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의 A 씨는 뇌경색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했던 노모를 보고 놀랐다. 엉치뼈 쪽에 주먹만 한 욕창이 생겨서다. 뼈가 보일 정도였다. 코로나 19로 면회가 금지된 두 달 동안에 벌어진 일이다. 요양병원은 노모가 숨지기 하루 전에야 연락했다.

피해를 제보한 건 A 씨만이 아니었다. 이전에도 하루에 수백 통씩 들어오는 전화 중 요양병원 사례가 빠지지 않았다. 코로나 19로 요양병원 면회가 금지되면서 제보가 늘었다. 홍혜림 기자는 “(취재에 응할) 제보자를 찾는 게 어렵지 않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코로나 19가 장기화하면서 요양병원의 집단 감염이 잇따랐다.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작년 5월 말~7월에 요양병원 등 노인시설 10곳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했고 113명이 확진됐다.

요양병원 면회는 3월 13일부터 금지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돌봄 공백이 심각해지진 않았을까. 요양병원 노인은 왜 잠만 잘까? 홍 기자는 여기에 집중해 5월부터 취재를 시작했다.

‘시사기획 창’의 ‘코로나19 요양병원 감시받지 못한 약물’이 보도의 시작이었다. 9월에 방송이 나가자 기자 개인 메일로도 제보가 50여 통 왔다. KBS 보도본부는 특별 취재팀을 꾸려 후속 취재에 나서기로 했다. 보도는 10월, 11월까지 이어졌다.

전국 요양병원의 내부 취재는 간병인 취업을 원하는 50대 여성의 도움을 받았다. 취재팀은 병원에서 피해를 봤다는 환자의 진료 기록지를 확보했다. 취재에 대한 병원 입장도 들었다. 

▲ 한국기자상을 받은 KBS 취재팀. 왼쪽부터 홍혜림 우한솔 전현우 기자

취재팀은 먼저 요양병원의 항정신병제 과다 투약에 주목했다. 홍 기자는 “관련 보도는 전무하다시피 했다”며 “항정신병제와 같은 약물로 환자의 행동을 통제하는 ‘화학적 구속(Chemical Restraint)’이란 개념을 알리는 쪽으로 보도의 핵심을 잡았다”고 말했다.

잠입 취재만으로는 환자에게 어떤 약물을 얼마나 투약하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제보받은 환자의 투약 기록지를 보면 할로페리돌, 쿠에티아핀 등 항정신병제가 빼곡했다. 중증도와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투약된 약물이었다.

취재팀은 항정신병제를 누구에게 얼마나 쓰는지 취재했다. 정영일 서울대 교수(보건대학원)의 도움을 받아 19가지 항정신병제를 기준으로 삼았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노인에게 최소한으로 투약하도록 감독하는 약물이다. 노인 사망률을 높이는 등 부작용이 커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2019년 11월부터 2020년 4월까지를 대상으로 전국 요양병원 1400여 곳의 19개 항정신병제 처방 내역을 확보해 국내 최초로 분석했다.

자료 확보에만 3개월이 걸렸다. 홍 기자는 “(심평원이) 대략적으로 파악해도 (요양병원이 해당) 약물을 너무 많이 쓰고 있어서 (자료 공개가) 어렵다고 했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을 통해 자료를 확보했다.

분석 결과 국내 요양병원의 80% 이상이 12가지 항정신병제를 처방했다. 한달 평균 처방량은 233만 개였다.

원래는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에게 투약할 약물이지만, 실제로 처방받은 환자 중 약 90%가 치매 환자, 일반 환자였다는 게 문제였다. 정신질환자는 3.7%에 불과했다. 홍 기자는 “(요양병원의 약물 과다 투약이) 일부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 자료로 입증됐다”고 말했다.

▲ 요양병원의 항정신병제 처방량 보도(출처=KBS 시사기획 창)

김현정 유한대 교수(보건복지학과)는 “(요양병원) 의사들이 투약을 어떻게 하는지 어르신이 꼼짝도 못 하고 잠만 잔다, 돌아가시게 생겼다는 식의 얘기를 보호자들에게서 많이 들었다”며 “실제로 그런(과잉 투약의) 문제점이 있음을 보여준 보도”라고 평가했다.
 
취재팀은 항정신병제가 남용되는 이유로 간병인력의 부족을 지적했다. 돌봄의 빈틈을 항정신병제가 채운다는 얘기다. 방은숙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조직국장은 간병인에 대한 정부의 관심 부족이 돌봄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간병인은 의료노동자가 아니라서 마스크도 직접 사야 한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필수 노동자로 꼽히지만 환자 개인이 일당을 주고 계약하는 형태라 어디에서도 보호받지 못하는 유령 노동자다.”

방은숙 조직국장은 노동조건 개선이 필요한 간병노동자는 얼마나 되는지 등 전국 간병인에 대한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조차 없다며 장기적으로는 간호·간병 통합제도를 활성화해서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보도가 나가고 취재팀은 보호자로부터 고맙다는 연락을 받았다. 홍 기자는 전북 김제에 사는 제보자의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비록 돌아가신 어머니를 살릴 수는 없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경종을 울려줘서 고맙다.”

정부도 움직였다. 보건복지부는 “요양병원 적정성 평가지표에 항정신성 의약품 투약 안전 항목을 신설할 계획”이며 “의약품 안전사용서비스(DUR) 확인 사항에 항정신병제를 추가할 예정”이라고 2020년 11월 밝혔다.

스토리오브서울 취재팀이 2월 19일 심평원에 확인했더니 “식약처(식품의약품안전처)에 항정신병제 점검을 의뢰해 (결과를) 기다리는 상태”라며 DUR에 추후 추가될 예정이라고 했다.

대한요양병원협회도 2020년 12월 방송된 KBS ‘TV비평 시청자 데스크’에서 “정확한 분석을 통해 항정신병제 투약에 대한 관리, 개선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협회는 지난해 11월 항정신병 약물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처방 주의사항을 담은 임상지침을 전국 요양병원에 배포했다.

시청자 이주연 씨(26)는 “일반 국민이 알기 힘든 정보를 보도해 노인 복지 제도를 점검하고 대안을 마련하도록 촉구했다는 점이 좋았다”고 말했다. 김규희 씨(23)는 “요양병원이 처방한 항정신병제를 전수조사했다는 점이 (다른 보도와) 차별화된 지점 같다"고 말했다.

현정희 건강세상네트워크 공동대표는 “요양병원 문제가 왜 생기고 어떻게 해결하면 좋은지 언급은 됐지만 이후의 변화를 다루는 보도는 아직 많지 않은 것 같다. 언론 보도 후 보건복지부의 변화, 해당 병원의 변화, 환자 보호자들의 반응을 담은 보도가 나오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홍 기자는 KBS 보도와 그에 따른 제도 변화가 실질적인 노인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려면 투(two)트랙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요양병원의 질적 발전과 살던 곳에서 돌봄 서비스를 받는 재가 복지, 지역사회 돌봄의 확대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얘기다.

김윤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교실)는 작년 10월 방송된 ‘일요진단 라이브’에서 “(커뮤니티 케어에 참여하는) 지역이 전국 시군구의 10%도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금 같은 사업 범위와 속도로는 노인 및 요양병원의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보도는 끝이 아니라 시작인 거죠.” 홍 기자는 “(노인 돌봄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며 “단기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에 관심을 더욱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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