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cm의 훤칠한 키에 호리호리한 몸매와 긴 머리스타일이 마치 순정만화의 주인공 같다 . 외인구단의 '까치'를 연상시키는 눈매가 반항적으로 보인다. 올 초 한국으로 유학 온 재일교포 3세 우동일(24)씨는 몇 번을 갸웃거리다 "한국과 일본...다른 거 없어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짧게 딱딱 끊기는 그의 한국어 발음에는 부산 사투리 억양이 섞여있어서 의외다.


알고보면 터프한 경상도 사나이

사실 우동일씨는 태어나서 5살까지 어머니의 고향인 부산에 살았다고 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2세인 아버지가 사업차 한국을 드나들다 어머니를 만나 결혼하셨다. 그러나 그는 5살 이후 일본에서 20년 가까이 살면서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크게 의식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학교 다닐 적 친구들도 모두 일본인이다. 물론 학교에서는 우동일이 아닌 일본식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불리며 어울렸고 친한 친구들은 집에 한번 놀러오면 한국어를 쓰는 어머니를 보고 그가 한국인임을 알았다고 한다. "한국인이라는 걸 숨기고 싶지는 않았지만 친하지 않은 사람한테까지 내가 한국인이라고 밝힐 필요 없잖아요"라고 구지 한국 이름을 고집하지 않았던 이유를 말한다.

실제로 많은 재일교포 2,3세들이 한국 이름보다는 일본식 이름을 쓰고있다. 지금은 교포들의 경제적 지위가 향상되면서 사회적 지휘도 안정되고 있지만 이민 1세대들 만 해도 한국 이름을 그대로 쓰면서 일본에 정착할 때 각종 편견과 차별을 당했다고 한다. 이 때 일본식으로 고친 이름이 자손들에게까지 이어져 따로 한국이름이 있더라도 편의상 일본식 이름을 계속 쓰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한국이름을 다시 찾아주는 민족 학급이 있는 학교도 있지만 그 수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고 한다.

대를 이어 건넌 현해탄의 꿈

우동일씨의 할아버지도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일본식으로 성과 이름을 바꿨다. 일본식 성에서 따온 회사 이름으로도 이제는 제법 알려졌기 때문에 다시 한국 이름으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우동일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20살 이후 한국 이름만을 고집하고 있다. 그런데 막상 갖가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한국 이름으로 바꾼 이유가 단지 더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란다. "일본 이름보다 우동일이 더 좋아요" 하지만 그가 일본이름을 끝까지 가르쳐 주지 않는 이유 역시 확실했다. "앞으로도 안 쓸거니까" "필요 없으니까" "내 마음이니까" 

우동일씨는 일본에서 전공했던 건축보다는 영화 감독이나 제작자에 관심이 있다. 학교를 나와서 도쿄에서 일을 하며 돈을 모으다가 올 해 1월 한국에 왔다. "일본에서도 공부할 수 있었지만 한국말도 배우고 한국생활도 해보고 싶었어요" 그는 연세어학당에서 한국말을 배우고 모델센터에서 연기 공부를 하고 있다. 21세기 영화사에 오디션을 보고 "너에게 나를 보낸다2"의 주인공 동생 역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그 인연으로 영화사 사무실에 다니며 시나리도 공부하고 있다. 그렇게 바쁘게 하루하루 보내다가 요즘엔 영화의 진행이 늦어지면서 조금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아직 젊으니까 배우를 하면서 영화 일을 직접 배운다는 생각이다. 30살이 넘으면 감독으로 본격적인 데뷔도 하고싶다. 

한국인의 힘

"나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어낼 수 있는 힘이 또래의 일본 친구들보다 더 많다고 생각해요." 

우동일씨는 자신이 갖고 있는 한국적인 면에 대한 일종의 프라이드를 갖고 있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물으니 그저 웃을 뿐이었지만 바로 다음순간 "그런 프라이드가 있기 때문에 일도 공부도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할 때 그의 표정은 어느 때 보다 진지했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과 일본

우동일씨는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들 몇 명과 함께 금발의 펑크 머리를 했다가 혼자만 집에서 쫓겨날 뻔했던 기억이 있다. 그의 집안은 다른 일본의 가정보다 간섭이 심한 편이었다.  또래보다 보수적인 자신의 성향도 알게 모르게 한국인 부모님에게서 받은 영향인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 와서 생활해보니 요즘에 한국 젊은이들의 생활은 일본이랑 거의 똑같다았고 한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를 수는 있지만 꼭 한국 일본의 차이만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일본과 다른 한국의 장점으로 그는 사람들 간의 끈끈한 정을 꼽았다. 한국 사람들은 만나서 이야기하고 친해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 친형제가 아닌데도 '언니','오빠'하며 친근하게 지내는 것도 일본에는 없다. 여자친구를 만날 때도 친구들을 불러 다같이 어울리는 것도 그렇다. 이어서 그는 단점으로 한국이 일본보다 교통사고가 많다는 점을 지적했다. 친구 차를 몰고 직접 운전을 한 적이 있는데 한국인들이 운전매너가 부족하다는 걸 도로에서 더 크게 느꼈다고 한다. 언젠가 한국 여행을 온 일본 사람과의 대화에서 서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가지가 "연고전" 응원제과 신촌과 일산을 30분에 주파하는 "총알버스"였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대답이었다.  

"일본 사람들이 참 착해요"

착하고 순진한 국민일수록 야심가에게 이용당하기 쉽다고 했던가? 일본 제국주의가 남긴 상흔을 아직도 완치하지 못한 한국을 향해 줄기차게 망언을 일삼는 일본이지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은 개미 한 마리 못 죽일 정도로 착하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화가 내색을 안하는 일본 사람을 우동일씨는 부정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것도 예의를 지키기 위해서이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맘에 안 드는 점"이라고 말한다.

우동일씨는 "물론 결혼은 한국 사람이든 일본 사람이든 큰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할 것"이라고 한다. 사는 곳도 하고싶은 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오케이다. 단, 그는 결혼 후에 자신도 한국적인 관습, 제사 등을 이어갈 것이기 때문에 한국여자랑 결혼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교포 4세가 될 아기를 아기에게도 한국과 한국인이라는 아이덴티티는 꼭 심어주고 싶다. 

"내가 어디서 살지는 모르지만 내 뿌리가 있잖아요. 내 할아버지와 또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면 안되니까. 그렇게 해서 저도 프라이드를 가질 수 있었으니까요."

"2000년, 올 해 부터는 한국이랑 일본이 같이 영화를 찍는 일도 많을 거예요."

요즘 한일 간의 사이가 눈에 띠게 가까워지고 있다. 예전에 금지되었던 영화나 음악 등 대중문화의 교류도 더 활발해 질 것이다. "전 일본도 잘 알고 한국도 배우고 있으니까 양쪽을 함께 아우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한국에 오기 전에는 한국에서 안 살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러운 관심만 있었을 뿐 한국을 몰랐던 재일교포 3세 우동일씨. 축구 한일전에서 붉은 악마와 함께 한국을 응원하다가도 일본선수 "나카타"가 나오면 열광하는 그에게 한국은 단순히 이용가치가 있는 기회의 땅이 아니다. 자신의 뿌리와 프라이드의 근원지 한국, 그리고 그가 자라온 일본. 우동일씨는 가깝지만 진정한 만남을 갖기 어려운 한일 양국 사이에 오작교를 놓아주는 까치가 되고 싶은 것 같았다. 

 김재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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