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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자상 특집 ④ n번방 추적기(국민일보)
진태희 기자 | 승인 2021.02.21 19:53

 

손 안에서 지옥이 펼쳐졌다. 무수히 많은 성착취 영상이 텔레그램에서 불법 제조·유포됐다. 피해자 대부분은 미성년자였다. 현장은 섬뜩했다. 누군가는 차라리 ‘소설’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특별취재팀은 대학생 탐사취재팀인 ‘추적단 불꽃(불꽃)’과 함께 9개월간 텔레그램 성착취 대화방을 취재했다. 이를 토대로 지난해 3월 9일부터 ‘n번방 추적기’ 시리즈를 5일 연속 보도했다.

한국기자상 시상식 하루 전인 2월 18일, 국민일보 건물의 카페에서 박민지 기자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 내내 ‘수상’이 아니라 ‘연대’를 강조했다.

불꽃이 박 기자에게 전화를 걸면서 취재가 시작됐다. 박 기자는 2018년 두 달간, 불꽃과 같이 일한 적 있다. 관심 주제가 같아 이야기가 잘 통했다. “약자로 치부되는 여성이 놓인 기형적 사회와 그 미래.”

텔레그램 이전에 웹하드가 있었다. 박 기자가 2018년 불법촬영물 유포, 판매의 온상지인 웹하드를 취재할 때였다. 정부는 근절하겠다고 공언했지만 불법촬영물은 여전히 넘쳐났다. 박 기자는 다른 유통 창구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불꽃도 같은 생각이었다.

불꽃은 뉴스통신진흥회의 기사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디지털 성범죄를 다루기로 했다. 그들은 ‘av스눕’ 사이트에서 텔레그램과 연결되는 링크를 발견했다. n번방이 있었다.

불꽃은 <“미성년자 음란물 파나요”…‘텔레그램’ 불법 활개>로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하지만 해가 지나도 공론화가 되지 않았다. 불꽃은 기성 언론의 힘을 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박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도와달라고 했다.

“텔레그램 안에서 여성은 노예였고 성착취는 놀이였다.” 불법촬영물을 손쉽게 사고파는 세계. 그러면서도 누구도 죄책감을 갖지 않는 세계. 박 기자는 그런 세계를 처음 접했다. 쫓고 알려야 한다고 다짐했다.

방법이 문제였다. 언론이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자주 보도했지만 불법촬영물은 없어지지 않았다. 텔레그램에서는 범행 수법이 더 대담해졌다. 조주빈은 박사방이 보도될 때마다 새로운 피해자를 세상에 공개하겠다고 협박했다.

특별취재팀과 불꽃은 최대한 많은 사람이 이 세계를 알아주길 바랐다. 사회가 불법촬영물의 피해자에게 주목하기를 바랐다. 사회가 바뀌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새로운 보도 방식이 필요했다.

n번방 추적기 1회와 2회는 1인칭 시점이다. “가해자의 시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서” 새롭게 시도한 방식이다. 이전의 보도는 피해 상황을 관전하는 형식이었다.

“그동안 언론은 강간 대신 성폭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몹쓸 짓, 인면수심 같은 우회적 표현을 썼다. 이런 언어가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단어는 드러내려는 현실과 정확히 조응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취재 과정에서 겪은 심리적 고통을 기사에 반복 서술한 이유다. 박 기자는 2020년 관훈언론상 공적서에서 이러한 시점 전환의 배경을 설명했다.

▲ 국민일보 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 기사 바이라인은 익명이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기사에 밝힌 대로 잠복 취재를 위해서다. 또 다른 이유는 신원을 공개하면 가해자가 취재팀을 협박할 수 있어서다.

박 기자는 기사가 나가기 전날 가족의 SNS를 비공개로 돌렸다. 경찰은 “국민일보 특별취재팀 이름이 공개됐을 때 가해자가 보복하면 그 사람부터 잡겠다”고 약속했다. 특별취재팀은 경찰을 믿고 취재를 이어나갔다.

“with 추적단 불꽃.” 바이라인에 불꽃은 계속 함께였다. 박 기자는 잠복 취재와 동시에 n번방 추적기 기사를 썼다. 불꽃은 텔레그램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경찰에 신고하고, 피해자와 접촉했다.

새로운 시도는 특별취재팀을 향한 데스크의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데스크는 불꽃의 판단을 최우선으로 존중했다. 보도 이후 국민일보는 불꽃을 편집국으로 초청했다. 언론이 앞으로 이런 사건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묻고 답을 듣는 자리였다.

특별취재팀은 가해자 처벌, 검거와 관련한 단독 기사를 연이어 보도했다. 보도 이후 n번방 탈퇴자가 많아지자 이들이 어디로 갔는지도 추적했다.

<조주빈 검거 50일….인터넷은 지금> <n번방 밖으로> 등 후속 시리즈가 잇따랐다. 국민일보 ‘n번방 추적기 보도 사이트’에 따르면 특별취재팀의 기사는 450건(2021년 2월 19일 기준)이다.

박 기자는 관찰자 역할을 잠시 보류했다. 사안의 심각성을 고려했을 때 “기사 작성보다 피해자 구제와 범죄의 사슬을 끊기 위한 실체 파악이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경찰에게 피해 사실을 적극 제보했다.

갓갓의 후계자격인 유사 n번방 운영자 ‘켈리’ ‘와치맨’ ‘래빗’ 검거 과정에서도 경찰과 긴밀하게 협조했다. “이번 보도를 계기로 “기자가 (취재하는 사건에) 어느 정도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

“오늘은 좀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피해자가 박 기자에게 했던 말이다.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부모도, 경찰도 아닌 취재팀뿐이었다. 피해자는 상담 지원을 받고 싶었지만 “부모님이 알면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미성년자는 상담을 받으려면 보호자와 함께 상담소를 가야 했다. 박 기자는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전화해 보호자 없이 치료할 수 있냐고 물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가능하다고 했다. 박 기자는 피해자가 건넨 말을 이후에도 곱씹었다. “못 잤구나. 그동안 잠을 못 자는 삶을 살았구나.”

박 기자는 n번방 추적기의 보도 가치로 ‘범국민적인 분노’를 꼽았다. “성범죄 보도는 젠더 갈등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n번방 사건은 남녀노소의 분노가 모두 모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기사를 쓰면서 2차 피해를 고민했다. 1회와 2회 기사 끝에도 강조했다. “2차 가해를 우려해 (가해 상황의) 극히 일부만 담았다. 기사에 언급된 일부 사례는 n번방의 잔인성을 독자가 판단할 수 있는 수준으로 최소한으로 표현했다.”

“우리가 배웠던 보도 윤리 원칙에 따르면 피해 사실 묘사는 최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기사에 ‘왜’ 피해 사실을 넣지 않아야 했는지 고민해봤다. 지금까지 언론은 제3자 입장에서 사실을 전달하는 형식을 택하면서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상업적으로 소비하게 만드는 기사를 써왔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서승희 대표는 2차 피해 비판에 대해 보도 방식보다 자극적이고 상세하고 무언가를 감수하는 처절한 심경으로 보도를 해야만 알려지는 현실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많은 사람이 (초기 n번방 보도 이후에도) 사건의 실체에 대해 잘 모르거나, 수사 공백, 입법 공백, 정책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보도 방식은) 목소리를 키우려는 선택이었다고 본다. 하지만 자세한 피해 사실 묘사는 최대한 지양하거나 꼭 넣어야 한다면 조심스럽게 넣는 방식이어야 한다.”
 
보도의 파장은 크고 셌다. 디지털 성범죄 근절을 위한 변화가 뒤따랐다. 박 기자는 “(보도 이후) 효과가 빨리 나타났다. 그동안 할 수 있는데 안 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했다.

이른바 ‘n번방 방지법’ 도입. 형법 개정안에 따르면 의제강간 기준연령은 현행 13세에서 16세로 높아졌다. 합동강간·미성년자강간 등 중대한 성범죄는 모의하기만 해도 처벌하는 예비·음모죄도 신설됐다.

불법촬영물 유통 사이트 자체에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n번방 추적기 보도에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제안한 4건의 법 개정 중 3건이 실현된 셈이다. 나머지 한 건은 ‘함정수사법’이다.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려는 단체 리셋(ReSET)은 이런 변화에 대해 “국민적 요청이 가해자 검거와 성범죄자 처벌 강화에 모였기에 법이 이러한 요청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리셋은 여러 대안을 제시했다. 가해자에 대한 확실한 검거와 처벌, 피해자의 피해 확산 방지, 진화하는 범죄 수법에 대한 대책, 올바른 성 인식을 위한 국가 차원의 교육, 보다 섬세한 피해자 구제 기관 및 행정의 구축….

박 기자는 언론인에게 섬세한 언어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언어는 생각이 나오는 통로다. 언어의 의미를 두고 고민하는 것 또한 피해자와 연대하는 방법 중 하나다.”

특별취재팀은 그동안 받은 모든 상금을 기부했다. 자신들이 쓸 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취재팀이 뻗은 연대의 손길은 한국성폭력상담센터, 쉼터, 연탄 등 다양한 곳에 닿는 중이다.

▣ 상담 및 지원
한국성폭력상담소 02-338-5801~2
한국여성민우회 02-335-1858
여성긴급전화 국번없이 1366
대한법률구조공단 132
한국여성의전화 02-2263-646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02-817-7959
텔레그램 성착취 신고 프로젝트 ReSET(@proj_reset)(https://pf.kakao.com/_SxndNxb)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https://www.women1366.kr/stop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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