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소음. 자재를 나르는 인부. 골목길을 가로막은 트럭. 주민이 버린 냉장고와 이불과 의자. 산책 명소였던 소금길 흔적은 빛바래고 찢긴 표지판뿐이었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은 지하철 2호선 이대역 뒤편의 달동네였다. 좁은 길 사이로 낡은 주택이 빼곡했다. 밤이면 걷기 무서웠지만 2012년부터 달라졌다. 서울시가 범죄예방디자인(CPTED)을 활용해 ‘소금길’로 부르며 정비하면서다.

해바라기와 능소화 등 꽃 이름을 붙인 길과 벽화가 입소문을 타며 관광객이 늘었다. 위치를 알리려고 1~69의 번호를 노란 안전 전봇대에 붙였다. 노란 대문의 ‘소금 지킴이집’도 설치했다. 범죄에 대한 주민의 걱정이 줄었다.

▲ 이불, 의자, 에어컨 실외기가 길에 방치됐다.

8년이 지나서 기자가 최근 갔더니 옛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코스를 안내하는 지도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됐다. 꽃길 6개를 색깔로 구분한 스티커는 다 떨어졌다. ‘옥잠화길’의 벽면을 채운 아이 얼굴의 벽화는 경고 현수막이 가렸다.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

골목길에는 쓰레기가 즐비했다. 철봉 주변에 보라색 플라스틱 바구니가 버려진 상태. 침대 매트리스에는 ‘투기자 신고하시면 기념품을 드립니다. XXX를 함께 잡읍시다’라는 글이 매직으로 쓰였다. 무단투기에 주민이 화나서 쓴 문구.

바닥의 노란색 점선은 지워져서 알아보기 힘들었다. 어린이가 땅따먹기 놀이를 할 수 있는 ‘바닥 놀이터’도 절반이 잘렸다. 슬레이트 벽에 가로막히면서다.

▲ 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현수막이 벽화를 가렸다.

이날 만난 주민 5명은 소금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정순기 씨(88)는 17살 결혼하고 줄곧 이 동네에 살았다. 그는 “뭐라고, 소금길? 나는 모르겠는데”라고 반문했다. 의자 뒤편에 ‘꽃이 피어나는 소금길’이라는 안내 표지판이 있었지만 모르는 눈치였다.

이화여대 학생인 김 모 씨는 편하게 통학하려고 올해 염리동으로 이사 왔다. 그 역시 “그런 거 들어본 적 없다”고 했다. 밤에는 방치된 골목길로 다니기 무섭지 않냐고 물었더니 “불안하긴 한데 집에 가려면 어쩔 수 없다”고 대답했다.

▲ 길에 버려진 매트리스. 무단투기에 화난 주민의 글이 보인다.

천피터 씨는 2014년부터 소금길 근처 아현동에서 3년 간 소셜 키친 ‘언뜻 가게’를 운영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식사하는 공간이었다. 천 씨는 “그때는 그런 게 새로웠으니 많이 이슈가 됐다”고 회상했다. 독특한 젊은 상권을 취재하려는 언론사도 가게를 찾았다.
 
하지만 천 씨는 2016년 8월 아현동을 떠났다. 가게가 있던 아현2구역에서는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염리동, 아현동, 공덕동 일대를 재건축 또는 재개발하는 ‘아현뉴타운’ 사업의 하나. 철거와 공사로 소금길 B 코스(0.6㎞)는 모두, A 코스(1.1㎞)는 일부가 사라졌다. 

서울시 공공디자인사업팀의 이선미 씨는 “소금길 사업은 오래전에 했었고 현재는 진행하지 않는다”며 “관리를 한다면 해당 구청에서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염리동 행정민원팀 박선영 주무관은 “재개발이 진행되기 때문에 최근에 따로 하는 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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