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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도, 제2의 인생을 산다
오주비 기자 | 승인 2020.08.03 11:40

 

김순아 씨(65)는 오전 6시가 되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8남매 집안의 맏딸.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간 어머니를 대신해 형제의 아침밥과 등교 준비를 도맡았던 시절의 습관이다.

이제는 자신의 등교를 준비하기 위해 일어난다. 오전 9시 30분에 시작하는 1교시 수업에 늦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버스에 오른 그는 자리에 앉아서 손바닥에 무언가 열심히 썼다 지우길 반복했다. 한글 받침 ‘ㅅ’과 ‘ㅆ’이다. 몇 번을 되풀이해도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한글은 진짜 어려워요. 우리 아들이 지금 대학생도 받아 쓰라고 하면 받침이 어려워서 다 틀린다고 그래요.”

학교까지는 버스 2대를 갈아타고 40분에서 1시간을 가야 한다. 한글을 배우는 즐거움에 힘든지 모른다. 서울 송파구의 신명주부학교 초등반에서 한글을 공부한 지 벌써 3년이 지났다.

역시 60대로 같은 학교 고등반에 다니는 김경자 씨(69)는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버스를 타지 않고 차를 몰아 등교한다. 잠실의 집에서 20분을 달려 지하철 5호선 거여역을 지났다.

앞차에 적힌 ‘baby in a car’이라는 영어가 눈에 들어왔다. “아기가 차에 타고 있다는 말이구나.” 영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낀다. 그는 영어를 배우고 나서부터 길을 걷거나 운전을 할 때면 영어 단어를 찾아 읽는 취미가 생겼다.

김순아, 김경자 씨는 학령기에 공부하지 못했다가 나중에 학교를 찾은 만학도다. 교육부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문해교육기관에서 6만 3000여 명이 공부했다. 10년 전보다 3만 8000명이 늘었다.

대부분 60대 이상의 여성이다. 신명주부학교 이동철 교장은 “남자 형제와 동생들 학비를 벌기 위해 일찍부터 일터로 나가야 했던 많은 여성이 못다한 공부를 하러 학교에 온다”고 말했다.

▲ 문해교육기관 학습자

김순아 씨는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친구들이 다 학교에 있으니까 나도 가고 싶다고 그렇게 울었는데도 안 보내줬어.”

입학 통지서가 나왔지만 아버지는 딸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여자가 공부해봐야 시집가서 친정에 편지나 쓰고, 다른데는 쓸데없다는 이유였다. 한글을 쓰고 읽을 수 없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는 “눈 뜨고 못 보는 봉사였다. 이름 석 자만 간신히 그리고 살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김순아 씨는 한글을 공부하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아직 책 한 권을 완벽하게 읽지는 못하지만 간판에 적힌 글자와 버스 번호는 읽는다.

“전에는 길을 다녀도 (글자를 모르니까)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하나?’ 이런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이제는 집 가는 길에 보이는 간판 글자도 읽을 수 있어 기쁘죠. 내가 배워서 저런 것도 안다는 생각이 드니까 부자가 안 부러워요.” 김순아 씨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 김순아 씨의 한글 공책

강동야학 중등반에서 공부하는 차순덕 씨(72)도 초등반에서 한글을 처음 배웠다. “딸하고 저녁에 카톡을 할 수 있어 너무 좋다. 한글을 모를 때는 혼자서 글자를 쓸 수 없어 많이 위축됐는데 지금은 어딜 가나 자신감이 넘친다.”

6월 26일 신명주부학교에서 만난 김경자 씨도 공부를 통해 자신감을 되찾았다. 남은 인생을 더 재밌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공부는 나이 먹은 사람한테 더 좋다. 늙어 가는 동안 무료하게 아무것도 안 하는 건 슬픈 일이지.”

김경자 씨의 손자는 국제학교에 다닌다. 영어로 수업을 듣는 손자가 하루는 “할머니는 왜 영어를 몰라? 학교에 안 다녔어?”라고 물었다. 어떻게 답을 할지 당황하다가 너무 오래돼서 잊어버렸다고 말했다.

그때 자존심이 상했다. “마음이 좋지 않더라고요. 속으로 ‘너 할머니집 오지마’ 이렇게 하고 싶었는데 하하하 어떻게 그래요.”

이제는 다르다. 영어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실력이 됐다. 손자가 하는 말을 완벽하게 알지는 못해도 무슨 말인지 귀에 들리고 말할 수 있다.

덕분에 자존감이 높아졌다. “a, b 이렇게 알파벳만 쓰던 때에서 이제는 영어 단어를 쓸 수 있게 됐다는 게 얼마나 뿌듯하고 좋은지 젊은 사람들은 그 기분을 모를 거야”  

▲ 김경자 씨의 과학 교과서. 노란색 형광펜과 빨간색 볼펜으로 필기했다.

김경자 씨에게 공부는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표현이 어색할 수 있지만 사랑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공부를 생각하면 마음이 참 설레죠. 그래서 나는 공부와 연애하는 기분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무슨 옷을 입고 갈지 고민하는 일과 공부한다는 목적이 있는 삶. 학교 가는 아침 김경자 씨를 설레게 만든다.

공부의 재미를 알게 된 만학도는 대학까지 도전한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고등교육을 이수한 인구 중 55~64세의 비율이 2005년 10%에서 2015년 18%로 늘었다. 고등교육은 대학교(전문대, 교육대, 4년제)와 대학원 교육을 뜻한다.

배광현 씨(50)는 올해 학점은행제인 동국대 전산원에 입학했다. 그는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가방에서 공책 5권을 꺼냈다. 기자에게 제일 먼저 보여준 공책에 여러 문장이 보였다.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는 선언이다',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자세 그것이 가장 소중한 원칙이었다', '오만함을 버리고 겸손하고 뜨겁게 불혹의 이순신과 지천명의 이순신처럼 스승을 찾고 만난다면 어제의 실패와 잘못은 작은 상처 자국에 불과할 뿐이다….'

5년 전에 읽은 책 <흔들리는 마흔, 이순신을 만나다>에서 감동을 받은 부분을 따로 정리했다. 글씨는 반듯했다. 이 공책은 그에게 가장 소중한 물건 중 하나다.

배 씨는 “뒷통수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죠. 너무 감동이었죠”라고 말했다. 마흔이 넘어 통제사가 된 이순신 장군을 보면서 고정관념이 깨졌다.

중학교만 졸업한 그는 이력서를 넣어도 계속 떨어지는 20대 시절을 보내면서 열등감을 가졌다. 그랬던 배 씨에게 이순신 장군은 공부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 배광현 씨의 필사 노트와 검정고시 성적표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시작할지 모른 채로 3년이 흘렀다. 2018년 봄, 서대문구청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누군가 핸드폰 카메라로 광고판을 찍고 있었다. 무슨 광고길래 사진까지 찍는지 궁금했다. 대신야학 검정고시 광고였다.

전화할까 생각했지만 동시에 두려움이 밀려왔다. 이제 공부해야 소용없다는 친구들 반응이 걱정됐고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다.

“나도 할 수 있을까?”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계속 고민하다가 용기를 냈다. “그래 일단 전화를 해보자.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미리 알 수 있겠어.”

당시 배 씨와 통화했던 대신야학 장지훈 교사는 “공부는 하고 싶은데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하는 것 같아 보였다”고 말했다. 야학은 늦은 나이에도 공부하고 싶은 사람을 위해 있는 곳이라며 장 교사가 설득했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가 지금까지 이어졌다. 나머지 공책 4권에는 이번에 입학한 대학교 1학기 수업의 내용이 가득했다. 배 씨는 “교수님들의 강의를 듣는 게 너무 좋아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고 했다. 같이 수업을 듣는 젊은 친구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배 씨의 첫 대학 수업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수업을 했는데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았다. 홈페이지에서 과제 양식을 내려 받기, 시험지를 메일로 제출하기. “정말 못하겠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죠. PPT를 만들어서 발표도 하라고 하고. 근데 잘 해냈어요. 멋지게.”

▲ 배광현 씨의 대학 노트

매일 새로운 내용을 배우는 즐거움은 삶의 활력소가 됐다. 배 씨는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게 재미있고 행복한 덕분에 부정적이고 불만 많던 내가 바른 생활 사나이가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배움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게 있다고 덧붙였다.

“공부를 늦게 시작한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돼요. 틀렸다고 창피해하지 않아도 돼요 몰라서 배우는데 틀리면 어떤가요. 알지 못했던 걸 새로 알게 됐을 때 느끼는 희열과 기쁨은 엄청나요.”

몇 살까지 공부하고 싶은지를 기자가 묻자 배 씨는 죽는 날까지 배우는 자세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저녁 7시 30분, 신촌의 어느 건물 10층에서 대신야학 입학식이 있었다. 7월 3일이었다. 코로나로 4개월이나 늦게 열렸지만 만학도와 문해교육자가 자리를 채웠다.

“시험 한 번 놓쳤다고 실망할 필요 없어요. 50년 동안 못했던 건데 1년, 6개월 늦으면 어때요. 하면 됩니다.” 대신야학 허정분 졸업생이 말했다. 그는 명지대 부동산학과 2학년이다.

야학을 찾은 20여 명이 졸업한 선배 이야기를 경청하며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언젠가 자신도 저 자리에 서서 말할 날을 상상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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