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가 2018년 방영한 <미스 함무라비>는 법원과 판사를 다뤘다. 드라마에서 임바른 판사는 원칙주의자로 나온다.

<법원 24시>를 시작하면서 취재팀은 그런 판사를 떠올렸다. 자주색 띠의 법복을 입고 냉철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모습. 판사를 처음 마주할 때는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움츠러들었다.

2월 2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서관 501호 법정에서 ‘술집 외상 사건’을 방청했다. 피고인은 직업이 있고 5만 원이 있는 카드를 갖고 있었지만 술집에서 4만 원만 냈다. 계획적으로 저지른 일이 아니라고 호소했지만 판사는 피해자를 불러 다음 공판 때 심문하겠다고 결정했다.
 
공판이 끝나자 판사는 “시민 기자분이세요?”라고 취재팀에게 말을 걸었다. 학생기자라고 대답하자 그는 “안 좋은 건 쓰지 마세요”라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법정에서 웃음이 터졌다. 잠시나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판사의 친절한 모습은 1월 18일 공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판사는 조용한 목소리로 재판을 이끌었다.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8000만 원을 주기로 해놓고 3000만 원을 주지 않았다. 검사는 징역 2년 3개월을 구형했다.
 
판사가 “하실 발언이 있냐”고 묻자 피고인은 두 손을 꼭 쥐고 울 듯한 얼굴로 어머니가 많이 편찮다며 선고일을 조정해달라고 부탁했다. 판사는 상체를 피고인 쪽으로 기울이고 눈을 마주치며 듣더니 참작하겠다고 했다.
 
피고인이 나가자 판사는 변호인과 일정을 상의했다. 그 과정에서도 변호사가 법원에 방문하는 날짜와 시간을 물어보면서 두 번 걸음을 하지 않도록 배려했다.

김선일 판사는 증인을 2시간 넘게 신문했다. 2월 15일, 509호 법정에서였다. 판사는 증인이 마실 물을 경위에게 부탁했고 변호인에게는 질문을 짧게 하라고 요청했다. 증인이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면 다른 표현으로 바꿔 대신 물었다.

변호인이 목소리를 높여 증인을 압박하자 판사는 변호인에게 주의를 줬다. 공판이 길어지자 증인은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표를 취소했다. 판사는 마지막에 “죄송해요. 집에 조심히 돌아가시길 바랍니다”라며 따뜻한 인사말을 건넸다.

박진환 판사는 2월 5일 오전, 513호에서 사기 사건의 재판을 진행했다. 그는 법조문을 기계적으로 읽지 않고 내용을 천천히 설명했다.

“증인 거부 조건이 뭐냐면요. 질문의 내용이 본인이나 가족, 친인척 등에 유죄판결을 받을만한 사안에 있어서 증인이 거부할 수 있다는 말이에요.” 이어서 그는 “선서는 아시나요?” 같은 질문을 덧붙였다. 설명을 마친 뒤에는 “이해되시죠?”라며 확인했다. 

▲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출처=마이데일리)

드라마에서는 판사가 죄를 따지며 피고인에게 화내는 모습이 가끔 나온다. 권선징악을 가르치는 모습에 시청자는 대리만족을 느낀다. <미스 함무라비>에서 박차오름 판사는 감정을 드러낸다.

취재팀은 2월 10일 박차오름같은 이관용 판사를 만났다. 그는 재판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진행했지만 어느 피고인에게는 단호했다.

피고인은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등이용촬영) 혐의로 기소됐다. 판사는 “어떤 여자를 만나든 무엇을 하든 법적인 범위 내라면 아무도 뭐라고 안 합니다”라며 조용히 시작했다.

이어서 “자기가 만나는 여자를 사람으로 보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일입니까?”라고 했다. 피고인은 “죄송합니다”라는 말만 했다. 판사는 “피고인 형제가 어떻게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남동생이 있다고 하자 판사는 화를 가라앉히는 듯 숨을 골랐다.

피해자의 신체가 거의 가려졌고 30대인 피고인에게 사회생활 기회를 한 번 더 주겠다며 판사는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1000만 원을 선고했다.

다음은 준강제추행 사건이었다. 피고인은 주점에서 피해자 및 피해자 친구들과 동석했다. 그냥 가겠다는 일행을 뒷좌석에 태웠다. 피해자가 “어디를 가는 것이냐”고 묻자 피고인은 대리기사를 불렀다고 대답했다.

일행이 잠들자 피고인은 조수석에서 뒷좌석으로 넘어가 허벅지를 만지고 입맞춤을 시도했다. 피해자가 욕을 하자 피고인은 주차하겠다며 뒷문을 열고 나가 도망갔다. 피해자 일행은 곧장 파출소로 가서 신고했다.

피고인은 조수석에서 피해자를 깨우려 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판사는 “상식적으로 키가 177인데 조수석에서 뒷자리로 넘어가는 게 말이 되나요. 문 열고 나가서 깨우겠죠”라고 반박했다.

판사는 피해자와 합의하지 못했고 죄가 무겁지만 전과가 없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벌금 700만 원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피고인. 대답은 안 해도 좋습니다. 지금 재판부를 속였다고 생각하며 기분 좋을 텐데 내가 피고인 사건은 아무것도 안 읽어도 다 그려지거든요. 인생 조심해서 사세요. 나가세요”라고 말했다.

마지막은 인력난을 겪는 중소업체를 대상으로 벌인 사건이었다. 피고인은 허위 경력으로 60개가 넘는 업체에 채용된 후 일부러 문제를 만들고 회사를 고소해 임금보다 많은 돈을 받았다.

판사는 “피고인 같은 사람들 때문에 이런 사건을 겪은 영세업자들이 피고용인에 대한 신뢰가 줄고 사람을 안 뽑는다”라고 했다. 원심을 뒤집고 징역 1년을 선고. 피고인이 “해명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며 울었다. 판사는 냉정하게 말했다. “해명은 대법원 가서 하세요. 나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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