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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선택, 달라진 삶 ② 후회가 남았다
이사민·지윤수 기자 | 승인 2020.05.10 17:15

 

이 기사는 뉴스통신진흥회가 주관한 제2회 탐사·심층·르포취재물 공모사업의 장려상 수상작입니다. <편집자 주>

2015년 8월 20일 오후 3시 52분경. 경기 연천군의 28사단 내 대북 확성기가 포격을 당했다. 신명준 씨(27)는 전쟁이 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전역을 연기한 배경에는 동기 8명이 있다. 이름을 묻자 신 씨는 쉼 없이 호명했다. “정광기, 신완철, 박수현, 정회랑, 박재혁, 유선혁, 김가람.”

5년이 지나 연락이 끊겼다면서도 또렷이 기억했다. 병장 8명이 1년 5개월을 막내로 살았던 설움을 같이 견뎌내서일까. 8명은 뜻을 모아 전역을 연기했다. 9월 전역을 앞둔 상태였다.

용기 있는 결정은 SK의 특채 제안으로 이어졌다. 들뜬 마음으로 경기 수원의 SK를 찾았다. 기본 서류를 작성하고 1대1 면담을 했다. 직무분류표를 주고 원하는 분야를 써내라고 했다. 대학 입시에서 1지망, 2지망 쓰듯이 말이다.

분야마다 대표적인 직무를 몇 개씩 간략히 안내했을 뿐이다. 호텔 관련 학과를 전공한 신 씨는 ‘서비스업’을 썼다고 한다. 그리고 오랜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안내란에 콜센터는 없었는데…”라며 끝을 흐렸다.

신 씨는 SK텔레콤 콜센터에 배정됐다. 상담직임을 알았다면 서비스업을 절대 택하지 않았다고 했다. 책 한 권짜리 매뉴얼을 주면서 달달 외우라고 했다. 인턴 1개월 후 암기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탈락이라고 한다.

“저는 특채랍시고 떨어져도 채용은 시켜준다더군요.” 신 씨가 특채로 혜택을 본 건 그것 딱 하나였다. 암기테스트에 떨어져도 합격시킨다는. 원치 않은 직무에 대한 매뉴얼을 억지로 외우기란 고역이었다.

첫 출근 날 ‘SK에서 보내준 데가 여기가 맞나?’ 싶었다. 근무시간만 대기업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도 갓 전역한 남성에게 맞는 업무는 아니었다. 30명 중 신 씨 홀로 남자였다. 복지도 여자 위주였다. 예비군 훈련 관련해 조언을 얻으려 했지만 알려주는 이도, 아는 이도 없었다.

입사 직후 동기들과 연락을 주고받았다. “‘거지 같다’며 서로 SK 회장을 욕했어요. 사람들은 우리가 대기업에서 떵떵거리며 사는 줄 알겠죠.” 당시 회장이 감옥에 있을 때라 ‘이미지 메이킹’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개월 차 실무에 들어서자 적성에 맞지 않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두 달 만에 회사를 나왔다. 신 씨와 함께 서비스업을 택한 3명 중에서 1명은 고객 상담직, 2명은 대리점에서 핸드폰 판매직으로 일했다.

3명 모두 신 씨처럼 퇴사했다. 대학생이었던 신 씨는 SK에 입사하기 직전 자퇴했다. 퇴사한 그는 다시 다른 대학에 입학했다가 학교 소개로 일자리를 구했다.

자신의 선택을 어떻게 생각할까. 회사 탓이 크지만 군대를 너무 일찍 갔던 자신에 대해서도 후회스럽다고 했다. 그때는 너무 어렸다며 말이다.

스무 살 겨울, 조기 기말시험을 치르고 입대했다. 나이가 있어서 기업문화에 대해 알았더라면 서비스업을 쓰지 않았다고 했다. 회사가 직무를 상세히 안내하고 적성을 고려했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남해성 씨(28)도 전역 연기 후 채용 제안을 받았다. 대기업뿐 아니라 중소기업에서도 연락이 왔다. 여러 중소기업에서 채용을 우대하겠다고 했다.

회사 대표가 직접 전화한 적도 있었지만 정중히 거절했다. SK에 입사하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SK가 배정한 곳은 SK텔레콤 콜센터였다.

그는 대학을 자퇴하고 입사했다. “콜센터에 가겠다고 자퇴한 격이죠.” 대전대 지반방제학과 1학년을 휴학한 상태였다. 교수와 상담했지만 학업을 병행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적성검사 결과 회사에서는 휴대폰 쪽으로 가는 게 낫겠다고 했다. 전공인 지반방제학과와는 관련한 직무가 없다면서 말이다.

남 씨는 SK텔레콤 대전 본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한 층에 상담원 150명이 근무한다. 남자는 남 씨 하나였다. 동료들이 잘해 줬는데 적성이 맞지 않았다.

“제 말투 들으시니 알겠지만 제가 상담원 말투와 안 맞아요. 고객 응대가 힘든 게 다짜고짜 욕하는 사람도 있어요. 대뜸 전화해서는….” 남 씨의 목소리가 약간 격양됐다. 결국 11월부터 2월까지 근무하고 퇴사했다.

또 다른 전역 연기 장병 신완철 씨(28)도 퇴사했다. 그는 28사단에서 복무 중 전역을 연기했다. SK가 마련한 채용설명회에서 적성시험과 면담이 있었다. 담당자가 희망직종을 물었다.

신 씨는 희망직종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사무직이 아닌 현장 일을 하고 싶다고 말이다. 신 씨는 몸을 쓰는 곳을 원했다. 육체적 스트레스가 정신적 스트레스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원하는 곳에 가지 못했다. 자회사인 SK내 트럭하우스 관리직으로 배치됐다. 신 씨에 따르면 관리직을 ‘잡부’라고 부른다고 한다. 회계 및 현장관리, 설비 등 이것저것 도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결국 1년 6개월가량 일하다 퇴사했다. 사전에 적성을 고려하겠다던 사 측의 말이 무색해지는 이유다.

특채에 관해 안 좋은 시선도 힘든 요소였다. 남해성 씨는 입사 이후 주변에서 ‘너 콩고물 떨어지니까 연기한 거지?’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관련 기사에 악플이 많이 달렸다. 억울했다.

“솔직히 전역 연기한 사람 중 4년제 대학 제대로 졸업한 사람 거의 없어요. 그래서 특채여도 콜센터라든지 백화점 관리 들어간 걸로 알아요.”

▲ 통합화력훈련 참관을 위해 헬기로 이동 중인 전역연기 장병들. 이 자리에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만났다.

5년이 지난 지금, 남 씨는 차라리 특채 같은 게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메이킹’용으로 쓰고 버려지는 거라 서운하다면 서운한 게 사실이다. 애당초 바란 적도 없는 데 말이다.

처음 전역했을 때는 귀빈급 대우를 받았다. 대위가 마중 나오고, 헬기 타고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러 갔다. 사단장 회의에까지 초대받았다. 그때는 기분만 좋지 아무것도 몰랐다.

“이제 SK 건물 방향으로는 오줌도 안 싸요.” 퇴사 후 경찰시험을 준비하기도 했다. 1년 전부터 반도체 회사에서 자동화 업무를 맡았다. 돌고 돌아 4년 후에야 안정적인 직장을 찾은 셈이다.

다시 돌아가도 연기할 것인지 묻자 망설임 없이 그러겠다고 한다. 대신 이슈화되지 않도록 조용히 결정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전역 연기 당시 두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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