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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야기를 담는 기자, 김윤덕
소설희 기자 | 승인 2020.11.01 21:54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민박집을 하는 서울 토박이 안나 씨, 결혼 40주년을 맞아 파리에 처음 가본 김석순 여사, 인생 2막을 위해 지게차 시험을 준비하는 전직 시사교양 PD. 조선일보 김윤덕 기자의 글은 다양한 사람의 모습을 전한다.

김 기자의 대표 칼럼 ‘줌마병법’은 수다에서 시작됐다. 그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를 때,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 동료와 대화를 나눌 때 허투루 듣지 않는다. 모두 글의 소재가 되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굴 만나도 녹음을 한다. 동료의 허심탄회한 수다를 듣는 회식 자리도 예외가 아니다. 사내에서 ‘김윤덕 경보령’이 나온 이유다.

서울 중구의 조선일보 미술관 1층에서 김 기자를 만났다. 1시간 정도로 예정했는데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취재원이 저랑 인터뷰할 때 무슨 얘기를 한 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말을 많이 했다고 할 때가 종종 있어요. 그만큼 제가 편하다는 거겠죠 호호.”

▲ 김윤덕 기자(출처=조선일보)

기자 생활의 첫 시작은 월간 ‘샘터’였다. 대학 4학년 때인 1991년 입사했다. 그곳에서 글쓰기의 80%를 배웠다. 최인호, 이혜인, 법정 스님 등 유명인의 글을 보며 ‘문학적 감수성’을 익혔다.

사수이자 동화작가였던 정채봉 선생이 큰 영향을 미쳤다. 김 기자는 샘터에서 첫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온 날을 떠올렸다. 보통은 인터뷰의 전반적인 내용이나 인상 깊은 부분을 묻기 마련이다.

하지만 정채봉 선생은 다른 내용을 물었다. 취재원이 그날 무슨 옷을 입고 있었냐, 사무실에는 어떤 사진이 걸려있었냐, 취재원 손버릇은 뭐냐….

김 기자가 대답하지 못하자 정채봉 선생은 “기자는 그 사람의 말뿐만 아니라 표정, 분위기, 옷차림, 미세한 표정까지도 모두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후 김 기자는 디테일을 끌어내기 위해 취재원의 전부를 샅샅이 살폈다.

샘터에서 얻은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옆 부서 동화작가 선배의 조언을 잊지 못한다. “누군가를 인터뷰할 때, 그 사람에 대해 70%는 미리 알고 가야 해.” 김 기자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전에는 나오지 않은 ‘새로운 것’을 질문하기 위해 노력한다.

· 총리실로 배달되는 각종 보고서를 서류가방에 들고 다니며 틈날 때마다 읽는다던데 사실인가요? (2년 4개월간 나라살림 마치고 퇴임하는 김황식 총리의 소회, 2013년 2월 16일)

· 군복무 시절 시인 김현승 선생에게 습작시를 보냈더군요. (등단 40년 정호승 시인, 정치의 계절에 시를 논하다, 2012년 11월 24일)

김 기자는 풍부한 이야기를 끌어내기 위해 되도록 취재원이 편안한 공간에서 인터뷰를 한다. 취재원이 사는 동네나 자주 가는 공간, 사무실이다. 마음이 편해야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배우 고두심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고두심이 데뷔 40주년을 맞아 ‘댄스 레슨’으로 연극에 섰을 때다. 기자 사이에서 깐깐하기로 소문난 인물이기에 긴장했다고 한다.

약속된 인터뷰 시간은 30분.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짧다. 김 기자는 고두심의 눈에 들기 위해 나름의 작전을 짰다. 인터뷰 하루 전날, 연극을 관람해서 눈도장을 찍었다. 고두심이 마음의 문을 열면서 인터뷰는 3시간 가까이 됐다. 두 사람은 자주 연락하는 사이가 됐다.

▲ 배우 고두심 인터뷰(출처=조선일보)

그는 인터뷰가 서로를 알아가는 인간적 관계라고 했다. “인터뷰를 딱딱하게 묻고 답하는 과정으로만 생각하면 안 된다. 자연스럽게 서로 밥 먹고 차 마시다 보면 디테일한 답이 안 나올 수가 없다.”

김 기자는 2007년부터 2009년까지는 줌마병법을 연재했다. 스웨덴에 연구원으로 다녀오고 2010년부터는 ‘新줌마병법’을 연재한다. 둘의 차이는 ‘소재의 확장’이다.

· 남편도 밉고 친구도 싫고 아이들도 귀찮았다. 애들이 징징대든 말든 내리 여섯 시간 동안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만 볼 때도 있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여자들, 거리를 종종걸음으로 바삐 지나다니는 여성들은 모두 자기보다 멋지고 훌륭했다. (그녀의 엽기 추석 이벤트, 2007년 9월 19일)

· 세 여인에겐 공통점이 있다. 바로 직장맘! ‘내 일은 내가’ ‘맨땅에 헤딩’ ‘이 없으면 잇몸으로’ ‘일당백’ 같은 구호를 외치며 살아가는 족속. 출산도 혼자, 전셋집 계약도 혼자, 수술도 혼자서 척척 해버리는 그네들 사전에 ‘징징대다’는 단어는 멸종된 지 오래다. (당신이 미셸 오바마보다 멋져, 2008년 11월 11일)

엄마, 시어머니, 친구와의 수다를 하나의 에피소드처럼 엮은 코너가 줌마병법이다. 여성의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그렸다. 新줌마병법에서는 소재가 남편, 가장, 할아버지로 확대됐다.

· 여름휴가 때 마누라한테 보여주려고요. 마누라는 다 늙어 뜀박질하다 다리라도 부러지면 병원비는 어쩔 거냐 타박하겠지만, 그 지청구 들으며 낮잠 한번 푸지게 자는 게 소원입니다. 상봉까지 D-150일. 잔소리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걸 그땐 왜 몰랐을까요. (‘바가지’도 사랑이란 걸 그때는 몰랐네, 2018년 2월 13일)

· 제 이름은 마동수입니다. 자동차 부품 만드는 회사의 만년부장입니다. 부장만 10년짼데 빽, 능력, 입담 모든 면에서 부실하여 은퇴 전 상무님 소리 듣기는 그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들딸 대학 보내고, 저축은 없지만 빚도 없으니 이만하면 80점은 되는 인생 아닐까요? (그 댁 아내는 안녕하십니까?, 2016년 9월 13일)

그의 글에는 전국 팔도 사투리가 등장한다. 때로는 기사 전체를 사투리로 구성한다. 우리말의 정감을 그대로 살리는 셈이다.

· 나이는 왜 물어유? 49년생 소띠, 만으로 칠십인디 그리 안 보이쥬? 남들은 미화원을 어찌 보는지 몰러두, 이게 나름 전문직이유. (‘49년생 김지영’과의 인터뷰, 2019년 4월 9일)

· 올 김장 배추, 포기에 얼마고? 절임 배추도 있나? 유기농이라고 에누리 없이 야박하게 굴면 내 가만 안 있는데이. ‘산골 적폐’라고 네이바에 고마 확 띄운데이. (메밀가루로 좀비를 퇴치하는 법, 2017년 10월 24일)

· 워매, 나는 해줄 말이 없당께 뭔 인터뷰를 하자고 사람을 들볶고 그라요. 또 취재를 헐라믄 전무가 아니라 사장을 찾아야제. 번지수도 잘못 찾음시롱 무신 기자를 한다고 뛰댕기요. (무교동 횟집의 ‘비밀兵器’를 아십니까, 2015년 4월 2일)

· 우리 집에 오고 싶우꽈? 목소리도 호탕한 게 북극서도 냉장고 팔 아주망인디 뭔 근심이 있수과? 시장통에 있으니 기대는 맙서. 바다도 안 보이고 방은 호꼴락 콧구멍만허우다. (서귀포 ‘애순이네 민박’에 놀러옵서예, 2012년 3월 19일)

그는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문구의 <관촌수필> 등 사투리가 들어간 소설을 좋아한다. 사투리가 소중한 문화적 자산이라고 생각하기에 잊어버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김 기자는 후배들에게 늘 ‘문학적 감수성’을 강조한다. 기사를 시나 소설처럼 쓰라는 게 아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디테일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지금도 늘 시집이나 단편소설을 가방 속에 넣어 다니는 이유다.

30년 차 기자이지만 글쓰기는 여전히 두렵고 어렵다. 글 한 편을 완성하기까지 수십 번을 다시 보고 수정한다. 늘 불안에 시달리면서도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글쟁이의 다음 행보가 궁금해졌다.

“(문화)부장에서 물러나면 배낭 하나 메고 현장을 누비는 사회부 기자가 되고 싶어요.”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이다.

코로나19가 확산하던 3월 즈음, 편집국장이 김 기자를 불렀다. 대구에 다녀오라고 했다. 김 기자만의 문체로 대구 시민의 고충과 분노를 생생히 담아오라고 했다.

대구에 도착해서 서문시장과 동산병원을 찾았다. 애환과 울분의 목소리를 들었다. 서울로 돌아가기 직전에 들른 화장터에서 그는 코로나로 어머니를 보낸 아들과 함께 울며 했던 인터뷰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우얍니꺼, 봄은 오겠지예” 할머니는 팬지꽃을 심었다, 2020년 3월 7일)

“결국 현장이죠. 아무리 상상력이 뛰어나도 삶의 현장만큼 드라마틱한 건 없거든요. 나이 오십 먹은 아줌마가 사회부 기차처럼 현장 누비면서 취재하러 다니면 정말 재밌지 않겠어요? 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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