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글감의 보고(寶庫)인 이유는 일화나 사례가 많아서다. 인간의 생각, 권력자의 언행, 공동체의 운명은 자주 반복된다. 동양과 비슷한 일화를 서양에서, 지금과 비슷한 사례를 옛날에서 찾을 수 있다.

논술을 잘 쓰고 싶으면 이런 이유로 역사를 공부하라고 자주 말한다. 다른 지원자와 차별화하려면 요즘 나오는 뉴스를 요약하는 수준을 넘어서라며 역사에서 글감을 가져오도록 강조한다.

여기서 말하는 역사는 삼국시대, 요순 시절, 고대 그리스 로마만 뜻하지는 않는다. 아득한 옛날이 아니어도 좋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의 일화. 레이건-케네디-부시-오바마 정부에서의 사례. 모두 지난 일이고 역사의 일부가 됐다. 한국과 미국의 최근 현안을 논하면서 이전 정부, 또는 그 시절과 비교하고 참고하면 된다.

한겨레신문 박찬수 선임논설위원의 칼럼을 분석하자. 제목은 <2009년 최열, 2020년 윤미향>이다. 정의기억연대의 윤미향 전 이사장 논란을 다루면서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과 비교하는 내용임을 알 수 있다. 첫 단락은 다음과 같다.

<11년 전인 2009년 4월, 최열 환경재단 대표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환경운동연합 후원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검찰이 최 대표를 불구속 기소한 직후였다. 빼돌린 돈을 딸의 유학 비용으로 썼다는 언론 보도까지 나왔다. 그에게 검찰 발표가 사실인지 물었다. 답변은 이랬다. “초기 환경운동연합 건물을 조성하면서 자금이 모자라 내 돈을 환경련에 빌려줬다가 나중에 기부금에서 돌려받았다. 시민단체는 수시로 돈이 부족하니 그렇게 하는 게 관행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1990년대 시민운동을 시작할 때엔, 운동을 잘하는 게 중요했지 돈 문제는 소홀히 했다. 그건 우리가 잘못한 거다. 앞으로 고쳐야 한다. 다만, 지금의 (회계) 잣대로 열악한 시절의 시민운동을 평가하진 말아달라.”>

박 위원은 국내 환경운동에 최열 이사장이 쏟은 노력을 높게 평가하고 횡령 혐의는 무죄, 알선 수재 혐의는 유죄라는 법원 판결을 소개하면서 시민운동의 현실이 반복된다고 설명한다. 무엇이, 어떻게 반복되는가.

<윤미향 전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서, 그 시절 마주했던 당혹스러운 표정의 최열 대표를 떠올린다. 열악한 시민운동 환경과 활동가들의 헌신, 그 과정에서 지나쳐버리는 회계 규정, 시민운동을 싸잡아 매도하는 보수 언론의 정치 공세와 ‘그래도 대의를 훼손하진 말라’는 항변까지…, 우리 시민운동이 처한 힘겨운 현실이 고스란히 반복되고 있다.>

지금까지 흐름은 윤미향 전 이사장을 감싸는듯한 느낌이지만 후반부에서는 시민단체를 비판한다.

<그때 <한겨레>에 실린 최열 대표 인터뷰 제목은 “시민단체, 운동만 앞세워 돈 문제 소홀했다”였다. 최 대표가 탄식했던 이 부분이, 2020년에도 해소되지 않고 되풀이되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특히 최열 대표가 울린 경종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못한 시민단체는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정의기억연대의 11일 기자회견을 보면서, 지난 10년간 우리 사회는 놀라운 변화를 했는데도 왜 시민단체는 헌신성에 걸맞은 투명성을 갖추지 못한 걸까 묻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안타깝다,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 있다고 했다. 비판의 내용은 무겁지만 비판의 방식은 따듯하다. 애정을 담은 비판이라고 생각한다.

도입부와 중반부가 최열 이사장을 향했다면 후반부는 윤미향 전 이사장을 겨눈다. 시대가 변했으니 누군가는 그 변화에 맞는 책임을 보이라고 말한다.

<더불어시민당이 윤 전 이사장을 비례대표로 뽑은 건 30년에 걸친 개인의 열정과 노력도 크지만, 정의기억연대로 대표되는 위안부 인권운동의 빛나는 업적을 평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대의에 비춰보면,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어떤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지켜야 할 자리일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무엇이 진정 책임있는 자세인지 고민할 때가 아닌가 싶다.>

박 위원은 지금의 시민단체를 논하려고 이전의 시민단체를 소개했다. 두 일화를 비교하며 공통점을 찾고, 이전의 사례를 참고하며 충고를 전했다.

논제를 받으면 지금 얘기를 잔뜩 늘어 놓는데 그치지 말자. 얼마 전에, 옛날에, 역사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분명히 있었다. 비교하고 참고하며 공통점과 차이점을 설명하고 자기주장을 담자. 글이 참신하고 설득력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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