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교수 최선열

지난 8월 9일에는 우리 나라의 버려진 아이들과 장애인들에게 사랑받고 의지할 가정을 찾아 주는 일로 큰사랑을 베풀어 왔던 홀트여사의 장례식이 있었고 15일에는 역사적인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다. 우연히도 일주일 간격을 두고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 이외에 홀트여사의 장례식과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직접적으로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 두 사건이 비극적인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홀트가족은 1955년부터 불쌍한 한국 전쟁 고아들이 외국에서나마 부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입양활동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초기 입양 아들은 주로 전쟁고아들이었으나 점차 가정의 붕괴로 버려진 아이들, 미혼모가 키울 수 없는 아이들과 부모까지도 포기한 중증장애아들이 전쟁고아들을 대체했다. 이들의 수가 너무 많아 결국 세계 최대의 "고아 수출국"이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너무나도 부끄럽게 한다.

홀트여사의 장례식이 우리에게 핏줄을 초월한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 것과 대조적으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핏줄로 연결된 가족의 의미를 새삼 일깨워주었다. 아쉬웠던 것은 남북이산가족 상봉의 감동이 너무 강하다보니 홀트여사의 장례식을 통해 홀트가족이 구현해왔던 핏줄을 초월한 가족의 가치가 사회적으로 더 크게 확산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비록 상봉가족의 수는 적었지만 8.15 이산가족 상봉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극성을 떨었던 우리 언론을 통해 그 감동의 여파가 크게 확대되었다. 우리 모두가 분단의 비극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었으며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서 분단과 통일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게 하였다.

특히 텔레비전을 통해 비추어진 이산가족 상봉은 지금까지 우리가 본 그 어떤 멜로드라마보다도 더 진한 흥미와 감동을 주었다. 서울에 온 북한 방문단 중에는 사실 이념에 빠져 자진 월북한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며, 그런 월북자 가족들은 지난 세월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게 살아왔을 것이다. 그런 한의 눈물과 그리움의 눈물, 그리고 화해와 용서의눈물이 보는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눈시울을 적시게 하였다. 세익스 피어조차도 이런 비극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번 방문단의 일원인 한 북한 작가의 절절한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공기처럼 가족은 결핍되어야만 그 고마움과 가치를 알게 되는 것 같다. 같은 도시에, 같은 지붕아래에 살면서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하찮은 일로 서로 섭섭해하기도 하고 남에게는 하기 힘든 상처를 주기도 한다. 스스로 선택하여 이산 가족이 되어버린, 남보다도 못한 가족이 요즘 얼마나 많은가.

부모에게 사소한 꾸지람을 듣기만 해도 가출하여 가족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고 싶은 유혹에 빠져있는 청소년들은 70대 노인이 90대 어머니의 품에 안겨 마냥 행복해하는 모습을 어떻게 보았을까. 자식을 버리고 가출하는 것으로 현실의 고통을 쉽게 도피하려는 무책임한 젊은 어머니들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자식을 기다려온 노모들의 한없는 자식사랑을 어떻게 보았을까. 소위 N세대에 속하는 청소년들이 상봉가족들이 보여준 부모와 자식, 형제간의 사랑에 진한 감동을 받았다고 실토하는 것을 텔레비전 뉴스에서 보면서 나는 이번 상봉의 의미가 통일과 같은 거창한 주제보다는 가족이라는 원초적인 주제에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누군가 이번 상봉을 "눈물의 잔치"라고 표현했는데 이런 긍정적인 측면이 있었기에 엄청나게 돈이든 잔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치를 구태여 평가절하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런 기이한 만남이 다른 나라에서 벌어졌다면(결코 있을 수도 없겠지만) 어떠 했을까 생각해 보면 어느 나라에서건 감정의 농도가 우리만큼 진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산가족 상봉은 내 핏줄, 내 새끼, 내 가족 하면서 유난히도 핏줄에 애착을 갖는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벌릴 수 있는 특별한 "눈물의 잔치' 이었다. 강한 피의 정서가 그들의 눈물에, 표정에, 포옹에, 선물 보따리에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이런 이산가족 상봉을 보고 이념과 체제의 장벽을 무너뜨린 것이 피의 힘이기 때문에 "피는 숭고하다" 는 등 피의 예찬론과 피타령을 늘어놓는 사람들이 적지않았던 것은 문제였다. 만약 홀트여사가 조금만 더 오래 생존하여 이런 요란스러운 피타령을 들었다면 어떻게 생각했을까. 바로 그 피의 예찬때문에 우리는 가정이 필요한 아이들을 입양하지 못하는 것이며 홀트 여사는 우리 사회의 그 공백을 메워왔던 것이다. 헤어진 혈육은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면서 버려진 아이들은 거두지 못하고 외국인들이 돌보도록 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다.

전쟁으로 인한 이산가족은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점차 없어지겠지만 버려진 아이들의 이산의 비극은 계속 될 것이다. 언제까지 피타령을 하면서 이런 현실을 외면할 것인가. 이산가족 상봉이 호사스러운 눈물의 잔치로 끝나지 않게 하려면, 피의 예찬론에 벗어난 진정한 가족의 의미와 사랑에 대한 좀 더 깊은 사회적 성찰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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