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뉴스통신진흥회가 주관한 제2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사업의 장려상 수상작입니다. <편집자 주>

작업복 세탁에 관한 사업주 책임은 법에 명시됐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제448조에 따르면 사업주는 노동자가 관리대상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작업을 하는 경우 세탁 및 건조를 위한 시설을 설치하고 필요한 용품을 마련해야 한다.

관리대상 유해물질은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등재된 173종의 화학물질을 뜻한다. 근로자에게 상당한 건강장해를 일으킬 우려가 있어 각별한 조치가 필요한 물질이다. 규칙 위반 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원청의 책임도 나온다. 소속 없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안전이 사각지대로 몰릴 것을 우려해서다. 산안법 제64조와 시행규칙 81조는 원청이 하청 노동자의 세탁시설을 설치해 산업재해를 예방할 의무를 규정했다. 이를 지키지 않은 사업장은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

문상흠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 노무사는 “규정이 있어도 처벌되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가 세탁시설에 대해서는 실태 점검을 하지 않아요. 사고 같이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이 있죠. 세탁시설도 사실 사고 예방에 관련된 부분인데도 불구하고요.”

고용노동부는 5년마다 작업환경실태조사를 한다.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노동자의 작업환경을 파악하는 가장 광범위한 조사다. 이때 세탁실을 비롯한 세면·목욕·휴게실 등 복지시설을 마련했는지 확인한다.

하지만 전국에 사업장이 워낙 많아서 전반적인 경향을 보는 데 그친다. 사업장별 위반 여부를 일일이 따지지 않는다. 조사비용이 60억 원 가량이라 자주 실시하기도 어렵다.

관리‧감독을 강화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법과 현장의 괴리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산업보건과 관계자는 “영세사업장에는 규정을 강제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며 “사업장 사정을 고려하는 융통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사업주 책임을 강화하는 산안법 개정 방향을 우려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책임이 강화되면 비용도 증가하고, 주 52시간 근무제·최저임금 인상 등과 맞물려 중소기업 경영 환경이 더욱 악화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모든 영세사업장이 세탁시설을 구비하도록 강제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산업용 세탁기는 대당 1000만 원을 넘는다. 일반 세탁기 가격의 약 5배다. 일반 세탁기는 세탁력이 떨어지고 고장이 잦기 때문에 작업 현장에 부적합하다.

세탁시설을 유지, 보수할 때 발생하는 비용과 직원을 둬야 하는 운영 방식도 부담이다. 세탁시설을 설치할 공간이 없는 업체도 있다. 작업장에 세탁시설을 설치하도록 한 규정을 모든 작업장에 강제하기가 어려운 이유다.

▲ 노동자 작업복(사진 제공=김태곤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노동안전2국장, 임양희 금속노조 광주전남지부 사무국장)

모든 사업장에 법을 강제할 수 없다는 고민에서 ‘작업복 공동세탁소(이하 공동세탁소)’가 출발했다. 문길주 전남노동권익센터 사무국장은 공동세탁소에서는 산업단지(이하 산단)에 입주한 업체 소속 노동자 누구든 작업복을 세탁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제가 만난 노동자들은 자기 작업복을 쇼핑백에 넣어 들고 왔어요. ‘왜 그래요’ 물어보면 ‘작업복을 집에서 빨려고 갖고 왔습니다’ 해요. 두꺼운 작업복은 토요일에 빨면 일요일에 안 마르는 경우가 있어서, 눈이나 비가 오는 날에는 월요일에 젖은 옷을 입고 일하더라고요.”

2020년 3월 기준으로 경남 김해시의 ‘가야클리닝’이 전국에서 유일한 공동세탁소다. 올해 8월에는 광주, 여수, 목포의 산단에 확대될 예정이다. 행정안전부는 공동세탁소 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해 지난 12월부터 3개월간 전국 산단을 대상으로 공모를 받았다.

하지만 공동세탁소에도 한계는 있다. 노동자가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만큼, 작업복 세탁을 맡겨야 한다는 필요성에 크게 공감하지 못해서다. 수요조사에서는 한 주 평균 1000벌 물량을 기대했지만, 2020년 2월 기준 한 주 500~600벌에 그쳤다.

가야클리닝 운영을 담당하는 유은혜 사회복지사는 이렇게 말했다. “보통 세탁소에 일상복보다는 고급 코트 같은 비싼 옷만 맡기잖아요. 세탁소라는 게 그런 개념이죠. 작업복은 쉽게 입고 쉽게 더러워지는 것이니까 세탁소에 맡기기를 번거롭다고 느끼는 거죠.”

비정규직과 산단 밖 노동자가 이용할 수 있겠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플랜트 분야 비정규직 노동자 김 씨는 “공동세탁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누가 퇴근 후에 세탁 때문에 먼 거리를 가겠느냐”며 “효율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접근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가야클리닝은 탑차로 작업복을 수거한다. 세탁을 신청한 공장을 탑차가 직접 돌면서 작업복을 수거하고 세탁한 뒤 가져다주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는 세탁 수요가 많은 공장에만 해당되는 얘기다. 물량이 적거나 거리가 먼 곳에는 탑차가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공동세탁소는 산단 내에 입주하기 때문에 산단 밖 업체의 노동자는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다.

지금과 같은 수거 방식이 전국으로 확대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혜택을 보기 어렵다. 주로 공장 단위로 신청을 받아 작업복을 수거하기 때문이다. 소속 없는 대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는 공동세탁소를 개별적으로 방문해 이용할 수밖에 없다.

가야클리닝 설립을 주도했던 윤난실 경남 사회혁신추진위원회 단장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역할을 강조했다. “대기업은 이미 노조가 있잖아요. 대기업 노조에서 사내 하청 노동자의 일상 복지를 먼저 살피도록 권하고 싶어요.”

전문가 및 관계자들은 기업의 태도가 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이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알려야 노동자도 작업 환경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승규 노무사는 “문제의식과 사회적 피해는 반비례한다”며 “기업이 방어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원청의 의무도 중요하다. 현재순 일과건강 국장은 “유해화학물질을 다루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는 작업복에 의한 산업재해를 겪을 위험에 처해 있다”며 “회사가 원·하청 상관없이 산재 예방 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가 산업 현장에 맞게 산안법을 구체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소기업에 과도한 책임을 지우지 않도록 법령을 다듬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세탁시설을 강제하기보다 작업복 공동세탁소 이용을 권장하거나 정부 지원으로 노동자의 세탁비를 지원하는 내용 등이다.

고용노동부 안전보건과 관계자도 법과 산업 현장 사이의 괴리를 인정했다. “영세사업장에 법을 강제하는 건 무리가 있다. 세탁시설이 없어 노동자에게 발생할 위험을 방치할 수도 없어서 어렵다.”

정최경희 이화여대 교수는 “세탁은 기본적인 권리문제로 접근해야 할 문제다. 개인이나 영세사업장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는 기업, 중앙정부, 지방정부 등이 참여하는 전 사회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화학물질의 유해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 피해자는 계속 늘었다. 2008년 4월 반올림은 백혈병 피해자 4명을 모아 집단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 이로부터 10년이 지난 2018년 11월, 반올림에 접수된 삼성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는 320명(사망자 118명)이 됐다.

조 노무사는 “훨씬 더 알아차리기 어려운 병이 등장하고 원인을 입증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예방과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열려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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