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용인시에 사는 임재나 양(18)은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비에 여념이 없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와도 누구를 뽑을지 생각할 겨를이 없다. 정치를 잘 모를뿐더러 학업에 열중해야 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선거권 연령이 낮아졌지만 자기가 해당되는지 몰랐다.
 
그의 하루는 학원으로 꽉 찼다. 토요일 오전 7시 30분. 주말에도 이른 아침에 일어나 집을 나선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국어 영어 논술 학원을 간다.

오후 2시에 듣는 영어 강사의 수업에서 앞자리를 차지하려면 오전 8시까지 도착해야 한다. 자리를 잡고나면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논술학원에서 지낸다. 오후 2시 30분부터 5시 30분까지 영어학원, 6시 30분부터 10시까지 국어학원.

평일도 비슷하다. 수학과 사회학원에 갔다가 자정까지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집에 온다. 임 양은 “주변 친구도 입시 준비에 바빠서 정치에 별로 관심이 없다. 선거나 민주시민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고 선거권 연령을 낮춰서 바람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

투표소에 갈지 말지 고민하는 수험생 유권자도 있다. 서울 송파구의 이서현 양(18)은 “일반고는 내신이 매우 중요하다. 수시에서 3학년 1학기 내신 비중이 가장 많이 반영되는 대학이 많아서 투표소에 갈지 고민”이라고 말했다.
남성진 군(18·서울 노원구)도 “하루에 학원을 가고 숙제하는 시간이 10시간에서 12시간”이라며 “출마하는 정치인이 누구고 공약이 뭔지를 파악할 관심과 시간,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대전 호수돈고의 박창연 교사(2학년 국어 담당)는 “선거권 연령이 낮아지자 성인으로 인정받았다고 좋아하는 경우가 있지만 정치에 관심이 없는 학생이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패스트트랙, 필리버스터. 낯선 정치용어는 청소년이 정치에 관심을 갖기 어렵게 만드는 주된 장애물이다.

전남 진도군의 이성현 군(18)은 “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고 굳이 찾아봐 가면서 알고 싶지 않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부산 사상구의 김혜명 군(18)도 “정치 뉴스를 보는 순간 어렵다는 생각뿐이고 재미가 없다고 여긴다. 용어가 가장 어렵다”고 말했다.

사회탐구 영역의 ‘정치와 법’ 과목을 선택하지 않는 이상 고등학생이 정치 지식을 쌓기 쉽지 않다. 그마저도 현실정치 부분이 부족하다.

‘정치와 법’을 선택한 임 양은 “법률조항과 국제정세는 다루지만 한국 정치 상황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다”며 “인헌고 사태도 있어서 그런지 선생님들도 현실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치를 터부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문제다. 윤나윤 양(18·인천 서구)은 “명절같이 가족이 다 모인 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로 싸우는 모습을 많이 봐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주관이 없다 보니 학원이나 학교에서 선생님 의견에 흔들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취재팀이 만난 학생 중 일부는 솔직히 정치를 잘 모른다고 답했다. 서울 서초구의 김희경 양(18)은 “선거권을 갖게 된 당사자지만 솔직히 아무 생각도 없었다”고 말했다.

남성진 군은 “어른들은 우리가 정치보다는 수험, 공부에 더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않도록 기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약을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바라보는 정치적 판단능력이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성현 군은 “특정 정당에 부정적인 인식이 강한 친구가 있는데 이유를 물어보면 명쾌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근거나 지식이 어른보다 부족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정태 군(18·서울 노원구)은 “공무원이나 운전면허 시험응시 연령이 만 18세인 만큼 선거권 연령을 낮춰야 한다고 말하지만 서로 다르다고 생각한다”며 “선거는 내 판단에 의해 경제나 산업 등 여러 분야에 비교적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시의 학부모 정효연 씨(48)는 “올해 첫 투표를 하는 딸을 보면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고, 정치인이나 지역 의원도 잘 모른다”며 “국회의원이 학교에 찾아와서 잘 모르는 아이들에게 명함을 주거나 선거운동을 하면 쉽게 휩쓸리게 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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