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사는 이경민 씨(36)의 모든 것이 3월 이후 멈췄다. 그는 미디어교육 강사. 학교가 문을 여는 3월은 원래 정신이 없다. 올해는 달랐다. 도시 전체가 멈췄다. 개학은 계속 연기됐다.

아무 일도 할 수 없자 무력감을 느꼈다. 이때 진지하게 고민했다. 과연 일하지 못하는 이유가 단지 바이러스 때문일지. 백신이 나온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을지.

서울에 사는 김건우 씨(31)도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고민을 했다. 그는 유튜브 채널 <거누삼촌TV>를 운영한다. 5명의 조카와 함께 하는 모습을 콘텐츠로 제작한다. 조카들과 동물원, 비누공방, 전통시장을 방문할 생각이었다. 코로나19로 모두 물거품이 됐다.

콘텐츠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물론 조카를 만나기조차 어려워졌다. “1년, 아니 10년 뒤에도 과연 조카들이 삼촌과 함께 추억을 만들 수 있을지 확신이 들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지금 같은 상황이 정말 끝날까. 이경민 씨와 같은 질문이 생겼다.

그렇게 두 사람은 환경을 생각하게 됐다. 이들은 코로나19로 자기 일을 하지 못하자 여러 자료를 섭렵했다. 인수공통감염병인 코로나19는 박쥐가 숙주다. 2002년 사스(SARS), 2015년 메르스(MERS)도 박쥐가 숙주였다. 바이러스가 돌아오는 주기는 점점 짧아졌다.

김 씨는 “우리 의식주는 동물, 전염병, 그리고 사람과 연결돼 있다”고 말한다. 지나친 개발로 야생동물은 살 곳을 잃었다. 늘어나는 야생동물 도축과 밀반입, 그리고 공장식 축산으로 가축이 동일 품종으로 개량되면서 바이러스 감염이 쉬워졌다. 환경 파괴가 바이러스에 취약한 사회를 만들었다.

이후 두 사람은 환경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미디어교육 강사인 이 씨는 다음 교육의 주제를 환경으로 정하고 블로그에 포스팅을 올렸다. 김 씨는 코로나19로 제작하지 못하는 영상 대신 환경 관련 콘텐츠를 올렸다.

▲ 유튜버 김건우 씨가 올린 ‘노 플라스틱’ 영상

김건우 씨는 환경 보호를 직접 실천했다. “이전부터 이건 아닌데 했던 점에 대한 의문이 코로나19로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김 씨는 자신이 실천한 일이 특별하지 않다고 힘주어 말했다. 실제로 유튜브 영상 속에서 그가 하는 실천은 평범하다.

그는 플라스틱 칫솔을 대나무 칫솔로 바꿨다. 플라스틱은 썩는데 500년 이상이 걸리다. 대나무는 분해가 쉽다. 김 씨는 “칫솔질은 우리가 죽기 전까지 해야 하는 행동”이라며 “이것만 안 해도 많은 양의 플라스틱을 줄일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한다. 이 쉬운 점을 왜 이제야 알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이경민 씨는 일회용 봉지와 플라스틱 컵을 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장바구니와 텀블러를 챙긴다. 또 플라스틱 통에 담긴 샴푸와 린스가 떨어지면 비누로 바꾼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늘어난 인터넷 배송상품과 배달음식을 보고 문제의식을 느꼈다. 그래서 배달을 시킬 때는 일회용품을 빼달라고 요청하거나 개인 용기를 챙겨 음식을 가지러 간다. “그렇게 해도 이미 랩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포장된 것을 보면 속이 상하기도 한다.”

전까지만 해도 김건우 씨는 패스트푸드가 주식이었다. 1주일에 최소 세 번 이상은 맥도날드에서 식사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끊었다. 육식 섭취를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서다. “나 같은 사람이 햄버거를 끊는다고 선언하면 주변 사람에게 더 큰 메시지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육식파였던 이경민 씨도 비건음식을 시도한다. 좋아하던 우유 대신 두유를 마시고 1주일에 적어도 한번은 채식하는, 불완전한 비건이 되려고 노력한다. 직장인 김주희 씨(26)도 비건 도시락을 회사에 가져간다. 최근에는 집에서 채소를 키운다.

▲ 이경민 씨(왼쪽)와 김채원 씨의 비건 음식

주변 시선은 곱지만은 않았다. 환경운동가 같다고 했다. 김건우 씨가 유튜브나 SNS에 올린 콘텐츠를 보고 나왔던 반응이다.

“내가 하는 행동과 도전을 환경운동가의 영역으로 국한하면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환경이 자신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코로나19로 모두가 불편하듯 환경문제 또한 우리 모두와 관련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김주희 씨는 전부터 환경에 관심이 있었다. 주변으로부터 예민하다는 말을 많이 들을 정도였다. 심지어 가장 가까운 엄마조차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달라졌다고 한다.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실감하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그는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기분 좋은 일을 겪었다. 따로 챙긴 용기에 케이크 포장을 부탁하자 직원이 환경 때문에 그러냐며 응원했다. 주변의 반응도 바뀌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손수건, 텀블러를 가족과 남자친구에게 사주는 등 적극적으로 동참을 권유한다.

이경민 씨는 “(주변에서) 모르기 때문에 하지 못하는 실천이 꽤 많다”고 말한다. 환경 보호를 실천하는 일상을 블로그에 기록하는 이유다. 환경 보호를 강요하기보다 노출 빈도를 늘리는 게 다른 사람의 생각과 생활방식을 바꾸는 데 효과적이라고 본다. 환경보호 전시인 셈이다.

김건우 씨는 자신의 콘텐츠를 접한 주변의 반응에 뿌듯함을 느낄 때가 많다. 친구가 그를 따라 대나무 칫솔을 사고, 때로는 모르는 이가 김 씨의 콘텐츠를 계기로 환경보호를 시작했다며 감사 메시지를 전한다.

얼마 전에는 지역방송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그가 유튜브에 올린, 플라스틱 음식을 먹는 영상이 나왔다. “혼자만 하면 마치 정신승리 같은 느낌인데, 어느 한 명이라도 나를 보고 (환경보호를) 한 번이라도 도전하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김 씨는 환경 보호에 미디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내 채널처럼 작은 곳도 누군가에게 고민거리와 변화를 준다. 거대 미디어는 말 한마디 전달하는 힘이 아주 크다고 생각한다.” 그는 배우 류준열의 ‘용기내 캠페인’을 보고 다회용 용기를 들고 전통시장을 찾았다.

특히 미디어가 환경 보호를 가르치기 보다 일상에 스며들게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에서 일회용 컵을 쓰는 장면의 노출을 최대한 줄이는 식이다. “(미디어를 통해) 자제하면 좋을 만한 행위에 대한 시대적 기준점이 달라졌으면 한다.”

김주희 씨는 중앙일보 기자들이 제작하는 팟캐스트 <듣똑라>의 애청자다. <듣똑라>의 ‘원헬스 프로젝트’ 방송을 듣고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비건 식단을 시도하게 됐다.

김채원 씨(21) 역시 같은 방송을 통해 주 3회 정도 채식을 하게 됐다. 장래희망이 셰프라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비건 메뉴를 개발하는 꿈을 품게 됐다.

이경민 씨는 환경보호를 실천하는데 재정적 부담을 느끼기도 한다. 그는 “비건, 친환경 제품은 공산품보다 가격이 비싸다”며 “(코로나19) 사회에서 환경에 대해 함께 고민해 시스템이 정비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건우 씨는 소비자 개개인이 환경에 관심을 가져야 기업과 국가가 움직인다고 믿는다. 그는 코로나19로 환경 보호에 관심을 갖게 됐지만, 때때로 코로나19로 인해 환경을 파괴하는 행동을 더 한다는 모순을 느끼기도 했다.

일회용 마스크가 대표적이다. 그는 “개인 노력 이상으로 국가와 기업에서 일회용품을 대체할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대체품이 없는 이유는 기술력이 없어서라기보다 우선순위에서 배제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LG전자가 개발한 전자식 마스크 출시를 기다리는 중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마스크가 생활화된 지금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다음은 방독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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