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익 전 문학과지성사 대표가 계간지 <본질과 현상>에 <인간 이해의 착잡함>이라는 글을 썼다. 이완용 이야기로 시작하는 글을 읽고 최보식 조선일보 기자가 만났다. 김 전 대표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 세기 너머 전의 이완용이 내게 달려들어 인간 이해의 방법에 대한 회의를 안겨줬습니다. 어떤 악한이라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아무리 성자적인 생애를 살았던 사람도 범용한 인간다움을 가지게 마련이며,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존재론적인 한계가 있는 겁니다.>

김 전 대표는 이완용을 변호하거나 그런 듯이 비치는 일이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안다. 그렇기에 이완용의 친일 행위에 회의나 이의를 갖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면서 역사 속의 인물을 단순하게 평가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우리 현실에서 무자비한 일차원적 사유로 인간을 난도질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습니다. 이완용이란 당대 최고의 거물을 ‘친일파’란 단 한마디 말로 몰아 그 인격적 존재 전체를 단정할 수 있을까. 저는 이런 점을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김 전 대표는 동아일보 기자였다. 박정희 정부 시절이던 1975년, 중앙정보부에 끌려갔고 해직됐다. 그 자신이 무자비한 일차원적 사유로, 단 한마디 말로 인생이 난도질당하는 일을 경험했다.

<냉철하게 이성적으로 따져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과거 정권 시절 ‘빨갱이’ 낙인도 그렇습니다. 40여 년 전 저는 남산에 며칠 연행된 적 있었는데 어쩌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앞집 부인이 내게 ‘빨갱이’라는 말을 썼습니다. 살아온 인생이 그 한마디로 모두 부정됩니다.>

역사 속의 인물에 대한 평가만이 아니다. 사회 현안의 복잡성과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 단순하게 인식하고 판단하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기준은 우리 편인가 아닌가이고, 결론은 찬성과 반대 또는 선과 악이다.

언론의 진영논리는 이런 현실이 반영된 결과다. 보수언론은 진보정권을, 진보언론은 보수정권을 맹렬하게 비판한다. 보도 내용이 모두 그리고 완전히 진영논리의 산물이지는 않겠지만 상대 진영에 대한 비판은 과도한 공격으로 인식된다.

이런 문제를 저널리즘스쿨에서 지적하며 사안을 비판적으로 보되 균형성과 논리성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판결문 읽기를 권한다.

판결문에는 사실이 나온다. 누가 당사자인지, 문제가 왜 생겼고, 무엇이 핵심 쟁점인지를 정리한다.

판결문에는 과정이 나온다. 양측이 어떻게 주장하는지, 증거로 무엇을 제출했는지, 관련되는 인물이 어떻게 증언하는지를 담는다.

판결문에는 결론이 나온다. 형사재판이라면 주장과 증거와 증언을 바탕으로 판사는 유무죄 여부 또는 형량을 정한다.

사실(주장과 증거와 증언)을 바탕으로 판사가 판결하듯이 사실(관찰과 대화와 자료검색)을 바탕으로 기자가 보도한다. 확보한 사실을 정리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판결문에는 사실과 과정과 결론이 모두 나오므로 꼼꼼하게, 많이 읽으면 균형성과 논리성을 갖추는데 도움이 된다. 기자 시절에도, 저널리즘스쿨에서도 재판 기사가 나오면 판결문을 구해서 읽는 이유다.

판결문 읽기가 어렵다면 역사적 판결을 소개한 책이나 논문부터 시작해도 좋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 또는 해설본을 읽으면 역사 상식 영어, 세 가지를 모두 공부하는 셈이다. 처음에는 어려울지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보의 보고(寶庫)임을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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