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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근의 논술강화(論述講話) (20) 학습과 시도
송상근 스토리오브서울 편집장·이화여대 특임교수 | 승인 2020.11.15 16:35

 

소방관이 숨졌다. 정년퇴임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화재현장에 출동했다가 순직했다. 2006년 11월 14일이었다.

국내 언론은 서병길 소방장의 사연을 보도했다. 여권을 생전 처음 만들었지만 사용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서병길 소방장의 사연을 언론이 보도하는 방식이었다. 대부분 신문의 기사 구성이 비슷했다. 누군가 만든 공식을 언론이 따라간 느낌을 줄 정도였다.

도입부에는 지인의 슬픈 말이 인용문의 형태로 나온다. 이어서 시간과 장소와 인물을 중심으로 장례식장 분위기를 소개한다. 다음에는 오열했다, 말을 잇지 못했다는 술어로 감정을 표출한다.

기사는 사고현장으로 돌아가 출동 및 구조 활동, 그리고 순직하던 순간을 재현한다. 소방장의 경력과 가족 이야기, 지인의 말이 뒤따르고 특진과 장례 절차를 설명하면서 마무리된다.

놀랄 정도로 비슷했다. 국내 언론은 왜 비슷한 주제를, 비슷한 방식으로 쓸까. 이런 문제의식에서 미국의 피처 또는 내러티브 기사에 눈을 돌렸다. 특히 미국의 퓰리처위원회와 신문편집인협회(ASNE) 수상작에 집중했다.

국내 언론이 생각하지 못하는 소재, 관점, 취재, 구성, 표현. 많이 읽을수록 감탄했고 많이 접할수록 부러웠다. 기획기사는 물론 논술작문의 아이디어를 구하고 구성력과 문장력을 배우기에 더 좋은 내용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기자는 토머스 프렌치(Thomas French)다. 세인트피터스버그타임스 기자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저널리즘스쿨 교수로 근무한다. 

그는 플로리다주의 세 모녀 피살사건을 <천사와 악마(Angels & Demons)>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퓰리처상 피처 부문의 1998년 수상작. 가해자와 피해자가 아니라 수사관을 주인공으로 해서 A4 용지 226장에 담았다. 밤새 읽으면서 추리소설 같은 긴박감과 공포감을 느꼈다.

프렌치 기자의 <한밤의 절규(A cry in the night)>는 범죄보도의 정수를 보여준다. 1986년에는 4회 시리즈로, 1988년에는 10회 시리즈로 신문에 게재했고 2008년에는 온라인 특집으로 올렸다. 나중에 <대답 없는 절규(Unanswered Cries)>라는 책으로 나왔다.

기사는 캐런이라는 36세 여성이 성폭행당하고 살해된 사건을 다뤘다. 숨지기 직전에 그가 비명을 질러서 서너 블록 떨어진 이웃에게까지 들릴 정도였지만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

자기 일이 아니면 무관심한 세태, 가해자의 인권을 더 중시하는 듯한 사법체계. 기자는 살인사건을 통해 구조적 문제를 다루는데 범인의 정체를 하나씩 벗기는 기법이 탁월하다.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기자는 워싱턴포스트의 진 웨인가튼(Gene Weingarten)이다. 그는 세계적 바이올린 연주자 조슈아 벨을 아침 출근시간, 워싱턴의 가장 번화한 거리에 세웠다.

벨은 평범한 옷차림에 모자를 써서 거리 악사처럼 변장했다. 350만 달러짜리 바이올린으로 명목을 연주하지만 시민 대부분은 그냥 지나친다.

기사 <아침 식전의 진주(Pearls before Breakfast)>는 일상이 바빠서 주변의 소중한 존재를 잊고 지내는 현대인의 모습을 수려하고 철학적인 문장에 담았다. 퓰리처상 피처 부문을 2008년 수상했다.

웨인가튼 기자는 2010년에 같은 부문의 상을 받았다. 제목은 <치명적 부주의(Fatal Distrcation)>. 자녀를 자동차 뒷좌석에 무심코 두고 내린 부모들의 사연을 모았다. 같은 행동이지만 형사처벌 여부와 정도는 주마다 다르다며 사법정의의 본질을 묻는다.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은 기사가 아니라 소설 같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기사의 딱딱한 표현이나 천편일률적인 구성과 달리, 부드러운 문장과 치밀한 전개가 압권이라고 말했다.

퓰리처위원회와 신문편집인협회 수상작을 읽으면 기사를 익히고 영어를 배우며 논술작문을 준비할 수 있다. 시험을 준비하는 지금은 물론, 취재현장에 나가서도 도움이 된다.

필기 통과를 고민하는가. 논술과 작문에 머리를 싸매는가. 그렇다면 공부하는 법을 바꿔라. 국내 신문의 칼럼을 짜깁기하지 말라. 뉴스를 요약하고 좋은 인용문을 한두 개 넣는 수준에 만족하지 말라. 판에 박힌 논술, 어설프게 짜낸 작문을 지망생끼리 돌려보며 평가하지 말라.

수준 높은 글의 세계에 눈을 돌리자. 밤을 새워 읽어도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감동과 여운을 남기고 계속해서 도움이 된다. 퓰리처위원회와 신문편집인협회 수상작을 하나씩 읽으라. 많이 접할수록, 꼼꼼하게 정리할수록 합격 가능성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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