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 전화기가 울렸다. 작년 10월, 택배 업계 관계자의 제보 전화였다. “지인이 이틀 전에 일을 하다가 죽었다.” 제보자는 “배송 중에 호흡 곤란을 호소하자 대리점 사장이 직접 만나러 갔다가 물 먹으면 괜찮아진다며 그냥 보냈다”고 설명했다.

택배기사는 응급조치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119 구급대가 도착했을 때 의식을 잃은 상태였고 결국 숨졌다. CJ대한통운 강북지사 송천대리점의 김원종 씨 이야기다.

취재팀장을 맡았던 박준우 JTBC 기자는 “전에도 과로사 문제가 자주 제기됐지만 일하는 도중에 숨진 케이스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과로로 인한 사망확률이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부검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단정할 수 없었다.

JTBC 취재팀은 제보를 받은 날에 유족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업무량과 건강 기록을 모으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사망 경위를 들은 뒤에는 전국택배노동자조합·택배 노동자 과로사 대책위와 접촉해 업무 패턴을 파악했다.

▲ 택배 노동자가 처리해야 하는 물량(출처=연합뉴스TV)

김 씨는 48세로 지병이 없었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그는 하루 300개가량의 물량을 처리했다. 평소에는 200개 정도였다. 박 기자는 “업무량이 급격하게 늘었다는 사실을 파악하자 과로로 인한 사망일 가능성이 크다고 확신해서 바로 보도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과로사에서 그치지 않았다. 취재팀은 택배기사의 ‘산재 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가 대필됐음을 발견했다.

보험료를 아낄 수 있다는 마음에서 택배 대리점과 직원은 신청서를 작성하겠다고 구두로 계약했다. 이후 회계법인이 신청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기사를 대신해 ‘본인 신청 확인란’을 작성했다. 본인이 구두로 동의해도 대필한 계약서는 효력을 잃는다.

보도 이후 근로복지공단은 김 씨의 신청서뿐만 아니라 동료가 제출한 신청서 8장을 모두 무효 처분하기로 했다. 그간 내지 않았던 산재보험료를 내면 유족이 산재보험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보도는 택배기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시청자 이윤정 씨(48)는 “새벽 배송을 통해 장을 보며 편하다고만 생각했는데, 그 뒤에 나 같은 사람으로 인한 희생이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 되도록 이용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튜브에서 보도를 접한 이지민 씨(23)는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가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아파트 주민이 선물을 준비하는 등 택배기사를 배려하는 사례가 자주 보이는 것 같다. 변화의 움직임이 생겨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택배기사를 격려하는 인스타그램 메시지(출처=중앙일보)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의 강민욱 교육선전국장은 JTBC 보도 이후 현장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 설명했다. “오랜 기간 이 업계에서 일한 분이 많은데 근래에 주민이 대하는 태도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말했다.

박 기자는 “2500원의 행복 뒤에는 사람의 죽음이 있었다. 새벽 6시 반부터 분류작업을 시작해 오후 2시에야 첫 배송 시작. 하루에 적게는 200개, 많게는 400개의 물량을 소화하며 늦은 밤까지 중노동에 시달리는 택배 노동자의 삶을 몰랐다”고 전했다.

누군가의 죽음을 보도하고 상을 받는다는 게 마음이 편치만은 않지만 택배기사의 노동 환경이 조금이나마 개선됐다면 위안으로 삼고 싶다고 박 기사는 말했다.

“모든 이슈가 그러하듯, 여론의 관심이 떠나면 택배 노동자 이슈 역시 어느 순간 쏙 들어가 버릴 것이다. 논의가 사그라지지 않도록 언론이 긴 호흡의 취재를 통해 끝까지 챙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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