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야마 사오리 씨(25)는 일본 도쿄의 신주쿠에 산다. 서울의 강남역과 비슷한 번화가. 그런 신주쿠 풍경이 완전히 변했다.

요네야마 씨는 “재택근무를 해서 외출은 2, 3일에 한 번씩만 한다. 집 근처 동네에 나가도 보행자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요네야마 씨는 집에만 있기가 갑갑해 신주쿠역 주변에서 드라이브를 했다. 사람으로 북적거리던 역 근처도 한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일본이 처음부터 코로나19에 긴장했던 것은 아니다. 2월 초 감염자 700여 명이 나온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 대해 묻자 요네야마 씨는 “그것은 사고”라고 일축했다. 일본 정부도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 발생한 확진자를 자국 확진자와 따로 분류한다.

그러나 3월 말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요네야마 씨는 “처음에 일본인은 코로나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도쿄) 올림픽이 연기되고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인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특히 일본의 국민 코미디언인 시무라 겐(사망 당시 70세)이 코로나19로 숨지자 열도는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멀쩡하게 텔레비전 쇼에 나오던 사람이 죽었다고 하니까 다들 믿지를 못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코로나19로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 신주쿠역 주변. 보행자가 거의 없고 차만 다닌다. (요네야마 씨 제공)

마에타 유리 씨(24)는 일본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적은 돗토리현 다이센에 산다. 그는 “지금까지 돗토리현에서는 확진자가 3명뿐이었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자신이 감염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일본에서도 마스크가 동났다. 요네야마 씨는 “일본은 마스크가 너무 부족하다”고 토로했다. 자신의 어머니처럼 마스크를 스스로 만들어 쓰는 시민도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는 모든 가구에 마스크를 2매씩 무상으로 배포했다. 이에 대한 생각을 요네야마 씨에게 묻자 “가난한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면서도 “막대한 세금을 들여 국민 전체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게 과연 최선일지는 의문”이라고 대답했다.

교도통신에 따르면 일본 정부의 마스크 배포 사업에는 466억 엔이 들었다고 한다. 한화로 5260억 원 정도다.

방역 최전선의 의료계도 극심한 마스크 부족을 겪는 중이다. 요네야마 씨는 자신을 포함한 많은 국민이 “부족한 마스크를 보다 시급한 곳에 먼저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스크를 나눠주는 이유는 차기 중의원 선거를 앞둔 선심성 정책 때문이 아닐까 의심했다.

마에타 씨는 마스크 배포 정책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정책”이라고 날을 세웠다. “1인당이 아니라 가구당 2장에 불과하다. 매일 출근해야 하는 데다 4인 가족과 함께 사는 내게 2장이 충분할 리가 없다.”

그는 기자에게 ‘아베노 마스크(일본어로 ‘아베의 마스크’라는 뜻)’가 너무 작다고 비판하는 일본 언론 사진을 보여줬다. 그래서 마에타 씨 역시 본인과 가족을 위해 천 마스크를 직접 제작했다. 출근할 때는 자신이 만든 마스크를 착용한다.

▲ 마에타 씨가 직접 만든 천 마스크 (마에타 씨 제공)

코로나19로 일본 민심이 정부에 점차 등을 돌린다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요네야마 씨는 올림픽 연기가 확정되기 전부터 일본 정부가 확진자 수를 감췄다고 의심한다.

“많은 이들이 아직도 정확히 몇 명이 감염됐는지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환자가 병원에 검진받고 싶다고 직접 찾아와도 병원이 거절한다.”

요네야마 씨는 총리에 대한 지지도가 바뀐 것 같다며 정부와 국민 간의 불통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아베 총리는 공식 석상에서 ‘외출하지 말라’고 하는데, (총리) 부인은 벚꽃놀이하러 다니고 여행을 간다”고 비판했다.

일본 마이니치(每日)신문이 4월 18일부터 19일까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아베 내각을 지지한다고 답한 이들은 41%, 지지하지 않는다고 답한 이들은 42%였다.

국민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악화를 가장 크게 체감했다. 요네야마 씨는 “올해 회사에서 올림픽 관련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했는데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다. 회사 수입은 물론, 성과급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고 답했다.

지역은행에서 일하는 마에타 씨는 업무상 매일 경제지표를 봐야 해서 (코로나발) 경제위기를 더욱 실감한다. 주식시장이 급격하게 내려앉을 때 바이러스가 얼마나 큰 위력을 가지는지 깨달은 이유다.

마에타 씨가 근무하는 은행에서는 바이러스 확산으로 타격을 받은 업체에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대출을 한다. 관광지인 돗토리현 역시 수입이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도쿄 소상공인의 상황도 비슷하다. 요네야마 씨는 “손님이 안 와서 식당 대부분이 문을 다 닫는다. 그런데 임대료는 똑같이 내고 월급을 줘야 해서 심각한 위기를 겪는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국민 1인당 10만 엔을 지급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중이다.

한국처럼 배달문화가 보편적이지는 않았지만 일본도 최근에는 배달음식을 시키는 시민이 늘었다고 한다. 요네야마 씨는 “음식 배달이 가능한 맥도날드와 한국 음식점 인기가 많아졌다”며 “특히 한국 음식점은 평소보다 배달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했다.

바뀌지 않는 문화도 있다. 대표적인 점이 일본 조직의 ‘결재 문화’다. 온라인 결재와 서명이 보편화된 한국과 달리 일본은 여전히 결재를 받으려면 서류를 전달해 직접 서명을 받거나 도장 찍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요네야마 씨는 “직장 상사는 재택근무를 하는 중에도 결재 때문에 회사에 계속 출근한다. 이 중에 누군가 감염이라도 된다면 최악”이라고 말했다.

한국 K-POP 그룹 ‘세븐틴’의 팬인 마에타 씨는 다음 달 예정된 콘서트 취소 통보를 받았다며 아쉬워했다. 하지만 상황이 심각한 만큼 적절한 조치라고 생각하면서 “3밀 정책(밀폐, 밀집, 밀접 금지)을 최대한 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요네야마 씨 역시 “곧 일본이 ‘황금연휴’를 맞이하는데 ‘사회적 거리두기’가 잘 지켜질지 모르겠다. 바이러스가 퍼지는 중에 지진이라도 날까 무섭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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