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 주변. 주말을 맞아 놀러 나온 시민이 가득했다. 후덥지근한 날씨에 부쩍 짧아진 옷차림이 눈에 띄었다. 코로나19 재확산 위기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이 길거리로 나왔다. 5월 16일 낮 12시였다.

같은 시각, 지하는 달랐다. 점포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평소에는 발길이 몰리지만 코로나19로 지하철 이용이 줄면서 지나는 사람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른바 ‘지하 공동화’ 현상이다.

사정이 이러니 지하상가의 많은 점포가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점차 풀렸지만 감염 우려에 지하철 이용이 줄면서다. 거기에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마저 끊겨 지하는 그야말로 ‘죽은 길’이 됐다. 

▲ 을지로4가역 지하보도

1986년부터 을지로입구역 지하상가에서 영업 중인 허미숙 씨(56)는 “안 그래도 없던 손님이 코로나19로 아예 끊겼다”고 말했다. 주변 직장인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더 심해졌다고 했다.

개찰구 바로 옆도 비슷했다. 을지로입구역에서 옷가게를 하는 이정문 씨(29)는 직원 3명을 해고했다. 인건비는 고사하고 임대료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탓이다. 이 씨는 “매출이 10분의 1로 줄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공공상가 임대료를 2월부터 7월까지 6개월 간 50% 낮췄다. 경비와 청소부 인건비를 포함한 공용 관리비도 전액 감면했다.

하지만 상인들은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을지로4가역 지하상가에서 ‘해태스넥’을 운영 중인 김모 씨(72)는 “임대료가 인하돼도 수입이 없으니 먹고 살기는 여전히 어렵다”고 했다. 하루 18시간을 영업해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고 했다.

명동역 지하상가에서 옷가게를 하는 이사라 씨(60)는 인하된 임대료조차 내기 어려울 정도로 수입이 없다고 했다. “다른 상가도 기약 없이 버티지만 오래 버티지 못할 거 같다.”

▲ 을지로입구역 지하보도를 노숙인이 차지했다.

시청역의 ‘시티스타몰’에서 영업하는 박혜자 씨(69)는 “임대료를 인하하겠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아직까진 말뿐이다”고 말했다.

문제는 또 있다. 서울시가 지난 20년간 허용됐던 임차권 양수·양도를 2018년부터 전면금지하면서 상인은 권리금을 받고 임차권을 팔 수 없게 됐다. 장사가 안돼도 임대계약을 중도 해지하면 위약금을 물어야 하므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버텨야 한다.

시의회는 조례 심사보고서에서 ‘권리금 금지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지금까지 뚜렷한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정부 국책연구기관인 국토연구원은 ‘코로나19 시대 도시 사회·공간 변화와 정책과제’ 보고서를 통해 상가와 대중교통 이용이 위축된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서울시는 2022년까지 시청역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을 잇는 2.5㎞ 길이의 지하도시를 만들겠다고 했다. 1000억 원대의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지하 공간을 전면개조한다고 발표했지만 올초 예비타당성조사 문제로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이마저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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