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이대진 기자는 한국기자상 수상의 공을 피해자에게 돌렸다. 그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를 다룬 <살아남은 형제들>을 기획하고 동료 이승훈 기자와 증언을 기록했다.

취재팀은 피해자를 매주 한 명씩 만났다. 인터뷰를 6개월 이상 계속하면서 영상 콘텐츠와 인터랙티브 페이지를 제작했다. “(피해자 얘기를) 들어드린 게 다”라고 했지만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1987년까지 부산에서 운영된 복지시설이다. 부랑인을 선도한다는 명목으로 거리에서 무고한 시민을 잡아다 불법 감금한 뒤 강제노역, 구타, 암매장, 성폭행 등 인권 유린 행위를 일삼았다.

취재팀은 당사자에 주목했다. 이대진 기자는 “형제복지원 보도에서 피해자 증언은 길어야 1분 정도였다”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제대로 알리려면 그분들의 입으로 얘기하게 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영상 구술사’였다. 형제복지원이 폐쇄된 지 33년이 되는 해였기에 피해자와 전문가 등 33인을 인터뷰하기로 했다. 글로는 전달하기 어려운 말의 뉘앙스, 표정, 몸짓을 영상에 담았다.

형제복지원 입·퇴소자 명단은 일부가 소실됐다. 가짜 피해자나 증언을 가려낼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때마다 피해자들이 도움을 줬다. 재소 기간이 겹치는 피해자는 서로의 증인이 됐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피해생존자모임)’은 피해자라 주장하는 이들을 만나 검증했다. 한종선 피해생존자모임 대표는 “형제복지원 출신이라면 다 알아듣는 은어가 있다”며 “누구한테 들은 걸로는 절대 할 수 없는 말이 있다”고 설명했다.

▲ 피해생존자모임 대표인 한승수 씨(출처=유튜브)

기획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에 영향을 미쳤다. 보도가 나가던 중에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과거사법 일부개정안이 통과됐다.

이와 관련해 이대진 기자는 “원래는 21대 국회까지 여론과 분위기를 이어나가는 게 (기획의) 목적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세번째 증언자인 최승우 씨가 부산일보 인터뷰 직후 고공농성에 돌입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일주일마다 새로운 증언이 공개되니 관심이 크게 늘었다.

취재팀이 확보한 증언과 증거 자료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의 조사에 활용될 예정이다. 과거사법 통과로 출범한 2기 진실화해위는 이르면 3월 말부터 형제복지원 사건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진상규명을 시작한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위원회 차원의 자체 조사와 사실 검증이 이뤄질 것”이라면서도 “현재 <살아남은 형제들>을 모니터링 중에 있으며 부산일보 보도를 포함해 여러 경로로 수집된 정보가 충분한 참고 자료가 되고 있다”고 언급했다.

한종선 대표는 “형제복지원 피해자는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해) 피해 사실을 전달하는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기자가 그런 피해자의 입이 되어 우리 이웃이 어떤 인권 유린을 당했는지를 잘 전달했다”고 말했다.

임동준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모니터팀장은 “그동안의 언론 보도에서 피해자 인터뷰는 선정적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강했다”며 “부산일보의 경우 (증언을 통해) 구조적인 문제를 밝히는 데 중점을 뒀다”고 평가했다.

이대진 기자는 취재 내용을 책이나 다큐멘터리로 남길 생각이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형제복지원 박인근 원장은 2016년까지 재단 명칭을 바꿔가며 비슷한 시설을 운영해 재산을 불렸다”며 그게 어떻게 가능했는지를 취재할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 <살아남은 형제들> 인터랙티브 페이지(출처=부산일보)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조사는 이제 첫발을 뗐다. 인권 유린, 부랑인이라는 사회적 낙인 등 피해자가 겪은 고통을 뒤늦게나마 보상받을 길이 열렸다. 한종선 대표가 2012년 국회 앞에 천막을 세우고, 문제를 제기한 지 8년 만에 이룩한 성과다.

취재팀도 ‘밀린 숙제’를 하는 마음으로 이 과정에 함께 했다. 그래서일까. 이대진 기자에게 상은 명예롭지만 한편으로는 부수적인 듯했다. “상을 받을 때마다 형제복지원 사건이 한 번이라도 더 조명될 수 있어서 그게 사실은 더 기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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