의 연설이 끝나자 오 후보는 “안철수!”를 여덟 차례 외치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유세 차량 앞쪽에서 연설을 듣던 강희상 씨(20·서울 양천구)는 대학교 야구잠퍼 차림이었다. 그는 TV 토론을 보고 오 후보를 지지하게 됐다. 시장으로 일했던 경험이 있어 능숙하게 업무를 해낼 것 같다는 기대감도 있다고 했다.

강 씨는 청년들의 오 후보 지지 여론에 대해 “상대 후보가 20대의 역사적 경험치가 부족하다고 발언한 것도 영향을 줬다”며 “무엇보다 대통령이 취임할 때 했던 말(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 지켜지지 않아서 현 정권에 불만을 가지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강 씨의 친구 박승우 씨(20·서울 양천구)는 “약속을 잘 지키는 성실한 사람”이라고 오 후보를 평가했다. 그는 “지난 4년 동안 민주당의 위선과 무능으로 대한민국이 고통받았기 때문에 정권 교체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일정은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에서였다. 오후 7시 20분 홈플러스 신도림점 앞 횡단보도는 유세를 보려는 시민과 퇴근길 인파로 북새통이었다.

현장에 도착했는데 경찰 5명이 다가왔다. 취재팀이 움직일 때마다 경찰은 따라왔다.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이동하면 왼쪽으로. 뒤로 물러서면 물러선 만큼 다가왔다.

사복 경찰관 3명이 다가왔다. “대진연(한국대학생진보연합)이죠?” 유세를 하루종일 따라다니니 누군가 수상히 여겨서 신고한 모양이었다. 아침부터 취재한 사진과 메모, 신상을 알려주고 나서야 포위에서 벗어났다. 빗줄기가 굵어지며 오 후보의 유세가 마무리됐다.

“투표하십시오. 여러분, 청년 실업자의 분노와 서러움을 표로써 나 같은 정치인에게 똑똑히 보여주십시오.” 드라마 <프레지던트> 속 대사는 2021년 현재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유세 현장의 유권자는 입을 모아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잘못된 윗물을 정화할 수 있는 능력은 2030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청년의 외침이 필요하다.” (전혜령·41·서울 강남구)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청년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바꿔 달라.” (60대 여성·서울 구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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