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회 한국기자상 시상식에서 사회자(양영은 KBS 기자)가 “하나 둘 셋, 파이팅!”이라고 선창했다. 하지만 정적이 흘렀다. 참가자 모두가 주먹을 쥐고 손만 머리 위로 들었다. 코로나 19 감염을 우려해 “마음속으로만 파이팅을 외쳐 달라”고 사회자가 요청해서다.

이번 시상식은 예년과 달랐다. 방역지침에 따라 행사장에는 수상자와 가족을 중심으로 100명 이내의 인원만 들어갔다. 사진을 찍을 때도 마스크를 썼다. 수상자는 동료, 선후배, 가족에게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앞으로의 다짐을 전했다. 다음은 소감

▲ 한국기자상 시상식. 방역수칙에 따라 참석자들이 떨어져 앉았다.

김완 한겨레신문 기자(대상)
첫 보도는 제보로 시작했다. 1만 여 명이 가입한 텔레그램 방에서 아동 음란물을 유포한다는 내용이었다. 텔레그램에 그런 세계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기자로서 뭔가를 써야겠다는 생각보다 “이게 도대체 뭔가”라는 무기력하고 막막한 기분이 들었다. 한 달 가까이 관찰하면서 매 순간 울렁이고 두려웠다. 우리가 기사를 쓴다고 이걸 끝낼 수 있는가.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기획 보도 이후에 여러 해결 조짐이 있었지만 4개월 정도 큰 반향 없이 지나갔다. 그때 국민일보 보도가 나왔고 박사가 검거됐고, 많은 젊은 여성, 그리고 ‘추적단 불꽃’을 비롯한 “이 문제를 이번에 끝내자”는 거대한 사회적 운동이 있었다. 그래서 작년 한 해 기사를 쓰면서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지평까지 올 수 있던 것 같다.
 
박민지 국민일보 기자(대상)
혹시나 지금 받는 상이 n번방의 마무리로 해석되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침착하게 사각지대를 들여다보는 기자가 되겠다. 여전히 이곳저곳에 디지털 성범죄가 다양한 유형으로 변형되어 행해지고 있다. 추적을 게을리하지 않겠다. 이 상은 사실 누가 잘해서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희 기사를 보고 같이 분노해주신 모든 분이 만든 기적 같은 성과라고 생각한다. 벅찬 마음은 딱 여기까지만 갖고 여기 내려가는 순간부터는 다시 기사를 열심히 쓰겠다.

박준우 JTBC 기자(취재보도)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나 죽음 문제에 관한 보도는 이전에 여러 차례 있었다. 기사를 쓴 당일에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었는데 넘어가지 않았다는 점. 모든 죽음에는 내막이 있고,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숨겨진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에서 새로운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 그런 점에 충실한 팀을 칭찬하고 싶다. 지난해 ‘죽지 않고 일할 권리’라는 의제를 설정해서 계속 관련된 기사를 썼다. 우리 모두가 죽지 않고 일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데 이번 기사가 작은 밀알을 일으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동현 서울신문 기자(경제보도)
후배들과 회의를 하면서 2020년도 대한민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가 부동산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강남 3구에 있는 아파트 등기부 8000건을 뗐고 1인당 1100~1200개의 등기를 훑으면서 법인 거래 등 문제가 있는 부분에 대해 고민하고 차근차근 데이터를 정리해나갔다. 많은 사람이 한국 언론이 위기라며 “기사를 쓸 때 근거가 무엇이냐”고 질문한다.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치밀하고 꼼꼼하게 기획을 준비함으로써 문제점을 파악하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지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윤지원 경향신문 기자(기획보도)
법조 기자들은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에서 사법부와 검찰 수사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취재한다. 사법부와 검찰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일이 법조 기자의 역할이고 시대적인 요구라고 본다. 검찰과 법무부로부터 수없이 듣는 “절차대로 했다. 근데 그 절차는 비공개다”라는 말에서 착안했다. 비공개 절차라는 걸 구해보자, 뭐가 문제인지 보자, 문제라면 공개해보자. 이런 생각에서 기사를 작성했다. 기사가 나가고 검찰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았고 소송을 운운하는 압박도 받으면서 심각하게 쫄았다. 이렇게 상을 받으니 힘이 되고, 다음 기사를 쓸 든든함을 얻었다.

홍혜림 KBS 기자(기획보도)
복직하고 ‘본질에 집중하자. 결국 기자 일은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듣고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해서 알리는 것’이라고 계속해서 되뇌었다. 같이 상을 받은 기자들, 어려울 때마다 조언해준 모은희 팀장, 프라임타임에 연달아 방송을 내준 KBS 보도본부장에게 감사하다. 믿고 방송할 기회를 준 덕분에 요양병원이 개선되도록 보건복지부가 후속 대책을 내놓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 상을 계기로, 또 두 아이의 엄마로서, 사회의 낮은 목소리가 큰 울림으로 퍼질 수 있도록 현장에서 열심히 뛰겠다.

박현주 경인일보 기자(지역 취재보도)
기사의 계기는 한 형제의 안타까운 사고였기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화재 사실을 확인하고 짧은 단신을 쓰고 현장에 가서 방임이 의심된다는 사안을 확인하면서도 어떤 방향으로 쓸지 고민했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아이들은 학교가지 못했고 보호자의 방임을 알고도 막지 못했던 기관의 부주의 속에서 빚어진 사회적 참사라고 생각한다. 사고가 일어난 지 벌써 5개월이 지났다. 이후 아동학대 피해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법안이 2개 통과됐다. 이를 계기로 학대 아동이 더 신속하게 보호받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김효신 KBS광주 기자(지역 기획보도)
작년에 지역으로 내려오면서 단 한 가지의 문제점이라도 해소하고 지역민에게 필요한 뉴스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지역에서 한 달 내내 총 15회 방송했고 덕분에 경찰과 시에서 조사를 시작했다. 농업의 현실을 제대로 보여주는데 중점을 뒀다. 산지에서부터 소비되기까지 전부 보여주기 위해 강원도에서 배추와 감자를 직접 캐서 트럭에 싣고 새벽시장에 가기도 했다. 확보한 자료가 300개가 SMSE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양이며, 만난 사람도 100명이 넘는다. 앞으로 기자 생활하는 데 힘을 받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도록 보도하겠다.

배여운 SBS 기자(전문보도-온라인)
국회나 고위공직자 같은 경우 언론이 감시를 철저히 하는데 상대적으로 기초의회는 감시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을 두 달간 분석하고, 분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업무추진비의 부당한 사용내역에 대해 직접 현장에 가서 기초의원을 취재했다. 데이터저널리즘팀이 점점 없어지는 추세인데 올 한 해는 데이터를 활용한 좋은 소식을 많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이대진 부산일보 기자(전문보도-온라인)
작년에 ‘살아남은 형제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33주 동안 33명의 형제복지원 피해자를 심층 인터뷰하는 프로젝트를 과연 제대로 진행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끝까지 계획대로 완수해보겠다는 다짐으로 머리를 길렀다. 상을 계기로 시원하게 머리를 자를 수 있을 것 같다. 작년 12월 10일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 2기가 출범했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1호로 다음 달부터 본격적인 피해 조사가 시작된다. 언론계 선후배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
 
이광빈 연합뉴스 기자(조계창 국제보도상)
베를린 교민, 현지 시민이 축적했던 민주주의 문화가 베를린 모델을 만들었기 덕분에 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 점이 한국 사회에 잘 전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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