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해 시인에게 간곡히 권한다. 당신이 쓴 '희망찾기'의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꼼꼼히 되짚어 가면서 따져 보십시오. 거기 오직 박노해만이 할 수 있는 말이 도대체 얼마나 들어 있는지를. 희망을 가지라고 당신이 외친다고 해서 누가 희망을 얻을 수 있겠는지를
                 -emerge 창간호, 유시민 '박노해 시인에게 간곡히 권한다

종합적 지식인을 위한 새 잡지 월간 「emerge」에 실린 유시민 글의 일부이다. 중앙일보에 지난 5월 3일부터 연재되기 시작하여 8월 9일 15회로 연재를 마친 박노해의 '희망찾기' 시리즈를 통해서 박노해의 실상과 허상을 해부하는 글이었다. 유시민은 "월요일 아침 박노해의 글을 읽을 때마다 왠지 입맛이 씁쓸"하다고 했다. 그런데 「emerge」에 실린 글을 읽으면서 왠지 입맛이 씁쓸해지는 것을 느꼈다. 말로만 거창하게 떠들고 생활 속에서의 작은 실천보다는 아직도 의식이 곧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진보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을 객관적으로 비판하며 상호 보완해 가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모습을 들추어내며 현재를 단정 지으려 하는 모습이 씁쓸했다.

1. 박노해는 변하지 않았다

유시민은 박노해가 변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우선 박노해가 "자기 관점 이외에는 모두 틀렸다고 보는 절대 유일의 잣대 만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시민은 "박노해가 '나는 모든주의자이며 아무주의자도 아니다'라고 고백했기 때문에 그의 사상을 비판할 필요는 없어진지 오래"라고 했다. 사상의 문제 때문에 무기수로 선고를 받았던 박노해의 사상을 비판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 가장 커다란 변화라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노동현장에서 저임금, 장시간 노동, 열악한 환경 등에 대해 거친 언어로 사회의 모순을 폭로하던 박노해가 '아무주의자'도 아니고 동시에 '모든주의자'라고 고백을 한 것이 변화가 아니란 말인가?

유시민은 또 박노해가 절대유일의 잣대를 휘둘러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던 과거를 지금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밝히지 않고 지금 자기의 판단이 옳다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했다.

-당신이 과거 법을 어기며 과격하게 펼쳤던 투쟁들이 잘못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나.
 
헌정질서를 유린했던 군사독재 시절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벌였던 나의 투쟁은 불가피했다. 나는 최선을 다했고 후회없다. 다만 내가 급진적 사회주의에 치우친 점, 그리고 '95년까지 혁명이 성공한다'는 등 책임질 수 없는 약속들을 남발했던 일에 대해서는 국민들을 향해 반성한다. 

                                                                         -조선일보 1998.9.4

보수세력을 대표하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노해가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던 과거를 반성한다고 말하고 있다. 혹시 유시민이 박노해가 변하지 않았다는 "절대유일의 잣대"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박노해가 "20년 늦게 태어났으면 서태지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한 말을 유시민은 그만한 내공도 없으면서 높은 데서 놀겠다는 의지랄까 욕심이 엿보여 안타깝다고 했다. 박노해가 '노동의 새벽' 시절의 관점으로 서태지를 보았다면 서태지는 문화 상업화의 대표주자이고 자본의 종속 현상이다. 그러나 그는 변했기 때문에 서태지에서 신세대 문화를 느낀 것이다. 서태지가 되었을 것이라는 말은 높은 데서 놀겠다는 의지가 아니다. 신세대 문화와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간의 깊은 골짜기를 뛰어넘어 새로운 가치를 끌어안아야만 진정으로 인간다운 미래 가치를 꽃피울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2. 박노해의 변화는 "바른 변화"가 아니다

유시민은 박노해가 안타깝게도 자기가 추구하는 변화가 "바른 변화"라는 것을 논증하려고 애쓰지는 않고 그저 세상이 달라지고 있으니 우리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할 뿐이라고 했다.

의식이 곧 행동이던 시대가 지나고 이제 나는/ 몸이 없는 의식 몸이 없는 말들을 별로 믿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사상과 진보도 그 사람과 몸 생활과 삶으로 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하고 신뢰할 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중 '이 닦는 일 하나'

아무리 좋은 사상과 진보도 그 사람의 생활로 피어나지 않는다면 오래 가지 못하므로 작은 실천의 강조로 변화한 것을 충분히 논증하지 않았는가? 박노해는 머리로만 하는 진보운동을 고집한다면 곧 진보운동 모라토리엄을 맞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실천, 행동을 강조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대해서 유시민은 어떤 변화가 우리에게 더 필요한지 대안을 제시했는가? 유시민은 안타깝게도 자기가 추구하는 변화가 "바른 변화"라는 것을 우리에게 논증하려고 애쓰지 않았다.

3. 박노해의 세 가지 운동원칙은 주제 넘는 훈계다

그 운동원칙에 저는 당혹스러웠어요. 처음부터 이기고 돈되고 즐거운 운동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다보면 결국 운동이 또다른 운동의 꼬리를 물고 그렇게 나가는 것 아닙니까. 부마항쟁, 광주항쟁등이 처음에 전술적으로는 졌지만 전략적으로는 결국 이겨 지금 이 사회로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좋은 사회로 가는 징검다리의 돌 하나 놓는 심정에서 운동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중앙일보, 99.8.11 '박노해의 희망찾기 결산 좌담회'

박노해의 '희망찾기' 결산 좌담회에서 유시민이 밝힌 심정이다. 박노해가 지는 싸움은 하지 않고, 돈이 되는 운동을 할 것이며, 즐거운 운동을 하겠다는 세 가지 운동원칙을 밝힌 것에 대해 유시민은 "절대 유일의 잣대"로 운동을 두부 모 자르듯 구분하지 말라고 했다. 지는 싸움을 하지 않겠다는 말은 무조건 이기는 운동만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비록 실패하더라도 그 의미를 분명히 아는 싸움만 하겠다는 말이다. 무조건 싸웠다가 무너지고 허무감만 쌓였던 지난날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다. 박노해는 "자본주의가 삶의 본연(本然)이라면 사회주의는 삶의 당연(當然)"이라고 말했다. 돈이 되는 운동과 안되는 운동을 두부 모 자르듯 구분한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가 삶의 본연인 만큼 춥고 배고픈 것만이 고결한 운동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한 말이다. 유시민은 도대체 무슨 "절대유일의 잣대"가 있기에 박노해가 운동을 두부모 자르듯 구분한다고 단정 짓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유시민씨에게 정말 간곡히 권한다. 당신이 쓴 '박노해 시인에게 간곡히 권한다'의 첫 줄부터 마지막 줄까지 꼼꼼히 되짚어 가면서 따져 보십시오. 거기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미래 사회의 가치에 대해서 한 줄이라도 쓰여 있는지를. 박노해가 제시한 가치에 대한 유시민의 적절한 대안이 있는지를. 야간 고등학교를 나와 노동자로서 우리 사회에 조심스럽고도 섬세하게 비판을 하고 있는 박노해가 높은 데서 놀겠다는 의지를 엿보는 것으로 느끼는 서울대 출신이 아닌지를. 하루 20㎞씩 마라톤을 하며 몸을 단련했고, 12시간씩 책상 앞에 좌정했다는 박노해가 읽은 단행본 1만권의 숫자가 의심스러워, 7년 동안 약 2,500일에 하루 네 권이면 1만권인데 그게 물리적으로 가능한가를 세세히 계산해 보는 것이 누구에게 유용한지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니라 정직한 절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현실 변화에서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신뢰를 잃어버렸는지, 우리가 얼마나 부실하고 자기 실력이 없는지를 있는 그대로 보면서 철저하게 절망하고 또 절망하는 것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사이비 희망과 타협하지 않는 것, 희망의 거품을 씻어내는 것. 그리하여 저의 '희망찾기' 는 사실상 희망 버리기이고 오히려 절망 껴안기입니다.
                                                       -중앙일보 99.5.3 '박노해의 희망찾기' 1회

유시민씨가 "절대유일의 잣대"를 휘둘러 성급히 박노해를 판단하기 보다, 사이비 희망과 타협하지 않고 절망 껴안기를 시도하고 있는 박노해를 진보의 거품을 씻어내고 정말 소박하게 다시 한 번 봐주기를 바란다.
 

송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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