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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부동산이 사람을 낚는 법
김용헌 기자 | 승인 2020.12.20 19:00

 

정재호 씨(30)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있는 부동산 업체의 토지 판매직 일자리를 인터네 구직사이트에서 구했다. 지난 10월이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역 인근에 좋은 땅이 있다는 강연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전문 용어를 섞어가며 설명하자 직원들이 빠져들었다.

강의가 끝나자 회사는 “땅을 매도하면 판매가 10%를 인센티브로 지급하겠다”고 직원들을 회유했다. 토지거래 법정 중개료 상한선(0.9%)의 10배가 넘는다.

직원들은 가족과 지인에게 토지를 적극 소개했다. 높은 인센티브에 개발 호재까지 있다니 중개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업체는 실적이 좋은 직원에게 자동차를 선물했다.

정 씨가 몸담았던 곳은 기획부동산 전문이었다. 개발 가능성이 낮은 토지를 매입하고 개발 호재가 있는 듯이 부풀려 비싼 값에 되판다. 정 씨 같은 판매직 사원, 아르바이트생을 교육해 영업사원으로 활용한다. 직원 자신이 좋은 땅’이라고 믿고 토지를 구매한다.

▲ 기획부동산의 구인 광고(출처=잡코리아)

김현주 씨(48)는 그런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다. 2017년 1월 부동산 중개업체의 토지 판매직 아르바이트를 할 때 경기도 화성시 땅을 매입했다. 업체는 전직 국회의원이 등장하는 신문 기사로 토지를 3년만 묵혀두면 대박이 난다고 사원에게 설명했다.

김 씨는 인터넷에서 기획부동산을 다룬 글을 올해 6월에야 읽었다. 일했던 회사와 비슷해서 매입한 토지의 개별공시지가를 뒤늦게 확인했다. ㎡당 약 75만 원에 매입했는데 개별공시지가는 6만1000원이었다. 3년이 지났으나 개발제한구역이라서 개발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매입자 대부분은 피해를 나중에 알고 계약 파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받아들여지는 사례는 거의 없다. 사인 간 거래라 법률적으로 강제할 수 없어서다. 기획부동산의 피해 사례 모음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갑민 씨(43)는 “부동산 회사가 환불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말했다.

일부 업체는 기획부동산이라는 이야기가 돌면 갑자기 사라진다. 권병구 씨(29)가 2018년 11월 일했던 부동산 그룹의 홈페이지는 9월 폐쇄됐다. 사무실도 문을 닫았다. 인터넷 부동산 카페에서 기획부동산으로 지목되면서다. 매입자는 환불을 요구하고 싶어도 상대할 창구가 없다.

피해자가 기획부동산 토지를 제 3자에게 매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공유지분으로 여러 명이 함께 소유하고 있어서다.

이를테면 100평짜리 땅을 A 씨가 100분의 2, B 씨가 100분의 5, C 씨가 100의 3씩 소유한다. 지분이 쪼개진 땅은 활용 가치가 낮아서 매입자가 드물다. 토지에 작은 집을 하나 지으려 해도 지분 보유자 모두에게 동의를 받아야 한다.

최모 씨(56)는 경기도 고양시 토지 2496㎡ 가운데 100분의 2가량의 지분을 갖고 있다. 나머지는 33명이 공동소유한다. 최 씨는 “땅을 팔 방법이 없어 시설 건축이라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건물을 지으려면 33명을 일일이 찾아가 설득해야 한다.

▲ 토지 2496㎡를 34명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출처=인터넷등기소)

소병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5년 이후 기획부동산으로 의심되는 토지 지분거래가 경기도에서만 40만 건 넘는다. 이갑민 씨(43)는 “많을 때는 하루에 10명 넘는 피해자에게 연락이 온다”고 말했다.

피해는 꾸준히 발생하지만 업체 관계자가 사기죄로 처벌받는 사례는 많지 않다. 속임수를 의미하는 기망 입증이 힘들어서다.

대법원 판례(2004도45)에 따르면 토지거래를 권유할 때 신문스크랩 등에 기초하면 기망이 아니다. 대다수 업체는 언론 보도를 악용해 개발계획을 부풀리며 처벌을 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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