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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특집 (56) 해외는 지금 ③ 스웨덴
이사민 기자 | 승인 2020.06.14 17:36

 

에이드리언 뉘비트 씨는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 산다. 은행의 투자관리사. 회사에서 서류작업을 할 때는 방역 장갑을 꼭 착용한다. 주변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퍼뜨리지 않기 위해서다.

그는 코로나19에 대해 “두렵진 않지만 굉장히 유념한다”고 말했다. 자신은 젊고 건강하기에 바이러스가 치명적이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함께 사는 여자친구는 천식을 앓는 중이고 어머니는 당뇨병 환자다. 주변에 고위험군이 많아서 상황을 엄중하게 받아 들인다.

하지만 상당수 시민은 바이러스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시민은 도심을 자유롭게 돌아다닌다. 식당 주점 상점은 모두 문을 열었다.

뉘비트 씨는 자신처럼 행동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그는 회사 동료와 함께하는 회식에 유일하게 참석하지 않는다. 코로나19 때문이다. 동료들은 그가 과민반응한다고 말한다. 주변을 봐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외출하는 시민은 10명 중 1명에 불과하다.

▲ 뉘비트 씨는 장갑을 끼고 일한다. (출처=에이드리언 뉘비트 씨)

구스타브 에릭슨 씨(25)는 뉘비트 씨의 동료와 비슷하게 생각한다. “몇 년 전에는 신종플루가 돌았고 100년 전에도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다. 걱정하는 게 별로 도움 되지 않는다.” 에릭슨 씨는 코로나19가 계절성 독감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에릭슨 씨의 일상은 코로나19를 피하지 못했다. 웹프로그래머인 그는 재택근무를 한다. 1주에 2, 3일 일하므로 기존 업무의 40% 수준을 할당받는다. 다행히 정부 보조금을 지원받아 월급은 비슷하다.

얼마 전 그는 벚꽃 명소인 쿵스트라고든(Kungsträdgården)을 찾았다. 지난해에 비하면 인파가 절반에 그쳤다. 그가 보낸 사진에는 많은 시민이 마스크를 끼지 않고 삼삼오오 모여 벚꽃을 구경했다.

▲ 벚꽃 명소 ‘쿵스트라고든’(출처=구스타브 에릭슨 씨)

스웨덴 시민이 자유로운 일상을 즐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다른 유럽 국가와 달리 봉쇄조치를 하지 않는 등 방역정책이 느슨해서다.

도시 간 이동금지도 없다. 500명 이상의 모임을 금지하다가 3월 말부터는 50명 이상으로 기준을 강화한 정도다.

이에 대해 뉘비트 씨는 “어차피 대중교통, 직장, 학교에서는 지키지 못하는 규제”라며 회의적이었다. 비슷한 시기에 이웃 국가인 노르웨이는 5명 이상의 모임을 금지해 엄격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했다.

스웨덴의 대학과 고등학교는 닫았지만 16세 이하가 다니는 유치원과 초등학교는 열었다. 가정 대부분이 맞벌이인 만큼 돌봄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아동의 코로나19 발병률이 성인만큼 높지 않다는 이유로 스웨덴에서는 돌봄 공백을 더 심각한 문제로 여긴다.

결과는 어떨까. 스웨덴 확진자는 6월 2일 기준으로 3만 7814명, 사망자는 4403명이다. 인구 대비 사망률이 높다. 스웨덴 인구는 한국의 5분의 1 수준(1000만 명)이다.

미국 존스홉킨스대가 5월 말에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스웨덴 인구 100만 명당 사망자는 431명이다. 노르웨이는 44명, 핀란드는 58명이다.

반응은 엇갈린다. 에릭슨 씨는 “다른 나라에 비해 스웨덴의 수치가 별로 좋지 않다”면서도 “시간을 좀 더 두고 봐야 무엇이 옳고, 그른 정책인지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정부 정책을 지지했다.

뉘비트 씨의 생각은 다르다. “스웨덴은 한국과 문화권도, 지역도 달라 상황을 비교하기는 적절치 않다”면서도 “비슷한 문화권인 국가 간 결과가 다르다면 그중 하나는 분명 틀린 것”이라 말했다.

▲ 지난 봄의 스톡홀름 시내 (출처=RTNews)

코로나19 이후 스웨덴은 의료·보건 분야에서 인력 및 재원 부족을 겪었다. 뉘비트 씨는 “일부 의료진은 히팅건(공업용 열풍기)을 사용해 스스로 방역 장비를 만들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에릭슨 씨의 지인인 의사도 근무하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스웨덴이 위기를 겪은 경험이 적어 위기가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을 적게 보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그래도 시민들은 희망을 놓지 않는다.

바이러스가 퍼지자 스웨덴 정치인들은 옷에 달던 정당 표식을 떼고 국기 모양의 뱃지를 달았다. 에릭슨 씨는 이렇게 말했다. “1년 뒤면 조금은 나아져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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