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생 정재호 씨(20)는 겨울마다 코막힘과 호흡 곤란에 시달린다. 증상은 마스크를 오래 착용하면서 더 심해졌다. 공기가 통하지 않아 금세 정신이 혼미하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콧물도 문제였다.

그런 상태에서 9월 모의고사를 치렀으니 성적이 좋을 리가 만무했다. 특히 국어와 영어 점수가 크게 떨어졌다. 집중력 저하로 긴 지문을 읽기가 어려웠다.

그는 “산소가 부족한 탓인지 간단한 지문도 이해되지 않아 몇 번씩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사실상 올해 수능을 포기했다. 속상하지만 내년에는 마스크를 벗고 시험 치르기를 바란다.

임정아 양(19·서울 동덕여고)은 평소 가벼운 비염 증상을 앓았다. 간절기가 되면 코가 간지럽고 재채기가 나온다. 호흡기 장애가 더 심해진 건 최근이다.

10월 모의고사를 보다가 갑작스레 호흡이 가빠지는 증상을 느꼈다. 장시간 마스크를 쓰고 히터 바람을 쐰 게 원인이었다. 그녀는 “평소엔 약한 비염 정도였지만 마스크를 오래 쓰니 호흡이 어려웠다. 수능 시험장에서는 어떻게 대처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호흡기 질환을 앓는 수험생은 수능이 다가올수록 걱정이 심하다. 호흡기 질환은 청소년기에 흔한 질병. 알레르기 비염과 축농증 원인으로 꼽히는 비중격만곡증이 청소년기에 주로 생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추산한 비염 환자 1500만 명 중 30% 정도가 20세 미만이다.

코막힘이 심해지면 입으로 숨을 쉬는 구(口) 호흡 증상이 동반되는데 집중력 저하와 기억력 감퇴로 이어진다. 하나이비인후과 정도광 원장은 “호흡기 질환은 학업 능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수술 상담이 많은 질병 중 하나”라며 “수험생이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니 수능을 앞두고 호흡기 질환 수험생의 민원이 크게 늘었다. 10월 25일까지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수능 관련 민원은 152건. 작년보다 30%가량 늘었다. 이 중에서 마스크 착용으로 인한 불편함을 호소하는 내용이 9건이었다.

마스크 착용을 우려한 목소리는 대부분 호흡기 질환이 있는 수험생에게서 나왔다. 국민권익위 민원분석실 최상권 주무관에게 물었더니 마스크 관련 민원 중 절반 이상인 5건이 비염·천식·축농증 등의 호흡기 질환에 대한 내용이었다.

▲ 수능 관련 민원(출처=국민권익위)

국민권익위에 따르면 천식을 앓는 A 씨는 지난 9월 경기도교육청을 통해 민원을 제기했다. 그는 “마스크를 착용하고 6월 평가원 시험을 치렀다가 근육경련과 두통이 와서 중간에 고사장을 나왔다”며 “수능 지침에 따르면 모든 수험생이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데 기저 질환자에 대한 배려는 없는 것이냐”고 항의했다.

이에 대해 국민권익위는 “수능 전까지 수험생의 불안과 걱정이 가중되지 않도록 세심한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천식과 같은 호흡기 질환 환자를 ‘시험 편의 제공 대상자’로 포함하는 방안을 11월 5일 마련했다. 마스크를 장시간 착용할 수 없는 수험생을 따로 모아 마스크를 벗고 응시하도록 했다.

교육부 지침에 따르면 수험생이 호흡기 질환으로 별도 고사장을 배정받기 위해서는 증빙 서류를 지참해 해당 교육청에 제출해야 한다. 서류는 마스크 착용이 곤란한 사유가 적힌 대학병원 소견서, 출신 학교장 확인서, 수능 전날 발급받은 코로나-19 음성 확인서다.

문제는 대학병원 소견서. 호흡기 질환자로 인정하는 기준이 병원마다 조금씩 차이가 나는데 평소에는 이상이 없더라도 기온과 바람 등 특정 조건에 따라 증상이 악화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알레르기 비염을 10년째 앓는다는 안태환 씨(24)는 “환경에 따라 증상이 천차만별인데 어떻게 하루 소견서만으로 질환자임을 판단하느냐”며 “질병의 특성을 간과하고 수험생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말했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교수(호흡기내과)는 “대학병원 소견서를 써줄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의사 마음”이라며 “오늘 증상이 없어서 소견서를 안 써줬는데, 수능 날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조건이 까다롭다는 의견도 나온다. 수능이 임박한 시점에서 서류를 모두 준비하기가 번거롭기 때문이다. 수험생은 시험 전날, 코로나19 검진기관을 찾아 음성 판정임을 확인받아야 한다. 1분 1초가 아쉬운 수험생이 불편을 느끼는 이유다.

수험생 A 군(19)은 교육부 지침을 접하고 기쁜 마음에 교육청에 문의했다가 실망감을 느꼈다. 마스크 착용 여부와 고사실 운영 방식을 물었지만 “정해진 것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별도 고사실에서 응시하지 않기로 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는 “무엇보다 중요한 원칙은 수험생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일”이라며 “특정한 장애로 수험생이 불편함을 겪는 일이 없도록 충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는 고사실을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교조 전현진 대변인은 “수능 날 고사실이 부족한 것은 매우 큰 문제”라며 “교육부가 신종플루 사태를 상기하며 이번에는 수험생을 충분히 배려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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